꽃 지는 날보다/ 꽃 피는 날이 더 쓸쓸했던 때가 있었다// 눈 뜬 어둠, 사방에서/ 꽃들이 소리 없이 펑펑 터질 때/ 나도 쓸쓸해서 숨죽여 울던 날이 있었다/ 꽃들이 너무 쓸쓸해서 피는 것이라 생각했다// 꽃 피는 날보다/ 꽃 지는 날이 더 쓸쓸했던 때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돌아서고/ 꽃들이 아직 붉은 제 몸을 서둘러 지울 때/ 나도 쓸쓸해서 무릎에 고개를 묻은 날이 있었다/ 꽃들이 너무 쓸쓸해서 스스로 목, 숨을 거두는 것이라 생각했다// 꽃이 피어도 쓸쓸하고/ 꽃이 져도 쓸쓸했던 날이 있었다- 오인태 ‘동병상
음식 관련 글을 자주 썼던 저술가 피셔의 말에 따르면 맛에 대한 기억은 장기기억이다. 그것은 대개 일화와 함께한다. 내게 가장 오래된 맛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가 따다 준 자연산 송이, 그 한 송이 맛이다. 그땐 가을걷이가 끝나면 맨 먼저 하는 일이 땔감 나무를 장만하는 것이었다. 이른 가을이던가. 하루는 아버지가 나뭇짐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왕소금을 뿌리고 호박잎으로 겹겹이 싸서는 다 타고 남은 잿불에 구워주셨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 송이였다. 그게 송이였음을 안 것은 어른이 되고도 한참 뒤였다. 뭔지도 모르는 채 먹었던, 향으로만
시 써서 밥 먹고 살 수 있느냐고?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원고료를 쌀로 받는다면 현금처럼 다른 데 쓸 수도 없고, 대신 바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으니 잘하면 시 써서 밥 벌어먹고 살 수도 있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아동문학 전문지 ‘시와 동화’에서는 원고료를 쌀로 준다. 나도 두어 번 받은 적이 있다. 부산에서 나오는 ‘열린 어린이’도 참기름이었던가, 아무튼 거기서도 당장 먹을 수 있는 농산물로 원고료를 줘서 받았던 기억이 난다. 흔치는 않지만, 쌀이든 참기름이든 농산물로 원고료를 받는 것이 현금으로 받는 것보다 뿌듯하고
남해 미조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두 번째로 모신 교장이었는데 부임하시던 날의 말씀이 기억에 또렷하다. “난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아는 사람이다. (사람을) 믿으면 쓰고 쓰면 믿는다.” 그분은 당시 연구부장으로 학교 일을 도맡다시피 하던 나를 무엇이든 믿고 지원해 주셨고, 중요한 일은 항상 내게 물으신 후 결정하셨다. 나도 그분이 학교를 경영하면서 생기는 어려운 일들을 앞장서서 도왔다. 내가 나서서 풀릴 문제면 마다하지 않고 해드렸다. 복직하고는 거의 해마다 연구부장을 맡았는데 나중에 필요한 일이 있어 확인해 보니 정작 부장
‘밥상머리 인문학’은 ‘시가 있는 밥상’에 이은 내 두 번째 산문집이다. 뭐든 격식과 품격이 사라지는 요즘, 소반에 차리는 밥상으로나마 빛바래가는 공동체 의식을 되돌아보며, 공동체의 성원인 사람의 도리와 품격에 대해 짚어보고 싶었다. 자기성찰과 점검의 과정이기도 했다. ‘밥상머리 인문학’을 주제로 전국을 돌며 수십 차례 강연도 하고, 평생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내 딴에는 각을 잡노라 했지만, 정작 내 애들에겐 소홀했던 미안함이 이 책을 낸 또 다른 이유다. 아버지 부재의 시간을 오래 보낸 두 아이에게 하지 못한 때늦은 밥상
‘할머니 청국장, 할머니 순두부, 할머니 밥상, 할매 칼국수, 할매 추어탕, 할매 손두부 할매 국밥, 할매 매운탕’과 같이 식당 이름에 ‘할머니, 할매’가 붙으면 일단 절반 이상은 기본으로 먹고 들어갔다. 할머니의 오랜 관록과 정성과 손맛으로 손님들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맛난 음식을 제공한다는 일종의 보증수표와 같았다. 무슨 음식이든 할머니가 만들고, 할머니가 끓이고, 할머니가 간을 한 것은 오랜 숙성의 맛이 전해지고, 자꾸 더 먹고 싶게끔 입맛을 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나물 맛도 손맛이었다. 나물은 나+물의 합성어다. ‘나’는 ‘
힘겨웠던 세월, 새 희망을 품고 날아오르기를 꿈꿔 보는 계절이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신학기를 앞두고 어려운 가정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아린 마음이 가득하다. 필자가 소속돼 비상근 이사로 있는 사단법인 ‘나눔을 누리는 세상’은 사각지대에 놓인 결손 가정의 학생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 비영리 사회단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영위하고 있지만, 누구의 덕으로 현재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지도 모르고 익숙함에 속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이 많은 부모님과
음력 1월 1일 정월 초하루를 설이라고 하는데 일 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라는 깊은 뜻을 새기는 명절이라는 설(說)에 공감한다. 설날이 되기 2~3일 전부터 가래떡을 만들기 위해 방안 윗목에 둔 큰 대야 속에는 멥쌀이 물에 잠겨서 싸르락싸르락 소리를 내며 몸을 불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차례 음식을 준비하시느라 분주하셨고, 할머니는 복을 맞이하는데 혹시나 놓친 것이나 소홀한 것이 없는지 챙기시느라 바쁘셨고, 우리는 토끼처럼 오물거리며 뭔가 더 기뻐질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냥 부풀어 있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코로나로 인해 어디라도 마음놓고 나갈 수 없는 곳에서 24시간보다 한 시간을 더 써야하는 삶의 현장을 경험하고 있다. 25時, 1949년에 루마니아의 소설가 C.V.게오르규(1916~1992)가 쓴 장편소설이다.게오르규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숙명적 역사성이 능동적으로 변화되면서 가족을 해체시켜 비극의 종말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획일적 정치선동으로 인한 인간 본성을 무참히 배반해가는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상징적’ 시간을 제시한 바 있다. 미래에 대한 능동적 시간을 스스로 가질 수 없는 비극
좋은 일만 물씬 나는 소의 해다. 행복한 일만 계속 일어나고 또 소처럼 순하디 순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넘친다. 지난해는 법치(法治)에 어긋나는 것을 정치권력이 모조리 덮어서 진영논리에 맞게 짜 맞추면서 오만과 독선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한 바 있다. 그러나 소란 동물은 우직하고 너무 순해서 남을 해치거나 술수(術數)를 부릴 줄 모른다는 사실에 우리는 동감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각 행정기관에서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면서 국민에게 이익을 주는 행정을 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새해의 경제전망은 상당히 어두운 상태가
아동복지법 중 일부개정법안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번에 개정된 법률안을 보면 1년에 2회 이상 아동학대가 신고되면 피해 아동은 즉시 부모 등 가해자로부터 분리 보호해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맡아 관리하도록 했다. 실제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을 보면 전국적으로 지난 2015년 1만1715건이던 것이 대면 10%씩 증가해 지난해에는 3만4045건이나 발생했다. 이번에 개정된 법률안은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된 뒤 현장조사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가 발견되면 지방단체장이 즉시 피해아동을 쉼터로 보낼 수 있는 강제 규정을 신설한 것
경남도는 지금처럼 부산, 울산, 경남 등으로 나눠져 있으면 수도권 집중에 대응할 수 없다면서 이들 세 지역이 ‘행정통합’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지역 생활 기반이 줄어들게 되자 지역 간의 통합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된다는 것이 인구정책 연구자-한양대학교 고령사회 연구원 이삼식 교수-의 주장이다. 2020년 10월을 기점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소멸위험지역’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현재 기초 단체 228곳 가운데 43%인 97곳이 이번 해 말쯤 없어질 위험해 처해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소멸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정치에 있으며 그 정치의 방향성에 따라 국가 발전의 기본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여당의 폭주 속에서 군소 야당들이 꼼짝도 못하는 정치현상은 독재 권력의 연속처럼 보인다.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을 거치면서 수 많은 독재권력의 횡포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야당은 야당으로서의 투쟁성과 선명성, 그리고 미래지향적 정치 지향점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월이나 낚고 있는 강태공처럼 보인다. 세월을 낚는 데는 세찬바람과 거친 파도까지 몸소 부딪치면서 새로운길(新作路)을 개척하는 의지가 있어야
영화 ‘친구’에 나오는 말이다. 곽경태 감독, 유오성, 주민모 등이 출연한 조폭영화로서 2001년에 800만명이란 관객을 불러 모았던 화제의 영화였다. 조폭간의 세력다툼에서 주고받는 뼈아픈 대사이지만 지금 우리 현실을 보면 이 말이 주는 상징성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행정가는 행정가대로, 교육자는 교육자대로,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마이 묵었다 아이가’란 말이 쉽게 나오는 것은 사회적 불신감이 너무도 팽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폭세계에서 주고받은 말이 이렇게 가슴을 치는 것은 입만 열면 ‘정의’를 달고 사는 사
지금 모든 사회조직이 ‘명령’만 내리면 법과 제도에 의한 법치(法治)가 아니라 ‘명령’이라는 행정권력에 의해서 법적 절차가 가볍게 무시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진행만 해도 그렇다. 당초 2.5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다가 갑자기 1로 낮추는 바람에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예측 가능한 법의 진행이 아니라 단순한 행정명령에 의해서 사회조직이 움직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된 채 모든 법질서가 명령이라는 권력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불행한 일이다. 지금은 국민의 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정부는 언론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지난달 28일에 관련법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이 정부들어 대부분의 언론들이 현 정부를 지지하면서 특정 정치집단의 이익을 묵시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언론보도에 관한 피해 보상을 위해 최대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위한 집단소송법’을 입법 예고하고 있다. 이번에 입법 예고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법’이란 한마디로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쓰는 언론사에 대한 집단 소송제도를
코로나사태로 온 나라가 명령 복종에 나서고 있다. 국가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이 정부에서 코로나 사태 아래 조금만 어긋나도 수억 원의 구상권을 청구하는 가하면 모조리 고발해 벌금형으로 신체를 억압하고 있다. 그래서 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한상진 교수는 무엇보다 긴급명령체제로 국민을 겁주고 압박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2020년 9월 14일, 조선일보)고 지적하면서 모든 사회적 현상을 ‘명령’이란 수단으로 국민을 위축시키는 것은 민주국가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결혼시즌이 와도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
오는 2021년부터 각 은행에서 사용하고 있는 ‘종이통장’이 없어지고 자동적으로 스마트폰이나 앱으로 모든 은행업무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대한노인회에서 지난 7월 5일 은행협회에다 항의서한을 보내고 스마트폰이나 QR코드 같은 것을 잘 이용할 수 없는 노인들에게 종전처럼 종이 통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요구한 바 있다. 그러자 은행협회에서는 2021년 1월 1일부터 종이통장을 발급할 때는 소정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결정해 놓고 있다. 60대나 70대 되는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 노인들은 10대나 20대의 청년들처
지난 2017년 1월 23일 한국의 자유민주 지성인들이 모여 ‘한국의 자유회의’를 결성하고 8개항의 선언문을 작성한 바 있다. 여기에서 정치적 본질의 혼란을 진단하고 그 극복을 위한 모색과 대안을 제시하면서 한국의 모든 지성인과 보수적 국민들을 향해 ‘자유회의’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 바 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 것인가란 물음을 갖고 얼마 전에 출간(2020년 8월 31일)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란 책을 쓴 서민, 진중권 교수, 강양구 기자, 권영애 변호사, 김경율 회계사 등 5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하
“부동산으로 국민을 쪄 죽일 셈이냐” “나라가 니꺼냐” 섬뜩한 구호다. 지금까지 정치구호나 항의 구호 팻말에는 이렇게 잔인한 구호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 네티즌들은 나라가 동물농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동물농장이란 말은 1945년에 출간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Orwell, 1903~1945)의 기념비적인 풍자소설을 말한다. 이 소설은 1917년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정치상황을 재현한 소설이다. 그 내용을 보면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핍박해 가는 가를 극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