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무역전쟁(?) 등으로 온 나라가 갈수록 벌집 쑤셔놓은 듯 한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미국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정신에 의한 세계무역 자유화에 등을 돌리고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언했다. 중국도 이에 질 수 없다며 한번 해보자는 자세다. 사업가인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은 외교의 주요 목표를 경제안보에 두고 보호무역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주요 교역상대국을 새로운 무역전쟁의 위기감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 “우리가 걱정할 것이 뭐냐?”며 위기감을 느끼지
배고픈 닭에게는 ‘다이아몬드보다 쌀 한 톨이 더 낫다’는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일단 배고픔이 해결돼야 투쟁도 사랑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지난 1961년 국민소득이 100불도 되지 않았으나, 1993년 1만불을 돌파해 이젠 3만불의 선진국 대열 진입을 눈앞에 둘 정도로 엄청난 경제적인 발전을 이뤘다. ‘하면 된다’는 우리 민족의 생활철학 속에 끈끈하게 배어있는 ‘끈기’는 경제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게 됐다. 우리 경제는 7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거쳐 80·90년대는 ‘아시아의 4마리 용(龍)’으로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고, ‘××청산’을 부르짖는 이유도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고 발전적 계기로 삼자는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뀔때 마다 해온 과거 정부의 청산작업은 발전적 계기가 되기는커녕 감정적이고 보복적인 인상이 짙어 역사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개혁과 청산작업은 역사적 과오에 대한 청산의지가 미흡하고 반성이 없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기합리화(?)적인 사고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곪은 상처를 치유
음주측정 단속 기준이 지난 6월 25일부터 기존 0.05%(혈중 알콜농도)에서 0.03%로 강화됐다. 또 왕복 2차선 지방도로 곳곳의 최고속도가 시속 50㎞로 낮춰져 “좀 심하다”는 운전자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음주측정 기준이 강화된 후 2달여를 지나는 동안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미·중 무역전쟁(?)과 대일청구권 문제로 인한 전반적인 경기침체 등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하면 지나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지난 1996년 정부는 범죄와 무질서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후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무리한
생명의 연장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된 결과 이제 한국인의 평균 수명도 여자 84.4세, 남자 77.6세로 나타나 선진국형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지난 1990년 여자 75.5세, 남자 67.2세가 2000년엔 여자 79.6세, 남자 72.2세로 크게 연장됐다. 그러나 한국 40대 남자들의 사망은 인구 1000명 당 10명 정도로 여자의 2배를 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3.7명, 캐나다 3.9명, 프랑스 5.4명, 대만 5.7명에 비하면 2배 가까운 수치로 40대 남자의 사망률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
2차 대전을 전후해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한인들의 숫자가 166만8000여 명이었고, 이중 송환 대상자는 104만3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의 한 언론사가 지난 1996년 5월 재일한인 송환과 관련해 1945년 10월에 작성한 문서를 인용보도함으로써 드러나 한국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일본정부는 한국이 강제연행자 등의 전후배상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공식문서’가 없어 정확한 징용자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발뺌을 해온 게 사실이다. 일본은 지난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3억 달러를 무상원조식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는 일상의 사소한 행동 중에 나타난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갈 때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 살핀 후 뒤에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이 갑자기 닫히는 문에 부딪히지 않도록 잠시 문을 잡아줘야 할 것이다. 길 한가운데에 커다란 돌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당장 돌을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옆으로 치워놓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사소한 행동 속에 그사람의 인품과 인격을 비롯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나타난다. 봉사를 하면 왜 행복해 질까? 행복이란 물질적인 만족이 아니라 정신적인
위대한 지도자에 대해 역사는 두 가지 관점에서 평가를 하게 된다. 하나는 지도자 자신의 능력에 대한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자가 남긴 치적(治積)일 것이다. 지도자의 능력은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단호하고도 지혜롭게 대처하며, 얼마나 좋은 결과를 창출해 내느냐로 평가되는 것이다. 반면 치적은 지도자가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지도자란 반드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일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냉철한 판단력과 이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주변에 올바른 참모를 둬 그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이해할 줄 알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칭찬을 받으면 매우 좋아한다. 남에게 비판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아주 작은 칭찬에도 큰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 더욱 분발할수 있기 때문이다. 칭찬은 감성적인 여자들에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또 결혼한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모든 아내와 남편은 상대방을 칭찬하고 격려할 줄 알아야 한다. 칭찬만큼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특히 칭찬은 어린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은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 자신감이 생겨
지난 3일 아베 일본 총리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상호 청구권을 포기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는 우대조치를 취할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들을 철회해야 한다는 일본 내 대부분의 언론 비판에 대해 철퇴를 가한 동시에 한국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이번 전쟁은 과학·기술 등 교역분야의 간접적인 소프트웨어 침략이다.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소재의 한국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전략물자 수출절차를 간소화하는 대상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그것도 모자라면 자동차·화
경제학에는 과소비라는 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반드시 존중돼야할 철칙인 까닭에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내돈으로 갖고싶은 것을 사는데 무슨 잔소리냐고 대든다면 할말이 없을 것이다. 남의 돈도 아닌 내돈을 내마음대로 쓴다는데 누가 감히 따따부따할 건더기가 있느냔 말이다. 듣고 보면 그럴싸하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소비행위가 과소비라는 부정적 시각에서 반추(되새김질)되는 다름 아닌 이유는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가 빈곤층의 보상적 소비를 일깨우고 나아가 사회전반의 다원적 소비로 파급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은 것 같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약이 많다는 것이다. 없던 다리가 내일이라도 당장 세워질 것 같고 농촌마을이 금세 도시로 변할 것 같은 공약이 쏟아진다. 선거구의 주민을 위한 화려한 정책들이 봇물처럼 터졌다가는 선거가 끝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일쑤다. 선거때만 되면 전국방방곡곡에서는 각종 공사 기공식으로 시끄럽다. 우리 국민들도 어느 사이에 이러한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익숙해져 있다. 정치인들은 또 그러한 자신들의 공약(空約·헛된 약속)이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지난
우리는 오래 전부터 사회의 구석구석에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고 도덕과 윤리와 규범이 붕괴되고 있음을 봐왔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과 힘있는 자들의 탐욕이 어우러져 마치 부정의 경쟁이라도 하듯 배불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 그들의 배불리기 싸움에 우리 민초들은 언제나 희생을 강요당해 왔고 그들의 무대를 빛내주는 말없는 관객이 됐을 뿐이다. 민초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잘 돌봐야 할 국회는 당리당략만을 주장하는 장외투쟁(?)을 비롯 인사청탁 등 부정과 비리로 득실거리는 추태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는 극단적인 비판도 나오
우리 속담에 ‘잘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란 말이 있다. 우리들은 공은 자기 몫으로 돌리고, 잘못에 대한 책임은 남에게 전가하는 좋지 못한 심성이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깊이 내재해 있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2년이 지났으나, 나라사정이 어렵게 전개되고 국가장래에 대해 국민 전체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신문을 보기가 두렵고, 언론도 속이 시원한 기사를 보도해 주지 못한다고 아우성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혼란, 경기의 불안정, 600여만 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의 ‘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져 사
지난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경남도는 창원컨벤션센터 일원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김경수 지사와 조명래 환경부장관 등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2019년 제24회 환경의 날’ 정부 기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수소차 등 친환경차 보급 확대와 같은 국민의 노력과 기대수준에 맞는 환경정책을 펼쳐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문대통령의 ‘국민의 기대수준에 맞는 환경정책’을 한 번 생각해 본다. 지난 1960년대 100여 불에 그쳤던 1인당 국민소득(GNP)이 1980년대 말에는 4천불을 넘어섰고, 1990년 말에는 1만
생명의 연장을 위해 인간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수명은 괄목할 만큼 연장, 이제 한국인의 평균수명도 여자 84세, 남자 79세로 선진국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60대(1950년생부터 1959년생까지)는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로 어쩌면 가장 희생적인 삶을 살아 온 것 같다. 이들은 인생에 있어 가장 왕성하게 일하고 사회의 주도적인 위치에 있어야 할 나이인 40대엔 ‘스트레스’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나타낼 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특히 당시 남자의 사망률
대학시절 ‘평등은 어디까지나 권리에 대한 요구이지 불평등한 사실을 획일적으로 평등하게 만드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고 배웠다. 우선 정치적 평등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의미로 미성년자와 정신박약아, 죄수 등은 선거권을 주지 않으며, 피선거권도 연령과 기탁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법 앞의 평등은 법은 모든 국민을 위해 제정돼야 하지만 변호사 천국(?)인 작금의 현실이 안타까워 더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셋째로 기회균등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평등은 반상(班常)의 구별이나 권력의 세습을 거부하는
지난 1970년대 대학가에서 유행했던 ‘부자(父子)시리즈’ 한 토막이 생각난다. 아버지와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대중탕에 갔는데, 아버지가 욕탕에 들어가 “아 시원해”라고 하자 아들은 아버지 말만 믿고 욕탕으로 뛰어들었다. 시원하다던 욕탕의 물은 너무도 뜨거웠다. 깜짝 놀란 아들이 욕탕 밖으로 나오면서 “이 세상에 믿을 ×이 하나도 없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중략)… 요즘 우리가 맞고 있는 시대상황이 부자간의 대립과 갈등처럼 혼란스러운 것 같아 걱정이다. 남북문제가 그렇고, 조폭집단 같은 요즘 여야 정치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사회보험 등 4대 사회보험료 고액·상습 체납자가 (2018년 12월 현재)884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고액·상습 체납자는 1000만 원 이상 2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 건강보험공단은 부동산과 예금채권 등 금융자산과 자동차 등을 압류하고, 압류재산은 공매해 적극적으로 체납 보험료를 환수할 계획이다. 또 앞으로는 1000만 원 이상 1년(당초 2년) 이상 체납한 자에 대해 성명, 상호, 나이, 주소, 체납액의 종류·납부기한·금액·체납요지 등을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사전지
최근들어 ‘법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가면 속도위반, 서면 주차위반’인 도로교통법, 한해에 수천 명이 사망하는 세계 1위의 산업재해사망률, 일기예보 불신으로 인한 해상사고율, 보복이 두려워 극히 낮은 범죄신고율 등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하루속히 고쳐야 할 각종 범법행위들이다. 결국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서로 지켜야 할 행위규칙이 파괴돼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해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특히 지난달 13일 치러진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