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41년 1월 일본 시코쿠 앞바다에서 어부 다섯 명이 탄 어선이 풍랑에 표류하다 무인도에 좌초했다. 무인도에서 지내기 143일 만에 그들을 구한 것은 미국선적의 포경선 ‘존 하우랜드’호였다. 1840~50년대에는 고래잡이가 대성황이었던 모양이다, 구조된 선원 중에는 14세의 소년 ‘만지로’가 타고 있었는데 후일 동료선원들이 일본으로 귀국했지만 이 소년은 포경선에 남았다. 그는 신들린 듯 신식 어로장비의 기술과 항해술을 습득했고 나중 미국에 정착해 시골중학교에서 영어, 수학, 라틴어를 익혔다. 당시 일본은 쇄국정책으로 철저히
안상수 창원시장은 과거 필자가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분이었다, 민주주의가 강철로 된 통곡의 벽에 갇혀 신음할 때 국민들과 젊은이들은 그 벽을 부수고 나올 수가 없었다. 그 강철의 문을 열어 민주주의를 소생시킨 것은 안상수 검사였다. 한 검사의 직에 연연하지 않은 정의로움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기사회생시킨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불신과 이념투쟁의 벽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지 국민들은 불안해한다.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은 그런 희망을 줄 수 있는 지도자를 갈망하는데도 현재에는 그런 지도자를 찾지 못한다고 아우
세월은 시작과 끝이 없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세월이라는 무대 위의 주역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세월호 문제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수면 아래로 깊게 내려앉았다, 자기 일에 손익이 있으면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던 사람들도 자신의 일이 아니면 곧 잊어버린다. 자기 자식들이 자기 부모나 친지들이 그 희생 중의 한 사람이었다면 이처럼 뒤집어 생각하면 ‘국제시장’이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는 영화를 보고 눈물짓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이주영 전 정관이 본래 천직인 선량으로 환지본처(還至本處)한 다음 모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내
작년 한 해는 너무나 많은 인재(人災)들이 국민들을 그로키 상태로 내몰았다. 진실을 행하는 사람들은 적고 갑질과 거짓을 행하는 자는 많았다.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반대편을 죽이기 위한 간계라는 고사성어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사슴이 말이 될 수 없음에도 힘 있는 자들이 사슴을 말이라고 하면 곧 말이 되고 마는 세상이 되었다. 아부의 한계를 넘어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갑질 편승 풍조가 국가공론과 사회공론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다. 이백, 두보, 소동파, 한휴와 더불어 중국 역사 속에서 시성(詩聖)이자 문장가
국내 메이저 그룹의 실세인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씨의 ‘땅콩리턴’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가 온통 갑의 횡포에 비난 일색이다. 검찰도 어느 때보다 국민감정을 헤아려 그녀를 신속하게 피의자신분으로 엄정대처하고 있다. 메이저기업이나 유명회사나 고급브랜드들이 하청업자나 대리점의 등골을 빼먹는 갑질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며 갑질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갑질은 국민을 볼모로 한 ‘공권력의 횡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며칠전 ‘경상도청 공보관’이 본지 양삼운 편집국장(직대)에게 퍼부은 “죽여 버리겠다!”라는 갑
며칠 전 경남전역과 창원시에 내린 눈은 불과 3cm 정도였다. 그런데도 경남일부와 중심부인 창원 전역이 재난지역마냥 모든 도로가 막힌 수챗구멍이 됐다. 불과 10여일 전인 지난 11월 28일에 도지사를 본부장으로 한 ‘동절기재난대책반’ 가동도 무색해져 버렸다. 당시 경남도는 지난 1일부터 내년 2월말까지 도지사를 본부장으로 13개 반 66명으로 대책본부를 운영하고 사전대비 전담 T/F팀을 구성해 겨울철 재난에 대응하는 ‘2014년 겨울철 자연재난 대책기간’을 운영한다고 발표했었다. 폭설이 우려되는 지역에 눈 피해예방을 위해 지역 주민들에게 행동요령 등을 홍보하고 기상청 특보가 발효되면 제설 전진기지 15곳에 제설장비 350대, 인력 447명을 신속히 배치하고 시·군과 지역주민에게 협조를 당
어린학생들의 무상급식 예산을 두고 대치하던 경남도와 경남교육청의 샅바싸움이 이제는 이념싸움으로 번질 기세다. 감사권을 주장하며 전체급식예산을 삭감해버린 경남도의 행정집행은 홍준표 지사가 부임할 때부터 행사해온 권력지향형 행정이지 도민을 위한 목민행정(牧民行政)은 아니라는 여론에 더 무게가 실린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게 성인의 말씀이 아니라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내가 한 마음의 상처를 달래줄 수 있다면,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주고 위로할 수 있다면, 내가 숨져가는 한 마리 물새를 치료해 그 보금자리에서 살 수 있게 한다면 나의 삶은 정녕 헛되지 않을 것이다.” 디킨스가 살던 시절, 영국은 기근과 기아로 수많은 사
진해야구장 입지 선정을 둘러싸고 시의회 정례회의 석상에서 안상수 창원시장에게 달걀을 투척한 김성일 시의원은 사건 직후 출신구인 진해는 물론 인구에 회자돼 졸지에 전국구 스타덤에 올랐다.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데 그 나이에 어디서 그런 용기와 의협심이 나왔는지 평소에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잘 아는 사람들조차 덩달아 감동하고 그의 구속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다. 구속적부심의 기각결정 또한 김 의원이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판결이었는데 전직 지방직 간부공무원으로 36년을 근무했고, 현직 시의원이며, 고령이고 초범인 그에게 형평성이 기운 적부심 기각결정에 고개를 갸웃(?) 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가 피의자 신분에서 구속과 집행유예 팔결로 석방되기까지 보여
세월호 실종자들의 수색 종료가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의 기자회견으로 마무리 되던 날, 필자는 이 장관의 평소 같지 않은 긴 머리카락을 보며 비록 수염은 깎았지만 머리를 깎지 않은 것은 그의 올곧은 신념이자 철학의 상징으로 여겨져 가슴이 뭉클했다. 그가 유족들 앞에서 맹세한 대로 단 한사람의 실종자 시신을 인양할 때까지 해당책임부서 장관으로서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를 국민과 유족들에게 보여준 것으로 짐작했다. 상주는 머리를 깍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이 장관 스스로가 세월호 유족들에게는 자신도 영원한 유족이자 상주라 것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필자는 그가 조석으로 휩쓸고 지나가는 거친 해풍과, 숨쉬기조차 거북한 짙은 해무, 소용돌이치는 맹골의 바닷가에서 끝까지
가을이 오는듯 지나가고 어느새 겨울의 초입입니다. 소설(小雪)을 향해 가는 계절의 변화무쌍한 대자연은 늘 우리를 경건하게 만드는 스승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할 12월이 다가오는 이 시기에는 아위움 속 반성과 함께 올해 안에 꼭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즐비합니다. 필부의 삶이 이럴진대 사회와 나라의 일들은 각계 전문가들의 심사숙고가 필요하겠지요.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나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어느덧 우리를 경제대국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하지만 우주로 향하는 꿈을 키우는 일각에는 한끼 식사를 걱정하는 삶들이 공존하는 나라입니다. 불안정하지요. 하지만 쭈욱 달려야 한다는 쪽과, 함께 가자는 이들이 대립하는 복잡한 시대입니다. 각계 지도층의 혜안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공직이란 국가사무의 업무를 대행하는 사람들로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특수직인 군인, 교사, 공적기관에 종사하는 별정직들도 모두 공무원에 속한다. 국가는 사실상 그들에 의해 운영되며 그들의 청렴도나 부패 정도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근자에 들어 부패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공직사회의 각계각층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는 국민의 탄식을 자아내고 있지만 모든 공직자들을 공직으로서의 사명감을 내팽개친 단순 봉급쟁이로 평가절하 하는 것은 오판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이 총구에서 나오듯 공직의 사기 또한 안정된 생활과 정비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쟁의 승패는 공평한 논공행상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그런 경우에 태평성대가 이뤄졌다. 비록 공직자들의 연금이 국민들에 비해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이기에 해군이나 해양경찰의 임무는 막중하다. 3·8선의 비무장지대가 접전지역이라면 우리의 바다는 남으로는 일본, 서로는 중국, 동북으로는 소련과의 접경지역으로 DMZ보다 더 넓다. 그동안 해양경찰은 60여년 가까이 바다식량자원의 보루인 연안을 지키고 어민들과 상선들을 보호하고 해군과 엇비슷한 국토방위의 첨병으로도 크게 활약해 왔다. 이번 중국어선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한 총격에 중국어선의 선원이 사망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해경이 오히려 불법조업선박들인 중국선원들의 폭력에 사망하거나 업무상 과로로 사망한 대원들이나 부상당한 대원들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해경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고 정부 또한 해경을 말단 하급기관이나 육상경찰의 보조기관처럼 함
창원시 진해구 출신 시의원 김성일 의원이 창원시장에게 던진 달걀 두 개 때문에 구속적부심이 기각돼 고령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변론에도 불구하고 구속 중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필자는 최진갑 전 부산고등법원장이 창원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할 때 ‘열린 창원지방법원’의 기초를 다진 홈페이지관리위원으로 수석부장판사를 비롯한 네 명의 판사와 법원고위직 공무원들과 외부인사 몇 분과 함께 몇 년을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필자가 30여년 가까이 칼럼을 쓰면서 중앙이나 지역 정치권과 위로는 대통령부터 각료들과 국회의원, 아래로는 도지사와 지역 공직자와 정치인들, 사정기관치고 내 혹독하고 날카로운 필검(筆劍)에 다친 분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단 한 번을 제외하곤 고발이나 고소를 당해본 적이 없다.
불교는 동(動)이 아니라 정(靜)적인 종교이자 신앙이다. 개개인의 내면에 잠재한 부처 즉, 불성을 찾아 견성(見性)하는 것이 불교가 지닌 궁극적인 목표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삶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생로병사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해탈(解脫)이며 부처님은 최초로 자유인이 된 분이다. 수행자들이 가장 적게 먹고 가장 적게 가지는 것은 부처님이 권력의 자리를 버리고 수행자로 출가할 때 이미 목표로 설정된 것이다. 중생들은 생존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눈만 뜨면 아수라가 돼 아귀다툼을 한다. 지금 이 시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는 주로 종교와 종족분열로 생기는 참화가 아닐까? 대한민국에서 자칭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는 대한불교조계종은 독신주의를 자
창원시 진해 출신인 김성일 의원이 정례회의 석상에 참석한 시장에게 계란을 투척해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혔다. 필자도 김 의원의 의회폭력에는 반대한다. 그런데 그런 큰 부상을 입고도 그 이튿날 시장이 해외여행은 어떻게 다녀왔는지 의아스럽다. 새누리당 경남도당 역시 누가 흑묘인지 백묘인지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김성일 시의원에 대한 탈당을 졸속으로 의결하는 바람에 같은 당의 시의원끼리 자중지란을 더 크게 불러일으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지역의 모든 언론들마저 엇비슷하게 김 의원의 폭력성만 앞 다투어 특종처럼 보도하고 시의원이 시장에게 달걀을 던진 이유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창원 쪽 분위기와는 달리 진해 쪽에선 김의원을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처럼 치켜세우며 더 이상 창원시가
곧 중추절이다. 민족의 대이동은 우리 민족이 지닌 미풍양속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조상의 묘를 찾아 뿌리가 무언지를 자식들에게 일깨워주고 살아계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효(孝)는 인륜도덕 가운데 으뜸이다. 풍요가 절정에 달해 잔반의 음식을 처리하는 데만 수십조라는 혈세가 투입되는데도 굶주리고 헐벗은 이웃들이 있다는 것은 과소비로 인한 빈곤인지, 지병으로 인한 빈곤인지, 재산 숨겨두기 식의 빈곤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들 얘기한다. 더군다나 50대 이상의 자살률이 인구 10만명을 기준으로 30여명이 넘고 하루 자살률이 평균 29명이라는 경찰청의 발표는 충격적이다. 필자 주변에 외롭다거나 죽고 싶다는 얘길 자주 하는 사람들은 대하면 빈곤해서가 아니라 문화의 무지와 인과관계의 소외감 때문이
오랜 친구 한 분이 한국을 찾아왔다가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가셨다. 이 분을 생각하니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라는 논어 학이편(論語 學而篇) 편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친구도 보통 친구가 아니라 한 왕국의 최고지도자였다. 내가 불교신자임에도 오히려 불교계의 종정 스님과 큰스님들이라는 분들보다 가톨릭의 수장이자 바티칸 왕국의 교황인 프란치스코 성하의 일거수일투족이 더 감명을 주고 마음에 평화를 주었던 건 왜일까?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권이 뭉그적거리며 세월호 법안통과를 미루고 보수단체들이나 악플러들은 애통한 유가족들까지 매도하는 메스꺼운 배설물을 뿌려대는 이 지저분한 나라를 그 친구는 단숨에 향기가 나는 평화와 화해의 전원으로 바꿔놓았다. 세살 먹은
오랜만에 정치판에서 박수를 칠 만한 진실을 봤다. “전우를 죽이는 자는 어떤 이유로든 살인자다!” 라는 뇌성벽력 같은 질타가 신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입에서 국방장관과 군 간부들을 향해 쏟아질 때 필자 역시 45년의 한이 반은 풀리는 것 같았다. 필자 역시 구타와 동물취급을 받는 훈련으로 45년째 투병생활을 하고 있고 근래 3개월이 넘도록 칼럼을 쓰지 못한 것도 그 후유증 때문이었다. 군인을 사람이 아니라 군인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군인은 전쟁의 소모품일 뿐 자신을 방어할 보호망과 인격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국가를 지키고 그 지키는 힘이 국가발전의 동력임에도 군은 언제나 사회와 격리된 괴물체처럼 보였다. 왜 그랬을까?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은 김신조 무장공비 사건과 울진
며칠 있으면 2558주기를 맞는 부처님 오신 날이다. 벌써부터 각 지자체와 사원이 있는 부근에는 오색 연등이 오고가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그러나 금년 부처님 오신 날인 초파일은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소비에까지 미쳐 성탄전야가 국가애도일처럼 숙연하고 우울해져 버린 까닭이다. 아직도 차디찬 바다 속에서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 그 아이들과 승객들을 위해 오늘도 꼭두새벽에 일어나 108배를 올렸다. 원효대사께서는 생사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생사고혜(生死苦兮)라고 했다. 태어나고 죽는 게 모두 괴롭다는 뜻이다. 부처님도 육신이 있기에 멸하는 생자필멸의 윤회를 피해가진 못했다. 불교에서는 생사 역시 영생하거나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닌 생명체가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연기법(緣起法
얼마 전 경상남도가 KBS 등 중앙의 미디어매체에 배너광고를 실었는데 단어만 들어도 가슴 따뜻해지는 ‘여민동락(與民同樂)하는 경상남도’라는 문구였다. 여민동락은 맹자의 진심장 양혜왕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맹자(孟子)께서는 제왕과 백성이 즐겁게 한마음으로 화합이 이뤄질 때 가장 부강하고 풍요로운 국가가 된다고 했다.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이란 본문의 뜻은 백성(民)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정권)은 그 다음이며 임금이 가장 낮은 자세로 백성을 보살필 때라야 진정한 여민동락이라고 제왕학에 대해서 충고한 부문이다. 참 귀가 따갑도록 많이 들어 본 소리가 아닌가?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단골메뉴로 삼는 문구라서 이골이 날 지경이다. 요즈음은 한국정치는 유통서비스업처럼 변질돼 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