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개최됐지만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보다 박수갈채를 더 받은 선수들이 있었다. 인간이 진실을 느끼고 깨닫는 현장은 종교사원이나 상아탑만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를 배우는 곳은 지정된 장소가 따로 없다. 요즈음 고속도로 화장실은 청결성이 높을 뿐더러 소변기 앞에 붙어 있는 ‘5cm만 앞으로 다가가 쉬를 하면 세상이 달라진다’라는 개그성 팻말은 환경부나 환경단체의 홍보보다 효과가 높다. 또한 챔피언이란 승자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최고의 챔피언’이란 팻말 앞에선 사서오경의 문구보다 더 짜릿한 감동을 받는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장 난타전을 벌이는 곳은 최상위급 구역인 도지사 선거 예비후보경선지역 같다. 모두들 자신들이 도정을 이끌어 나갈
긴급 호송중인 119구급대원이 환자가족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일이 어제 오늘이 아니라는 데 너무 놀랐다. 하기야 범죄현장에 출동한 경찰이나 해양경찰이 난폭한 피의자나 공해를 침범해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선원들로부터 폭행당하고 심지어는 순직까지 하는 불상사 역시 어제 오늘이 아니라지만 공권력으로부터 입는 약간의 피해에도 미디어매체들이 침소봉대해 보도하면서도 정당한 법집행의 과정에서 공권력이 입는 피해에는 무덤덤하게 일과성인 것처럼 보도하는 사회정서는 공평성에 벗어난 처사다. 119는 우리사회의 가장 지척에 있는 국민의 보호벽이자 안전망이다. 특히 화재나 응급환자, 재해와 재난의 국민방파제가 119 구급대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특히 러시아워 시간에 119나 응급사이렌을 울리는 긴급자동차에겐 이유
그 민족의 저항의식은 가장 위력적인 무기다. 우리에겐 큰 산맥처럼 자랑스러운 혁명 세 개가 있는데 3·1 혁명과 동학혁명, 4·19혁명이다. 그 중에 4·19혁명의 기폭제는 마산에서 일어난 김주열 열사의 죽음으로 인한 3·15혁명이었다. 필자는 아직껏 3·1혁명을 3·1운동이라고 부르는 칭호가 마뜩치 않다. 어느 누구도 지금껏 3·1절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에 나는 고집스럽게 3·1혁명이라고 부른다. 3·1 혁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유관순 열사다. 아우내장터에서 붙잡혀와 손톱이 빠지는 고문과 몸의 아홉 구멍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악독한 고문과 구렁이 껍질처럼 온 몸이 채찍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지면서도 열사는 일본의 딸이 아니라 ‘조선의 딸’이라고 시종일관 외치며
여수 송유관 누출에 이어 부산항에 묘박 중인 화물선과 유류공급선의 충돌로 대량의 벙커 c유가 누출돼 연안을 또 기름범벅으로 만들었다. 20년 전인 1995년 충남 태안반도를 죽음의 바다로 만든 씨프린스호의 재판을 다시 보는 듯 섬뜩한 느낌이 든다. 보상 또한 제대로 이뤄질지도 궁금하다. 다행히도 이번 정부에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입각한 지덕을 겸비한 창원(마산)출신 이주영 의원이라면 4선 의원과 법관출신의 경륜으로 청문회 역시 무난하게 통과되리라 생각하고 수산어민들의 피해보상 또한 명쾌하게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같은 창원(진해)출신인 이종구 수협중앙회장과 더불어 겹경사가 났다며 지역 수산 업계와 어민들은 이 의원의 장관취임을 적극 환영하는 눈치다. 연안은 선박에서의 기름유출도 오염
2차 대전 패배 후 일본은 전승국인 미국의 기침 한 번에 일희일비하며 바짝 엎드려 살았다. 가장 잔혹한 형벌이라는 5형(五刑) 중 궁형(宮刑·거세)을 당한 사마천이 불세출의 역사서인 사기를 편찬했듯 일본 역시 1945년부터 70년 가까이 그들의 본래 속내를 감추고 절치부심 국력을 키워나갔다. 아베 일본수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당당하게 참배하고, 과거사 문제에 동가식서가숙하는 일본에 대한 유엔의 결의에도 콧방귀를 뀌고, 그들의 군대에 의해 강압적으로 끌려가 청춘과 정조를 짓밟힌 점령국 여성(위안부)들을 창녀 취급하는 것은, 사냥개가 목에 매단 쇠사슬을 스스로 끊고 주인과 한판 붙어보자며 송곳니를 내밀고 으르렁대는 항명과 다를 게 없다. 조선반도는 2000년부터 일본인들의 ‘나와바리’ 구역이었다
내일 모레면 우리 설날이다. 남부여대해 10시간 이상 씩 장사진을 치루며 고향으로 가는 긴 행렬은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다 해도 다 그려내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저자거리의 자화상이다. 새해에는 자기 고향인 지자체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들을 뽑는 총선이 있어 설날의 화제가 그런 얘기들로 시골부엌의 숯처럼 쌓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덕담으로 이런 소원과기원을 마음에 담아봤다. 배고파도 먹을 수 없는 고통 없는 세상, 아파도 치료 받을 수 없는 질병이 없는 세상, 배울만한 아이들이 배울 수 없는 문명의 고통이 없는 세상, 불구자라고 차별받는 신체장애의 고통이 없는 세상, 가족 간의 갈등으로 가족이 가족을 죽이고 상처 주는 윤리도덕이 없는 세상, 이념적 갈등으로 피아간에 이념과 종족으로 갈라져 전쟁
경남경찰에 거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비록 밀양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차단하고 저지하는 방법이 과잉공권력이란 비판대에 올라 있으나 명령에 움직여야하는 조직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참 고달픈 직업이 그들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한편으론 생존권과 직결된 주민들의 행동을 좀 더 이해하고 삶의 터전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경남경찰은 그런 비난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도민을 지키는 아르고스로 거듭나고 있다. 이철성 경남경찰정창 부임 후 취임사에서 밝혔 듯 법질서 확립과 4대악 근절을 위한 노력 배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협력치안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것만으로도 도민들은 범죄로부터의 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방호벽이 두터워지는 걸 실감한다.
자연재앙을 적나라하게 표출한 외화 ‘투모로우(TOM0RROW)’나 천만관객의 반향을 일으킨 ‘해운대’를 관람하고 난 뒤 대한민국도 대형재해의 무풍지대는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이 몸서리치도록 깨달은 적이 있었다. 2014년 1월 13일 오전. 마산정토회 큰 법당에서는 정토회 소속인 에코붓다(eco buddha)의 자원봉사자로부터 ‘빈그릇 운동’이란 강의와 함께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는 게 지구를 살리는 생태적 깨달음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또한 ‘환경실천 12가지의 항목’은 하나같이 지구를 살리는 특효약처럼 보였다. ‘(사)에코붓다’는 지난 1988년 3월에 ‘한국불교사회교육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4년 환경부로부터 ‘한국불교환경교육원’으로 사단법인 인가를 받아, 2005년부
새해의 사자어로 좋은 문구들이 거론됐지만 눈에 띄는 게 ‘도행역시(倒行逆施)’라는 문구가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사마천의 사기 오자서열전’에 나오는 말로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나쁜 일이나 악정을 도모해 도리와 상식,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세계 어떤 나라에도 선정을 베푼 통치자와 독재정치로 한 시대를 지체장애로 만든 인물들은 있었다. 어느 국가나 어느 시대건 목민과 폭정을 가름하는 주역은 측근들이었다. 누가 측근이 되느냐에 따라 국정의 운영방식은 달라졌고 백성들의 삶 또한 태평성대와 맥수지탄(麥秀之嘆)으로 갈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전 국회의원을 비서실장으로 곁에 두고자 했을 때 이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로 가는 좌표에서 이탈했다는 여론엔 무게가 실려
2014년 새해는 갑오년(甲午年) 청말(靑馬)띠의 해다. 서양에서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풀이하나 동양에선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의 오행(五行)중 목(木)에 해당되며 목성은 사고가 역동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여자보다는 남자아이에게 맞는 사주로 해석하고 있다. 허나 여성이 사회 모든 면에서 남성을 거의 추월하는 현 시대에서 청마는 오히려 여성들에게 어울리는 운세로 풀이된다. 청마를 타고 역사를 단숨에 뛰어 12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갑오경장(甲午更張) 일명 갑오개혁(甲午改革)이란 개혁의 도도한 물결과 마주친다. 청국을 부모의 나라로 섬기던 사대주의와 성리학이란 유교적 폐쇄성 속에서 국제적으로 우물 안의 개구리나 다름없던 때에 동학혁명이 일어나 노예에 불과했던 하층민의 인권의식은 일깨웠으나 결국 청국의 몰락으
곧 성탄절이다. 캐롤송이 거리에 울려 퍼지고 구세군의 방울 소리가 세인의 양심을 두드린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모든 종교단체에서는 연말연시에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모금이 줄을 잇고 어느 독지가는 6000만원이 넘는 무기명 채권을 구세군 냄비에 쾌척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는 훈훈한 소식도 들린다. 며칠 전 광주광역시에서 들려온 온정들은 갈수록 삭막해져가는 세모를 모닥불처럼 덥혀주었다. 실직자가 돼 생활이 곤궁해지자 세 살 난 딸의 양육을 위해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부부에게 담당 경찰관서의 경찰들과 현직 부장검사를 비롯한 전국에서 독지가의 온정이 답지했다는 소식이었다. 살아가면서 인간이 느끼는 것은 행복보다 불행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인류의 삶이 행복했다면 성인들이 출현해 구원의 메시아
철도파업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정치의 안정화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대자보와 실제행동으로 학생들까지 나서는 하수상한 시절이 되고 말았다. 장기간의 철도파업 하나만 놓고 봐도 이 문제에 대한 지혜롭지 못한 강성 대처와 현 정권 들어 동가식서가숙하는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호응도는 너무도 낮다. 코레일 문제 하나만 놓고 짚어보자. 겉으로는 철도파업이 국민 불편을 가중시키고 수출입수송을 지연시켜 국가경제를 좀먹는 철도노조의 사보타주라고 국민과 경제를 볼모로 한 여론정치를 하고 있지만 그게 국민을 위하는 건지 기만술책인지는 시간을 좀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국민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국가의 동맥인 ‘코레일(Korail : 한국철도공사)’의 민영화에 반대해 파업에 동참한 8000명에 가까운 철도노조원 전
박완수 창원시장은 일류보다는 삼류라는 이미지가 더 어울린다. 일류주의란 대중적 선호도와는 거리가 먼 명예나 권력추구용 인물들에게 어울리는 명사다.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은 일류가 아니라 삼류들이었다. 부처님과 예수님 또한 자신을 낮춰 삼류인 비구(比丘)와 목자(牧者)를 고수했기에 오늘날까지 중생과 인류의 등불로 남아 계신다. 며칠 전 12월 6일, 창원교통문화연수원 대강당에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2시간여의 통일 대담으로 진정한 통일의 부가가치를 알기 쉽게 설파한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도 삼류정신의 소유자다. 학력이 고등학교 1년 중퇴인데도 핍박받고 소외받는 인류가 있는 곳에는 어느 곳이든 그 분이 있다. 법륜스님 역시 일류를 원했다면 지금쯤은 대형사찰의 주지로 호의호식 했겠지만
완벽(完璧)이란 흠이 없는 무결점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완벽이라고 말할 사물이나 생명체는 없다. 가장 쉬운 얘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를 돌로 쳐 보아라!”라는 요한복음 8:7절의 대목이 생각난다. 그러므로 자신들에게도 흠결이 많다면 남을 꾸짖을 때 심사숙고하며 결정을 내려야 하는 법이다. 또한 남의 잘못을 꾸짖을 때는 너무 엄하게 하지 말라. 상대가 그 말을 알아들을만한지 가늠해야 한다. 알아듣지 못한다면 원한과 분쟁만 일으킨다. 타인에게 착한 일을 일러주거나 가르칠 때 너무 높은 것으로 기준을 삼지 말라. 깨닫지 못한다면 가르치는 사람이 오히려 어리석을 자가 되고 만다. 사람이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 이
일본이 드디어 그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아주 맛보기로 현재는 군사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한다는 구실이지만 미국과 집단적자위권조약을 체결한 이면을 들여다보면 대륙침략의 야심찬 야욕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독도는 일본 땅은 1탄, 한국을 비롯한 지구상의 분쟁에 자위대를 파견한다는 게 2탄, 대륙침략의 원흉이자 을사늑약의 원흉을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로 내 몬 것이 3탄 시리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도둑놈이 매를 든다는 우리 속담인데, 어쩌면 이번 3탄 시리즈가 그 속담과 잘 맞아 떨어진다. 세계에서 전화위복에 가장 능숙한 일본의 이중적인 외교 전략은 1891년 3월11일로 돌아가면 그 실체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봄이라기엔 약간 한기가 느껴질 법한 기온에도
불교에서는 시간과 세월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나의 시공이라는 원 속에서 우주의 생성원리가 윤회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둥근 원을 들여다보면 어디에도 시작과 끝이 없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강물처럼 끝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며 인간의 삶은 그 강물에 떠내려가는 부표물일 뿐이다. 우리는 함께 흘러가는 동일체일 뿐, 그러다가 서로 부딪히면 인연이라 하여 잠시 머물다 다시 제각기 다른 길로 흘러가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내외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소세를 마친 다음 외출에 나선다. 30여년 동안 함께했던 시간들은 과거와 현재에도 함께 했고 미래에도 더불어 할 여행인줄 모르겠다. 매일 백팔 배를 올리는 ‘소봉암’이라 명명한 조촐한 암자(거실)에 모신 부처님이나 지구상의 사찰에 모셔진 어
따뜻한 미소는 삭막한 세상을 정화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거나 품에 안고 고즈넉이 달래는 엄마의 미소는 인간의 성장판 가운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비록 피가 흐르지는 않고 온기가 느껴지지는 않아도 미륵반가사유상이나 성모마리아의 입상 앞에 서면 우리는 착한 중생이나 순종하는 신의 자식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모든 미소가 상대에게 평화를 주는 건 아니다. 조롱하는 미소, 살기가 번득이는 미소는 오히려 분노를 유발시키는 다툼의 씨앗이 된다. 복을 짓는 방법 가운데 가난하고 재물이 없어도 덕과 복과 공덕을 쌓는 일곱 가지 방법을 일러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서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자세를 화안보시(和顔布施)라 하여 으뜸으로 친다. 따뜻하고 정다운
창원시의 새야구장 건립 계획안이 정부의 제3차 지방재정 투·융자심사위원회에서 승인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할 것이다. 새야구장 건립 위치를 두고 KBO·NC와 창원시의 극한 대립속에 상호 주장의 갈등이 깊어가면서 안전행정부 투·융자심사의 통과가 어려울 것이란 염려가 팽배했으나 심사를 통과 하면서 국비 확보에 파란불이 켜졌다. 창원시가 추진하는 새야구장은 진해구의 옛 육군대학부지 8만8000㎡에 최첨단 야구장으로 조성돼 창원시가 연고지인 ‘NC다이노스 프로야구단’의 홈구장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건립될 새야구장은 안전행정부의 제3차 지방재정 투·융자심사에서 규모는 고정석 1만8000석에 잔디좌석 4000석 등 2만2000석으로 정부의 조정 조건을 충족하면서 조건부 통과됐다. 하여 이쯤에
약속이란 한 인간의 인격과 품격을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가늠자와 같다. 우리는 흔히 주변에서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성(性)을 갈겠다거나, 손에 장을 지지겠다.” 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필자가 칠순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약속 불이행을 지키기 위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을 바꾸거나 인두로 손을 지져 병원에 입원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 우리가 미개한 구시대라고 폄하하는 2천여년 전에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상황은 국민들, 특히 약자나 소외계층들은 믿음이 없는 세상, 약속이 없는 땅에서 유배형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법가사상의 태두로 역사에 오르내리는 ‘공손앙’은 나무 막대기를 대궐 문밖에 세워놓고 그 나무를
진해의 상징인 해군작전사령부(이하 해작사)가 부산으로 옮기고 난 뒤의 진해는 순식간에 유령도시로 변했다. 해방 전에는 일본의 해군기지로,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해군 1번가로 자존심을 지켜온 진해시민들의 분노와 상실감은 두 배였다. 군사지역의 특성상 안보가 우선 순위였기에 창원이나 마산시민들과는 달리 진해시민들은 수많은 불편을 감내하며 묵묵하게 살아왔다. 마진검문소나 안민검문소, 용원검문소를 거쳐 시 내부나 외부로 출입하는데도 신분증제시를 요구하는 군경들의 검문 때문에 잔뜩 주눅이 들어야 했고 바다가 보이는 곳은 통제구역이라며 군사그린벨트로 묶어놓고, 2층 이상 건물을 신축하려해도 해군통제부사령부(현 진해기지사령부)의 허가가 시청 허가보다 우선순위였다. 국법위에 군사보안법이 상위에 있었고 재산권행사조차 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