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숲 아파트 12층에서 문득 안민고개 벚꽃 터널 길을 바라다 본다.태백 삼거리 도불산 굽어돌아 생태교까지 느릿느릿 이어지는 십리 벚꽃길이 사뭇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로다.4월의 밤은 점점 무르익어 저마다 꽃잎들이 요염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연분홍 파스텔로 마구 칠해놓은 터널 길이 마치 은하수(銀河水)를 퍼담아 그대로 펼쳐놓은 것 같구나.숨막힐 것 같이 풍만한 여인(女人)의 관능적(官能的)인 몸짓인 양 온 몸이 그대로 찌리릿 감전(感電)된다.아, 짓누르지 못할 저 여린 생명체와의 교감(交感)수직상승하는 치명적(致命的)인 오르가즘이여 !‘4월에/4월에/진해로 오시오./작은 새마냥/훨훨/마진고개 넘어/당신의/지순한 사랑/흐드러지게 피어있는/내 고장 진해로 오시오.’ 하고 고(故) 황선하(黃善河) 시인은 노래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종시’와 아직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4대강’ 문제를 바라보면서 문득 ‘애빌린의 역설(Abilene Paradox)’이라는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애빌린의 역설’이란, 모두가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또한 사실 아무도 동의하지 않은 역설적 상황인데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잘못된 의사결정에 이르는 말이다.이는 조지워싱턴 대학의 제리 하비라는 교수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상황을 재구성해보자.때는 아주 무더운 어느 여름날 오전이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말한다.“우리 애빌린에 가서 점심이나 먹고 올까?”그런데 애빌린이라는 곳은 이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고장에서 무려 170km나 떨어져 있는 먼 곳이고, 게다가 사실 변변한 식당도 없는데다가 특별히 구경할 거리도 없는 아주 작은 도시가 아닌가?하지만
불교계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宗正)이신 ‘도림 법전’ 예하께서 오는 5월 21일 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 날’에 즈음해 법어를 내리셨다. “부처님은 미완의 인간으로 태어나 해탈의 길을 열고 우리 중생들 곁으로 다가섰다. 무명 속에 밝은 길이 있고 번뇌 가운데 깨달음의 길이 있다. 모든 생명체가 청정법신의 본래 면목을 갖춘 부처며 다음 부처인 미륵의 현신이다. 본래 성인도 범부도 없으니 미혹하면 범부고 얽매임에서 벗어나면 곧 부처다”라는 말씀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전역과 지구촌을 순회하며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만들기 위해 중생의 곁을 직접 찾아다니며 실천자비불교를 설하는 정토회(淨土會)의 상수(上首:지도법사)이신 법륜 큰스님 역시 5월 8일 경남 모 시의 ‘열린 법회’에서
불교계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宗正)이신 ‘도림 법전’ 예하께서 오는 21일 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 날’에 즈음해 법어를 내리셨다. “부처님은 미완의 인간으로 태어나 해탈의 길을 열고 우리 중생들 곁으로 다가섰다. 무명 속에 밝은 길이 있고 번뇌 가운데 깨달음의 길이 있다. 모든 생명체가 청정법신의 본래 면목을 갖춘 부처며 다음 부처인 미륵의 현신이다. 본래 성인도 범부도 없으니 미혹하면 부처고 얽매임에서 벗어나면 곧 부처다”라는 말씀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전역과 지구촌을 순회하며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만들기 위해 중생의 곁을 직접 찾아다니며 실천자비불교를 설하는 정토회(淨土會)의 상수(上首:지도법사)이신 법륜 큰스님 역시 5월 8일 경남 모 시의 ‘열린 법회’에서 “부처
내가 사는 아파트 운영은 용역관리에서 13년 전부터 주민들에 의해 직접 운영되는 경비절감의 주민자치 방식으로 변경했으며 평균 1개월에 한 번 관리주체(관리소)와 회의를 통해 아파트 개·보수나 공동주택 주민들이 지켜나가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권리와 의무)에 대해 결정한 후 일정기간 회의결정문을 공지한다. 아파트 장기수선계획에 따른 공사 때에는 주민 과반수 이상 동의와 엄격하게 3개 이상의 법적으로 자격을 갖춘 업체에 입찰을 붙여 가능한 가격대가 현실에 맞거나 사업실적이 높은 업자를 표결로 선정한 후 주민들에게 최소 5일 이상 입찰 선정에 따른 자세한 회의결과와 업자선정을 고지한다. 자치위원장이나 자치위원 한두 사람의 입김으로 장기수선에 따른 대형 공사나 100만원 이상의 소규모 개·보수에 따른 업자선
구제역 파동이 소에서 돼지에까지 만연돼 가고 남해안 일부에서는 패류독소 검출로 농민과 어민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미증유의 재난이 대한민국 전역을 휩쓸고 있다. 그런데도 이 사회가 조명하는 곳은 남북대치의 상황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마치 나라 전체가 주적의 공격에 초토화 된 듯 야단법석이다. 안보정치로 선거 때면 불안한 상황을 연출해 표심잡기에 온 국가 공권력이 동원됐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이 생각난다. 싸움은 곰이 하고 돈은 사람이 챙긴다는 속담이 실감나는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것도 모자라 종교계 내부의 일에 정치권이 개입해 이것 역시 교계 내부의 개혁파와 수구파의 쌈박질들이 제왕의 지위를 버리고 무소유로 살다간 부처님의 업적을 훼손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고 정치
요즈음 한국불교의 가장 중심적인 교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봉은사 문제로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달아 불교신도들끼리도 그 문제로 인해 심적 갈등과 부담을 느끼고 있다. 봉은사주지와 한 거사의 양심발언은 진실이고, 한나라당 원내 대표나 이 모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불교의 천적으로 간주돼 이 정권이 불교계를 노골적으로 억압하고 말살하려 한다는 생각은 너무 피해의식에 고착된 불교계와 불교신도들의 앞서가는 생각이 아닌가 싶다. 이번 봉은사 사태의 파장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예민한 문제를 염두에 두었다면 정치권과 스님들 피아간에 서로 신중하게 고민하며 접근해야 할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종교는 권력을 쥔 자들이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필요에 의해 항상 이용되어 왔고 그 빌미를 제공한 것도 종교계를 이
일제 강점기에 북 백범(北 白凡) 남 백산(南 白山)이란, 상해의 임시정부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계시고 국내에는 백산 안희재 선생이 계신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의령은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태어난 곳이다. 1885년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난 백산 선생은 도제양성이 곧 국가경쟁력의 우선순위라는 것을 깨달아 1907년 상남학교를 세우고 1908년에는 의신학교, 1909년에는 동래구명학교와 대구 교남학교를 설립해 교육만이 조선 청년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켜 독립투쟁을 고취시킨다는 실사구시의 홍익인간 배출에 전력투구 했다. 또한 27세에 소련으로 망명해 대동청년단을 조직한 후 독립순보를 발간했고 서른 살 되던 해에 귀국해 부산에 백산상회를 세워 그 이익금 전액을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지사들을 지원하는데 쾌
해군 특수전여단(UDT)의 노병인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이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치러졌다. 그 뒤를 이어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쌍끌이 어선이 상선과 충돌해 선원 전원이 사망하거나 실종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졌고 미궁에 빠졌던 천안함의 승조원의 사체가 발견되고 있다는 속보가 들려온다. 온 국민이 그토록 가슴 졸이고 기도하며 생존을 기원했던 승조원들의 사망이 남기훈 상사의 유체 발견을 시발로 기정사실로 드러난 순간, 한 가닥 희망이란 가는 끈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내 손자, 내 아들, 내 형, 내 아우, 내 조카가 사망한 듯 대한민국은 상갓집으로 변했다. 이 시간에도 각 군의 훈련과정에서 부상당한 장병들과 질병으로 후송당한 장병들이 하루 몇 명씩은 국군통합병원이나 야전병원에서 전사하고 있다. 그런데도
4월의 진해는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설국(雪國)의 무대였던 일본 북해도 지방의 니가타 현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진해는 장복산 터널과 안민터널, 안민고개를 넘자마자 한 폭의 정물화처럼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진다. 얼마 전 KBS를 통해 방영된 인기절정의 주말 연속극 ‘아이리스’의 일본 촬영지 니카타 현은 올 겨울 한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일본 니카타가 눈의 나라 설국이라면 대한민국 진해는 단연코 꽃의 나라 화국(花國)이다. 봄의 요정을 연상케하는 연인들의 감미롭고 따스한 체취처럼 벚꽃의 향연과 다채로운 행사가 가미된 군항제의 체감온도는 더 높다. 그 현란한 꽃의 나라 진해의 제48회 군항제가 3월 30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환상의
개인이기주의로 치닫는 삭막한 세상에서 훈훈한 인정이 깃든 얘기들을 대하면 그나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정치가 안정되지 못해 공직사회와 국민들이 갈팡질팡 허둥대는 요즈음이고 보면 예전 경주 최씨들의 가훈에 얽힌 드라마는 난세라는 오랜 가뭄에 뿌려진 소나기처럼, 삼동에 몸을 녹여주는 화롯불처럼 훈훈했다. 또 그 뒤를 이어 천민으로 태어나 한 지역민의 굶주림을 면하게 한 제주도 거상 김만덕 부인의 자선이 브라운관을 타고 있다. 이런 얘기는 천 번을 들어도 싫지 않은 전설 같은 실화들이다. 우리가 사는 경남에도 경주 최부자나 제주 김만덕 부인과 같은 분이 있었다. 창녕은 낙동강을 낀 기름진 고장이며 신라 때는 비사벌 성으로 진흥왕이 순수하며 순수비(巡狩碑)를 세우고 백성을
불교에서 말하는 자유는 자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걸림 없는 삶인 무애((無碍)와 버리는 삶인 무소유(無所有)를 뜻한다. 불교의 교조(敎祖)인 고오타마는 강력한 제왕이 될 수 있는 보장된 신분을 버리고 스물아홉의 나이에 궁궐을 뛰쳐나가 수행자가 됐다. 결국 고오타마는 한 제국의 왕위를 팽개친 대신 하늘과 땅(人天)의 스승으로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리의 왕인 부처님(佛陀)으로 살아계신다. 현실세계의 모순은 모자라고 무식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차지하고 너무 많은 지식을 소유하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지전 몇 천원을 불상 앞에 놓고 세상의 모든 명예와 부와 권력을 손에 쥐게 해달라고 일구월심 기도하는 중생들에게 과연 부처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부처님은 제왕의 지위를 버
법관 개개인이 곧 사법부이듯 국회의원 개개인도 곧 입법부라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절대적 불가침의 고유성역이다. 정당의 정체성 밑에 함께 모일 수는 있지만 국회건 지방의회건 간에 의원 고유권한인 입법 활동은 침해받아서는 안되는 면책특권이 부여된다. 민주당이 추미애 의원을 당명에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윤리위에 제소한 것과 세종시 문제에 원칙을 주장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당내에서 비판하는 게 과연 올바른 판단일까? 한나라당의 박 전 대표가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몽니나 어깃장이 아니라 약속의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적 여론을 대변한 것이며 추 의원의 의사집행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발전의 기폭제로 오히려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국회나 시·도의회와 기초의회는 정부와 광역과 기초자치
60년 만에 찾아온 백호(白虎) 해인 경인년(庚寅年)을 의미하는 사자성어로 216명의 지식인들이 ‘강구연월’을 채택했다. 번화한 거리를 달빛이 은은하게 비춘다는 뜻이다. 정월 초하루 남도의 아침은 새벽부터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선 자동차의 소음으로 도로는 북적댔고 달빛도 명소를 찾아 가는 그들의 발길을 환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그처럼 국민에게 해와 달로 비유되는 올바른 정치 역시 믿음과 신뢰를 본체(本體)로 삼는다. 성서나 경전에 거짓이 있다면 인류를 망치듯 치자(治者)가 신뢰와 믿음이 실종된 임기응변의 거짓부렁으로 국민을 속인다면 그 국가의 미래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지게 마련이다.중국사 십팔사략(十八史略)의 첫 번째인 요제조편(堯帝條篇)에는 강구연월과 비슷한 고복격양(鼓腹擊壤)이란 말이
열린사회 희망연대의 상임대표이자 진해 종합사회복지관장인 백남해 신부께서 어느날 새내기 소설가로 내 앞에 다가왔다. 나귀 등에 걸터타고 황금 닭을 품에 안기까지 그가 평생 수도자로 걸어온 능선 일곱 개를 지나쳐온 과정을 173페이지에 대충 추슬러 담았다. 지난 21일 저녁 7시 마산 3·15 아트센터에서 열린 조촐한 발간기념회에 모인 군상들도 대충 그 정도 숫자의 부스러기였을 게다. 행여 깨질까 싶어 선뜻 만지기가 두려운 고가의 청화백자가 아니라 깨지고 부스러져도 다시 붙이면 오히려 더 친근해질 분청사기처럼 소설의 제목 역시 ‘부스러기 성경 이야기’여서 책장 열기도 읽기도 수월했다. 백 신부와는 10년 전 쯤 민족사를 바로 잡고자 하는 마산에서 일어난 희망연대의 친일청산 쿠데타(?)때 진성회원
캐럴송이 울려 퍼지는 세모에는 지구촌 대다수가 축제의 열기로 휩싸인다. 인류의 스승이자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탄신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지막 임종은 슬픔과 통곡소리로 진동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골고다 언덕에 서 계신 모습은 단순한 죽음이 아닌 부활이기에 살아 있는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영생과 긍휼이란 축복의 자양분으로 지금껏 인류를 구원하고 계신다. 올 초 지리산 실상사에서는 초교파적인 모임이 있었다. ‘단순 소박한 삶’을 주제로 한 도법스님의 설법과 송기득 교수(전 목원대 신학과 교수)의 목회는 의존하는 종교에서 실천하는 종교로 탈바꿈하는 지혜를 전달해주는 소중한 자리였다. 송 교수의 설교와 필자의 생각을 접합시켜 인용해 본다.
국가권익위원회의 청렴도 조사 결과 경남도가 전국 꼴찌의 불명예를 안았다. 경남도는 앞으로 부패 관련 공무원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문책하겠다고 도지사 명의로 보도 자료를 발표했으나 국가원수의 엄포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부패를 저지르는 공직자들에게 과연 지사의 선전포고가 얼마나 약효가 먹혀들지 궁금하다. 김태호 도지사 취임 당시부터 지사의 정치연고지 인맥들로 채워지는 정실인사로 연공서열이 무너지고 승진돼야 할 고가점수가 높은 공무원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과정에서 이미 인사는 만사가 아니라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들이 두고 쓰는 전가의 보도로 전락한지가 오래됐다는 얘기는 정설로 굳혀진지 오래다. 사또 지난 뒤 나팔소리처럼, 불 꺼진 뒤 소방차 출동처럼 일련의 치부에 대해 뒤늦게 내
이재복 진해시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영전에 찾아가 조의를 표했지만 ‘사람의 인생이란게 이렇게 무상하구나’라는 연민의 정을 지금껏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 시장과는 두 번 독대해 담소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언변이 뛰어나고 자기주장이 매우 강한 일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참 정이 많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다혈질을 겸비한 사람들에게서 엿보이는 감성적인 성격은 역으로 애증과 호오감정을 잘 희석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예감은 적중했다. 진해에 시민단체가 생기기 전부터 필자는 도내 논객 중 진해시정과 이 시장을 가장 많이 비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농부가 과일나무가 미워 곁가지를 자르고 자식이 미워서 회초리를 드는 부모가 있으랴. 애석하게도 1년 전 마지막
정치를 크게 둘로 나누면 힘의 정치와 대화의 정치로 나뉜다. 민주주의란 대의정치, 즉 서로 의견을 걸러 그 중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는 소통 정치를 말한다. 말이 앞선 정치보다 듣는 정치(聽政:청정)가 행해질 때 어느 시대건 안정을 구가했다. 청정(聽政)과 가장 어울리는 인물로는 단연 세종대왕이 꼽힌다. 세종은 군신(君臣)이 하나 되어 의논하는 토론정치를 원했고 신하들에게 소신 있는 진언과 직언을 하도록 했으며 지위고하를 떠나 다중이 모여서 결정하는 중지정치(衆智政治)가 토착되도록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유도해 나갔다. 중지란 권력과 힘의 중심인 제왕적 논리가 아닌 여럿의 의견을 집약해 백성을 위한 최선의 정책을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여의정치(與議政治:여론취합정치)라고 말한다. 유독 ‘더불어
만물이 잠든 심야에 119 구급대나 소방차의 비상경광등 소리에 가끔 잠을 깬다. 갈수록 인구와 차량이 많아지고 산업시설과 인구팽창으로 인한 화재와 응급환자 및 교통사고가 빈번하다. 군인과 경찰이 안보와 범죄의 첨병이라면 화재는 물론 응급환자와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해의 현장에서 앞장선 119구급대나 소방관들은 재해의 첨병들이다. 그런데도 일반 군인과 경찰, 공무원들에게 지급되는 추가근무수당이 지불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대다수 국민들은 원칙 없는 정부나 지방정부의 형평성을 잃은 처사에 대한 비판이 높다. 한해에 화재와 재해의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해 치료받는 소방관들은 전체인원수로 따지면 군인과 경찰, 일반 공무원들보다 공무집행으로 인한 사상자가 더 많다고 한다. 또 근무시간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