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려와 용틀임하며 잠시 쉬는 곳이 삼신산(三神山)으로 일컫는 지리산이다. 모산인 지리산은 우측에 차향(茶香) 내음 그윽한 하동을 낳고 좌측에 충절과 정절의 상징인 진주를 낳았다. 경호강을 걸러내 남강으로 흘려보낸 강안(江岸)의 물빛은 세모시나 무명베를 강물에 적시기만 해도 쪽빛으로 염색될 것처럼 푸르디 푸르다. 진주는 천연염료와 비단의 도시로만 유명한 게 아니라 정사(正史)에 기록된 대한민국의 명소가운데 이보다 더 자랑거리를 지닌 도시는 드물다. 이처럼 진주(眞珠)처럼 곱고 아름다운 고을은 그저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임진·정유재난 때 왜군에 의해 진주성이 함락되고 성내의 살아 있는 것은 인간이건 축생이건 모두 몰살당했고 소수의 기생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몇 만평의 좁은
정치란 큰 의미에서 바다와 다를 게 없다. 바다는 모든 강과 냇물은 물론 시궁창 오염된 하수까지 받아들인다. 또한 정치 안에 국가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이 포함돼 있고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공정하게 재단해 처리하는 것도 정치다. 또한 적을 동지로 끌어들이는 것도, 우군일지라도 상식이하라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단도 정치며, 화합과 상생이라는 용어는 곧 용서와 이해를 뜻하기 때문에 호오(好惡)가 개입돼 있다면 그건 싸움이지 정치가 아니다. 자유당 정권이나 유신통치를 통해 영구집권을 꾀했던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은 비극적 종말로 생을 마감했으니 충분히 그 지은 죄 값은 치룬 셈이다. 공과 과 가운데 과만 붙들고 늘어진다면 박 전 대통령의 업보는 대선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딸 박근혜 후보에게 올가미와
어느 시대나 정권창출의 주역들이 어떤 처신을 하느냐에 따라 국운의 명암(明暗)이 엇갈렸다. 얼마 전 금태섭과 정준길이라는 분들의 말 춤(?)을 보면서 진실게임을 떠나 이런 저질 정치 토크 쇼는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는 유쾌하지 못한 짓들로 생각돼 아주 실망했다. 가수 싸이의 말 춤이라면 모를까 이런 춤은 딱 질색이다. 정치가 전쟁이라고 가정할 때 대선후보자의 책사(策士)나 모사(謀士)라면 자신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망각하면 안 된다. 선무당 남의 집구석 망치고 제사상 망신은 꼴뚜기 때문이라는 속담은 그런 경우를 빗댄 것이며 이처럼 측근들의 단순무지한 말과 행동이 전도가 유망한 인물들을 단숨에 추락시키는 사례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장자(莊子)는 이 같은 사람들을 향해 “
한·미 FTA 등 국제간의 교류는 윈윈이란 측면에서 거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 것은 팔고 싶고 남의 물건은 사주지 않는다면 이 또한 다자간의 무역역조라는 심각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국가 최대의 안보자원인 식량에 대한 자급자족과 지구 최후의 식량안보라는 연근해 어업이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농어업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다른 국가사업에 비해 부족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며 관치 농어업이 오히려 농어촌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예를 들어 정부에는 수백 개의 공기관이 있고 그 기관의 자본이 국가자본을 능가하는 제2의 정부가 아니라 권부로 자리 잡았다. 적자가 몇 조에 이르는 공기관의 임직원들도 감독관청의 부실한 지휘감독을 틈타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해
노동부가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2012년엔 시간 당 4580원, 2013년엔 4860원으로 인상했다. 최저임금법 10조 1항에 근거를 둔 인상률이 280원이다. 그런데 국민의 봉사자요 희생양을 자처하는 19대 국회의원들의 세비는 16%나 올라 1억3796만원이란다. 이것도 국민들이 알까 쉬쉬 하며 전국회의장인 박희태가 도둑국회의 수장답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들과 오랜만에 보기 드문 상생의 묘를 보여준 아름다운(?) 합종연횡이었다. 그런데 이 합종연횡에선 썩은 악취가 풍긴다. 국회는 여·야를 떠나 국리민복을 위한 첨예한 토론과 격돌의 장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국민의 행복지수를 상승시키는 대승적 합종연횡이 아니라 국민을 속이고 동료국회의원들까지도 급료를 받고서야 알 정도로 교묘하게 예비비에 몰래
오는 12월 19일은 우리나라 18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와는 별도로 경남에서는 공석인 경남도지사 자리에 도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4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대선에 출마를 하면서 공석이 된 도지사 자리를 두고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은 당선이란 수식어가 나돌고 있다. 역대에 걸쳐 유일하게 야당 출신의 도지사가 당선되었으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 한 김두관 전 도지사로 인해 야당은 아직도 후보군에 오르는 사람이 손을 꼽을 정도이다. 이에 반해 새누당은 공천이 당선이란 생각으로 이름꽤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출마설을 흘리면서 20여명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마평에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들은 지방자치 단체장을 비롯해 행정관료 출신들과
병자호란과 더불어 이 땅에서 가장 지루하고 불행했던 전쟁은 임진과 정유재란이다. 선조대왕 37년 갑진년이니 1604년이다. 당대의 도승이자 스승인 팔도도총섭 서산대사가 열반했다는 부음을 듣고 묘향산으로 달려가던 사명당 유정대사는 중도에서 임금의 부름을 받고 스승의 임종을 치르지도 못했다. 나랏일이 더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조 선조실록과 징비록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토록 그악했던 왜구들이 풍신수길의 죽음으로 전란에 종지부를 찍고 그의 뒤를 이은 덕천가강(도꾸가와 이에야스)이 강화를 요청해왔으나 신하들 가운데 아무도 먼저 나서서 사신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 통탄하고 있는 차에 비국당상이 여쭙길 사명당은 승군의 대장이 되어 왜적을 누차 무찔렀고 더군다나 ‘중이라 처자식’이 없으
창원과 진해 사이를 가르는 경계를 안민고개라고 부른다. 창원 쪽 관망대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경남의 수부도시 창원이 한 눈에 들어오고 남쪽 관망대에서면 동화의 집처럼 아담한 동양의 나폴리로 손꼽히는 환상적인 진해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끔 한 달에 한두 번씩 등산을 가기 위해 안민고개를 오르면 언제나 짜증나는 광경을 목격한다. 안민고개 정자에서 진해 쪽 산 밑을 내려다보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거나 진행형인 난민촌인지 판자촌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밀집해 들어선 불법 가건물을 보면 진해의 미관을 좀 먹는 바이러스로 착각될 정도다. 속천에서 용원까지의 해안일주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근래 들어 개발된 산 밑 팔부 능선에 자리한 임도는 국제적 크로스컨트리 경주의 최적지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난 뒤 응원하는 관중이 건네 준 ‘독도는 우리 땅’이란 즉석 스케치페이퍼를 받아 들고 경기장을 질주한 박종우 선수의 세리머니에 대한 IOC의 메달 보류 결정에 찬·반론이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박 선수가 한·일간의 우호를 해친 주범으로 둔갑할 지 아니면 우국지사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고사처럼 역대 대통령 중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유일무이한 통치행위에 흥분한 일본 열도 역시 제국주의의 공동묘지인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맞불을 놓으며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고 더군다나 이 대통령이 ‘통석의 염’이란 형식적인 사과보다는 일제강점기동안의 살상과 약탈에 대한 실질적 보
죽음이란 자신의 존재가 우주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자살이건 타살이건 생명이 끊어진다는 데는 같은 맥락이지만 자의에 의한 자살과 타인에 의해 강제로 목숨을 빼앗기는 데는 큰 차이가 난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수치스럽게도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올림픽에서의 메달이라면 모를까 ‘자살 금메달’은 사절이다. 나라를 빼앗기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할복(割腹)한 민영환 공이나 단식으로 맞선 최익현 선생 같은 우국지사들, 인성(人性)개발이 아닌 시험인간만을 사육(飼育)하는 교육정책 때문에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국가의 동량인 청소년들, 경제난으로 목숨을 끊는 영세사업자나 중소기업인들, 진실과 정의를 알릴 수 있는 통로가 막히자 죽음으로 맞서는 외로운 사람들을 제외하고 자살에 대해 국민들은 탐탁
96년인가? 필자가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경남민언련)이사로 재직할 때이니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다. 그 해 10월 23 밤 7시. 창원대학교 사회과학관 22호관 105호 강의실에서 해마다 정례화 된 ‘경남민언련’에서 주최하는 시민언론학교 강의가 있었다. 당해 시민언론학교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토론을 통한 맞장 대결을 시도해보자는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준비됐다. 강사는 진보 쪽에서 가장 기피하는 인물인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자 칼럼니스트인 조갑제씨였다. 그 전 해에 진보파의 논객인 진중권 중앙대 교수 겸 시사평론가를 초빙했을 때 황우석 교수를 비판했다고 멀리 광주에서까지 몰려온 수십 명의 자칭 극우보수단체라는 사람들이 진 교수를 4시간이나 감금한 사례가 있었고 경찰 1개 중대까지 출동한 사례가 있었는지라
성인과 성현들의 도는 제왕과 고관대작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어리석은 민초들을 위한 길 잡이자 등불이었고 치도(治道)역시 백성을 아끼라는 벼슬아치들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정치의 계절이자 선거의 계절이다 보니 온통 말 풍년이다. 그러나 말 가지고 이룬 태평성대는 없었다. 거의가 구업(口業)을 짓는 미필적 죄악으로 종결이 나고 말았다. 역사가 말해주고 있잖은가? 만 권의 책을 쓰고 경전과 성서를 모조리 설교한들 서민들의 허기진 배는 부르지 않다.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박애(博愛), 그리고 하화중생(下化衆生)의 행동철학만이 진정한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하는 씨앗들이다. 당 현종은 제왕의 육신이 마르지 않고는 백성들이 살이 찔 수가 없다(我瘠肥天 아척비천)라고 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기득권자들이 검소질박을
법원의 상징을 저울로 제정한 것은 공평을 뜻하는 것이다. 저울이 터럭 몇 개만 차이가 나도 한편으로 기우는 것처럼 저울은 법원만의 상징이 아니라 법관들의 양심 그 자체며 성서나 경전 같은 것이다. 근래 대법관후보에 오른 계신교도인 김신 대법관 후보자(전 울산지방법원장)를 두고 개신교와 불교계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기독교계 신문인 국민일보와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 및 불교계의 언론들 역시 일촉즉발의 전투전야처럼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보며 별로 유쾌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최재천 국회의원(서울 성동 갑)이 7월 8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사법재판사상 유례가 없을, 민사법정에서의 원고와 피의자에게 강제로 기도를 하게해 ‘아멘!’을 하도록 강요했고 교회 관련 형사 사건은 유별시리 화해를
퍽도 시끄러운 세상이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百家爭鳴)에 비견될 만큼 논리는 안개비처럼 세상을 감싸고 있으나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결과의 빈곤은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더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내 말과 행동은 옳고 남의 말과 행동은 그르다고만 주장하면 결국은 고성이 오가고 주먹이 오가고 상대적인 감정과 증오는 곧 살인의 추억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화합과 평화는 미물과 축생도 원하거늘 영장류인 사람들이 바라지 않으랴마는 더 없는 의식주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대립과 격돌이 남발하다 못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려는 가치관의 타락 그 자체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단절하게 만든다. 우리 시대에는 과제만 있고 정답은 없다. 그러나 정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해와 배려, 상대에
외교는 국가와 국가 간의 전초전이나 다름없다. 외교관은 국가기관의 첨병이며 그들에 의해 국가의 흥망성쇠가 엇갈린 경우가 허다하다. 책사나 모사, 간자 등 염탐꾼이라고 천시하는 봉건시대에도 한 명의 책사 즉 현재로 치면 외교관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낸 경우가 역사서 곳곳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 및 한국은 표리의 관계로 얽힌 숙명적인 나라들이다. 이처럼 물고 당기고 먹고 먹히는 4강전에서의 승패는 탁월한 외교적 능력에 의해 결판이 나고 말았다. 동양 3국 중 1842년 남경조약 체결에 따라 중국이 가장 먼저 개국되었고 1854년 미국의 페리제독에 의해 일본이 화친조약이라는 명분하에 개방되었을 때 조선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도 쇄국을 종용했다. 동양 4국 중 외교관인 모사나 책사를 가
1960년 3월. 이승만 정권의 영구집권시나리오가 막이 오르자 경상도 조용한 바닷가에 자리한 마산 곳곳에서 봉화가 피어올랐다. 근대 한국 역사에서 그렇듯 위대한 민주주의를 위한 순수한 시민·학생들의 궐기가 처음 시작된 곳이 마산이며 3·15 정신은 민주주의를 떠받드는 주춧돌이자 대들보로 성역시 돼왔다. 민주주의 성지로 마산이 오롯이 각인된 데에는 한 젊은 학도의 죽음이 기폭제가 됐는데 그 이름도 거룩한 ‘김주열 열사’이다. 그해 4월 11일 오전 11시. 마산 신포동 중앙부두 앞 200m 지점 부근에서 괴이한 시체 한구가 떠올랐다. 사체는 10대의 소년으로 눈에는 최루탄 박혀 있었다. 이 소식은 경찰의 철저한 보안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입으로 회자돼 당시 부산일보 허종(許鐘)기자는 단숨에 중앙부두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護國)이란 글자 그대로 조국을 적으로부터 지켜낸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국영령들이 잠들어계시는 현충원은 정치인들이 무슨 날에만 국민정서를 의식해 떼로 몰려가 스킨십을 하는 겉치레의 의전정소가 아니라 한 국가의 정체성과 얼을 존치된 성역이다. 근대역사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는 6·25 전쟁이 아니더라도 역사 속에 외침(外侵)으로 인한 피에 절은 얼룩은 산하(山河)곳곳에 산재해 있다. 오천년 역사 속에 가장 잔인무도했던 천적은 북방민족이 아니라 일본이었음에도 우리는 일본을 알려고 하는 게 아니라 고작 일본정부나 우익단체들이 독도를 죽도(竹島:다케시마)라고 할 때만 흥분하다가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금세 일본을 잊고 마는 민족이다. 조선이 화이사상(華夷思想)을 숭배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3주기 추도식을 지켜보며 느낀 소회는 남달랐다. 정치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내세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자계승(適者繼承) 타령은 영면한 대통령을 묘역에서까지 끌어내 산술적으로 이용하려는 얄팍한 동상이몽의 상업적 수단으로 비쳐졌던 것은 필자만의 기우였을까? 3년 전, 그분의 위패가 안치된 봉하 마을 뒷산에 자리한 정토원은 인산인해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유택과 투신한 부엉이 바위주변은 전국에서 몰려든 수 백만의 인파가 흘린 눈물이 내가 되어 흐르는 통곡의 벽이었다. 금년은 어언 사후 3주기로 탈상(脫喪)이다. 그러나 5월 23일 오후 2시의 추도식 직전에 치루는 오전 10시 30분의 탈상 고유제는 서거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착잡함을 달랠 길 없었다. 오후 2시에
민주주의는 방관이 아니라 통제된 질서를 말하며 그 질서 속에서 국민의 삶이 균등하게 수평으로 이뤄지는 것을 뜻한다. 자유와 방종이 다르듯 국민여론을 받드는 것과 무시하는 것도 다르다. MB 정권은 힘 있는 재벌들을 더 축재할 수 있도록 한 도우미에 불과했으며 4년 동안의 정책성 공과에 점수를 매기자면 소외계층과 중산층을 위한 배려에는 지나치게 인색 했다는 데 동의한다. 단 한 명의 특정 재벌총수를 사면하기 위해 국무회의를 열어 국법의 지엄한 공평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도, 대홍수가 나면 4대강의 모든 보들이 무너져 더 큰 재앙을 가져온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부실이 예견됐던 저축은행 같은 사 금융에 대한 관리감독을 방기해 서민들을 두 번 죽인 것도 국가공권력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다. 재벌들
불교의 상징성은 사찰과 경전과 스님이다. 부처님 열반 이후 25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부처님 법이 지구상에 남아 수 많은 인류를 구원하고 있는 것은 그분의 제자인 구도자들의 수행과 깨달음과 전법 때문이었다. 불교계가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내부의 불합리한 제도를 개혁하지 못한 늑장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으나 타종교처럼 자신의 종교가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거나 남 탓으로 돌리는 법은 없었다. 불교는 깨달음을 종지(宗旨)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귀의 법등명(自歸依 法燈明)하고 법등명자귀의(法燈明 自歸依)란 가르침처럼 오직 자신을 의지하고 법을 의지하라는 불조의 교시는 억만년이 지나도 인류의 마음을 편히 쉬게 하는 안식처다. 언젠가 티베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