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진해에서 이충무공호국선양회가 개최하는 군항제는 불멸의 영웅이자 구국의 명장인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전승을 기리는 국가적인 대잔치이자 행사로 자리매김 한지 오랜 연륜을 쌓아왔다. 그러나 국민과 시민들의 관심과 성원 속에 치러지는 군항제 행사에 2년 전부터 디저트처럼 메뉴에 오른 단체가 있는데 그게 ‘국제군악의장페스티벌위원회(위원장 예비역 해군대령 이종길)’란 곳이다. 말이 국제행사이지 이 단체는 자국 육·해·공군 해병대와 몇몇 국가의 군악대를 초빙해 숙식과 항공료 및 체제비와 선물까지 증정하며 일회성 행사에 물경 10억이 넘는 돈을 펑펑 써대고 있다며 시민들의 성토가 드세다. 이 행사를 위해 국비와 도비, 진해시민의 혈세는 물론 기업과 금융권에까지 도움을 받으며 혼신의 노력을 기
양산은 부산과 울산과 더불어 3산으로 꼽히는 주요한 도시로 영남알프스라는 천성산과 영취산 신불산에 둘려 쌓여 있고 앞자락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복이 가득한 길상(吉祥) 을 지닌 북서부 경남의 알토란같은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부산과 울산과 인접한 최대의 배후도시로 불교의 5대사찰(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중에 으뜸가는 통도사가 자리 잡고 있어 불자들에겐 성지(聖地)의 명소로 손꼽혀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양산을 찾는다. 그 양산이 천성산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웅장한 일출처럼, 영남알프스의 산맥이 꿈틀거리며 다시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용트림을 하며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양산시 홈피에 들어가면 홈피부터가 타시와 구분이 될 정도로 산뜻해서 찾
화왕산 산불사고가 발생한지도 한 달이 거의 지났다. 오늘 따라 ‘하담 이영희’ 선생의 화신(火神)이라는 시가 문득 떠오른다. 붉은 심장을 갈라놓은/ 천년의 세월을 돌아/분홍 꽃을 피운 능선에서/사각거리며 한을 눕히고 살았지/불뫼산 하늘에 쉰 해를 몰락하며/꿈을 키운 보름달이 뜨는 밤/꽃보다 아름다운 산 여인을 안으려 혼을 살라 날랐다/ 춤추는 령이 피의 맛을 보는 절정에/붉은 혀에 떨어지는 환희/꽃들이 되어 사람들이 차린 축제는 /비련의 살 속을 헤집고/살풀이 하는 무량한 기쁨이 춤추는 나의 날이다/태워라 야욕을 씹으며/배바위 올라 미친 듯 나래를 펼치리라/눈물이 마른 불이 되어/ 그대들의 오욕을 태운 전설이/오랜 시간의 모롱이를 돌며/죽음을 망각하며 지낼 것이다/ 노루가 뛰어놀며 노시인의 애끓는
분지형의 공단도시라는 지형적 요건으로 인해 창원의 대기오염도는 연중 몇 번의 오존주의보를 내릴 정도로 심각하다. 그 오염의 도시를 클린 도시로 만들기 위한 녹색혁명이 박완수 시장에 의해 점화됐다. 시장 스스로가 관용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을 함으로써 전국최초로 자전거 시장이란 닉네임을 얻었고 박 시장에 의해 시발된 녹색혁명이 ‘누비자’란 캐릭터로 변신해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박 시장은 전문행정관료로 잔뼈가 굵은 분이기에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며 바라는지 상황판단이 빠른 분이다. 누비자 운동이 아니더라도 시민 배심원제도를 시정에 도입해 열린 시정을 전국최초로 도입한 분이며 시민단체와도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해 공단근로자가 대다수인 진보성향의 도시를 큰 마찰 없이 이끌어나가는 운영의 묘를 발
오동나무를 3년 동안 밑둥치를 잘라주는 이유는 속이 꽉 찬 목재로 키우려는 지혜다. 인간의 속을 꽉 차게 만드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정전 가위질이다.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인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앞에서 불교신자인 우리 내외도 교황장으로 치러진 추기경의 장례식 광경을 지켜보며 눈물로 두 손 모으고 합장했다. 어쩌면 추기경의 임종은 육신을 털어버린 영생의 참모습을 보여주어 개인이나 집단이기주의에 절어 권력도, 정치도, 종교도, 지식도, 제 구실을 못하고 생존과 치부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준 무언의 마지막 설교였던 것 같다. 또한 추기경의 선종은 어쩌면 자신의 뒤를 따라 수도자가 된 자칫 말세의 세속주의에 물들기 쉬운 사제들과 성도들을 향한 최후의 미
먼저 화왕산 달집태우기에서 희생당하신 사상자분들의 영면과 빠른 치유를 기도드리고 그 가족들에게도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필자도 몇 년 전 화왕산 행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세상 일이 잘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린다는 속담처럼 만일 사고가 없었더라면 언론들이 창녕군수와 행사집행부를 향한 비판과 비난도 없었을 것이다. 창녕은 오랜 역사를 지닌 고도이며 진흥왕순수비가 자리하고 있고 소벌(우포늪)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태습지로 람사르 총회의 본 무대였다. 첨단산업의 특구하나 없는 농경에만 의존하는 창녕의 꿈은 어떻게 하든 자립형 군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군수와 공무원, 군민들의 의지와 노력이 남다른 곳이다. 창녕이 내건 미래의 꿈은 우리나라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부곡온천, 세계최고의 자연생태습지인 소벌,
공룡(dinosaur)이란 어원은 1842년 영국인 고생물학자 리처드 오웬(Richard Owen)에 의해 공식화된 백악기 시대 파충류의 이름이다. 공룡은 3억3000만년 전에 지구상에 태어나 1억6000만년 동안 살아온 육상에서는 가장 큰 동물로 인식돼 왔다. 고성의 상족암을 비롯해 경남 해안에서 최근에도 공룡의 발자국과 화석이 새롭게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공룡하면 역시 고성군 주변에 분포된 공룡나라의 흔적은 가히 세계적이자 대한민국 최고라고 할 수 있다. TV 드라마를 통해 공전의 멀티히트를 기록했던 ‘아기 공룡 둘리’는 공룡들의 거대한 몸짓에서 느끼는 공포감보다는 삭막한 현실에 모성애와 가족애를 주입시킨 대표적 애니메이션으로 시청각적인 생생한 의미를 부여했
진해가 갖는 상징성은 해군요새라는 특정지역 그리고 장천국제항이다. 지금은 세계굴지의 조선사인 STX가 들어서 조선 산업의 메카로 발돋움 했지만 과거 진해항의 허브는 해군작전사령부와 장천국제항이 진해의 두 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해작사마저 부산으로 이전하고 진해화학과 동방유량의 도산, 단열재인 석고보드의 주 기업 벽산 역시 여천 남해화학 단지 내로 옮겨간 뒤 진해국제항은 흉물스런 죽은 사체의 몰골처럼 모래와 고철 등 잡동사니 화물 창고처럼 변해버린 지 오래됐다. 그런 진해의 유일한 미래의 희망은 오직 진해. 부산 신항만이었고 부두라는 매개체를 생존의 둥지로 여기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선창가의 사람들에게 새로 조성된 북항 선석에 부산항운노조원만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조처한 부산항만공사의 편향행
성인과 현자가 냇가의 잔돌처럼 많았던 춘추전국시대에도 세상은 어지러웠고 백성들은 도탄과 기아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진시황제는 희대의 폭군이었으나 한비자(韓非子)의 글을 읽고는 “왜 이 사람이 내 시대의 인물이 아니었던가?”라며 애통해 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진시황제는 좋은 글에 감탄은 했을망정 성군이 아닌 폭군으로 일생을 마감했다. 민주주의 골간이라는 토론문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토론이 벌어질 때 수백 명이 들어도 수긍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들어도 납득할 수 있는 논리라도 자신의 뜻과 다르면 다중의 뜻보다는 억지나 다름없는 논리로 토론문화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토론문화의 진수이자 교과서로 통하는 ‘밀린다 왕문경’에 나오는 ‘제왕의 담론과 현자의 담론’이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며칠이 지나면 설이 다가온다. 설이 되면 우리는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상하 좌우로 덕담을 주고 받고 절을 한다. 절에는 존경과 감사의 뜻이 담겨있다. 근데 이 절이 최근 건강에 아주 좋은 수련법이라고 언제 어디서나 많이들 한다. 절에 대하여 알아보자. 절은 우리 고유의 선도 수련법 중에 최상의 것이다. 그 어원은 저+얼 이다. 저얼, 제얼인 것이다. 그러니까 절을 하면 제 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말이다. 단군성조께서 한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는 한얼 속에 한울 안에 한알이다’ 라는 말이다. 역사의 시원에서부터 우리는 얼 교육을 배태한 천손이다. 천손과 지손의 차이점은 절 문화에 있다. 절 문화가 살아있는 민족은 아주 발전했으며 그렇지 않은 민족은 사라져 갔다. 수많은 환란 중에서도
진해를 멀리 떠나왔나 싶었는데 하루는 진해에 사는 두 살배기 어린아이를 둔 엄마가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울음 섞인 하소연을 해왔다. “제발 저희 기적의 도서관을 도와주세요!”라는 울먹이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당분간 가고 싶지 않았던 진해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기적의 도서관은 어린이 전용 도서관으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과 간접적인 경험, 지식 등을 얻는데 도움을 주기위해 설립되었다. 설립 주체는 민과 관이 협력하여 건립한 것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낸 분담금과 시민사회단체들 그리고 민간영역이 기부한 각종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돼 미래의 꿈나무를 기르는 산실로 국민적 호응, 특히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진해시의 홈피는 지
무용지용(無用之用)이란 말은 장자(莊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나오는 대목으로 ‘쓸모없는 것이 때로는 쓸모 있는 것보다 낫다’라는 비유어다. 집을 잘 짓는 대목인 장석이란 사람이 제자 하나를 데리고 어느 지방을 갔는데 길가에 우람한 신목(神木)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무의 높이는 산을 굽어보고 키는 하늘을 뒤덮고 굵기가 열 아름이 넘을 정도여서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장석은 그런 인파를 곁눈질도 주지 않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자 구경을 하고 뒤늦게 헐레벌떡 쫓아온 제자가 “제가 도끼를 들고 선생님을 따라 목재를 다루고 배웠으나 오늘 본 저 나무처럼 훌륭한 원목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일별만 주시고 그냥가십니까?” 라고 아쉬운 듯 말하자 장석은 “쓸데없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산다. 사람이라는 용어자체가 살과 앎의 합성어이다. 살과 앎을 붙여서 빨리 읽으면 금방 알수가 있다. 누구에게든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당장 대답을 못한다. 왜냐하면 삶에 진지한 고민을 해 본 일이 별로 없고 해본들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어설프게 건강과 행복이 아니냐고들 한다. 독자여러분은 과연 삶이 무엇인지 명쾌한 답을 내려줄 수가 있는가. 이것은 근원적이면서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다. 제대로 알고 나면 삶이 즐겁다. 아이들이 대뜸 이 질문을 할때 어른들이 이것을 명쾌하게 답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왜살까 고민하다 우울증에 쉽게 빠지고 성적이 떨어지기 일쑤다. 어른이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말해주어야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을 것이 아닌가. 나는 삶을 이렇게 정의한
기축년(己丑年)이다. 소는 근면과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소에 관한 일화는 아무래도 불교와 연관이 깊은 것 같다. 부처님의 출가 전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 인데 고오타마란 인도어로 가장 좋은 소, 가장 거룩한 소라는 뜻이다. 북방불교의 맥락인 선불교에선 소를 불성(佛性)과 자성(自性)에 비유한다. 불성과 자성이란 본래면목(本來面目)인 자아(自我)다. 중국선종의 조사인 남악회양 선사는 제자인 마조선사가 깨닫지 못하자 “수레를 가게 하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느냐, 소를 때려야 하느냐?”는 일갈을 던짐으로써 마조선사를 즉시 오도(悟道)시켰다고 한다. 고려 말 대선사인 보조 지눌 국사의 호(號)도 목우자(牧牛子:소치는 목동)였다. 사찰에 가면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의 외벽 벽화엔 거의 심우도(尋牛圖)
어제 기축년 정월 초하루 이른 아침. 여명(黎明)의 길 위로 소(牛) 한 마리가 잔등 위에 비늘 같은 새벽을 태우고 오는 방울소리를 들었다. 그 방울소리에 놀란 새들이 투정 대는 소리가 잠든 태양을 깨우자 더불어 잠을 깬 산정의 숲도 덩달아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다.금년 새해 첫날의 바닷가는 갈기를 날리며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아니라 정숙보행으로 조심스레 걷는 병사들의 발자국소리처럼 파도소리가 고왔다. 높은 산, 동쪽이 트인 해변에는 고기떼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리고 하늘은 그들이 내뱉고 기원하는 소망이란 숨결들로 뿌옇게 흐려져 갔다. 별들은 군상들이 뽀얗게 내뱉는 김 속으로 사라지고 인간들의 발밑에 깔린 정적은 신음소리를 낼 여력도 없이 숲과 바닷물 속으로 숨어버렸다. 어제와 오늘의 사이에서 맞는 새해라고
그동안 시운학부 문제를 놓고 신문 방송은 물론 시민들로부터 의혹과 지탄을 받던 침묵의 성 진해시가 김윤수 부시장에 의해 드디어 문을 열었다. 국책사업이나 지자체의 사업들이 매니페스토가 지켜짐으로써 100% 이행된 사실이 건국 이후에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약속당시의 상황과 현실적 상황이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게 아니므로 지켜지지 않은 공약을 싸잡아 모두 거짓이나 기만으로 몰아붙여 매도하는 건 적절하고 이성적인 비판이 못된다. 최선을 다했다면 실패도 성공 이상으로 값진 것이다. 깊은 속내는 모르지만 시운학부 문제처럼 아직 결말이 나지 않은 진행형의 시정에 저주를 퍼붓듯 공격하는 것은 비판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다. 비판 받는 쪽은 모두 잘못하고 비판하는 쪽은 모두
워싱턴DC내 웨스트포토맥 공원 링컨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기념관 부근에 위치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는 지난 1995년 7월 감영삼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된 것으로 6.25참전 미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기념비는 실물보다 조금 크게 만든 19명의 군인상과 군인들의 얼굴을 새긴 대리석 기념물로 구성돼 있으며, 대리석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19명의 군인상과 대리석에 비쳐진 조각상의 그림자 19개를 합하면 모두 38명이 되는데 북한과의 휴전선인 38선을 의미한다고 한다. 베트남전과 중동전으로 인해 한국전쟁은 망각속의 전쟁으로 한국인들의 뇌리에서 사
글에는 타고난 문장실력으로 쓰는 기성 작가들이 있고 눈과 귀와 발로 보고 살아온 세계를 원고지에 여과 없이 담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있다. 상상력으로 쓰는 글과 체험으로 쓴 글에는 인공으로 핀 정원의 아름다운 꽃과 산비탈에 핀 야생초의 향기처럼 서로 다른 독특한 개성이 있다. 12월 22일 오전 11시 창원 성산아트홀 뷔페연회장에서 창원문화원(원장 박동백 교수) 부설 창원박물대학생들의 글 잔치가 선을 보인다. 이름하여 ‘창원박물’ 10집을 펴내는 창원박물대학 연합회가 주관하는 박물대학생들의 순수한 자축연의 자리다. 때로는 온실의 화초보다 산기슭과 논두렁에 핀 야생초의 향기가 코끝에 더 와 닿는 것처럼 ‘창원박물’ 10집 역시 들꽃 같은 향기로 가득 차 있다. 각 기수별로 6개월 동안 전국에 산재
송나라 시절 장씨(莊氏)라는 사람이 술 빚는 솜씨가 뛰어나 그 가게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였다. 재물이 늘어나자 장씨는 도둑을 걱정한 나머지 사나운 개 한 마리를 구해와 가게 문 앞에 매달아 놓았다. 그 이후로 그 가게를 찾는 사람이 뜸해지고 장사가 폐업할 지경에 이르자 점술가인 양천을 찾았다. 양천이 “술심부름을 하는 것은 아이들이나 종복들인데 무서운 개가 문 앞에 있는데 누가 술을 사러 가겠소. 당신 집에서 기르는 개만 없애면 장사가 다시 번창할 것이오.”라는 점괘를 제시하자 장씨는 그 말을 좇아 개를 백정에게 넘기고 손님들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하니 예전처럼 술가게는 저절로 활기를 되찾았다. 지역을 관장하는 지도자들이 주민들이 염원하는 민의를 수렴함과 동시에 장씨의 개 같은 저질측근들을
문화예술의 계절인 지나간 10월에 진해시와 몇 개 지방언론사와 방송사가 후원하고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에서 주관하는 13회 월하 김달진 문학제가 성황리에 개최됐고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월하 선생은 문단 내에서 널리 회자된 분은 아니었으나 그분의 사위인 고려대 최동호 교수(현 김달진 문학관관장 이성모 마산대 교수 역시 최동호 교수의 제자)를 비롯한 선생의 조카인 당시 김연준 감사원장의 후원과 최 교수의 제자와 동료 평론가 군단들에 의해 뒤늦게나마 종교인과 사상가와 시인으로서 집중적으로 부각돼 문학계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절찬리에 끝난 13회 월하 문학제에 비록 사회적 인지도는 높을지언정 특별상이라는 명칭으로 문학적 기여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모 전직교수에게 1000만원의 특별상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