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할 때 그리움보다는 아쉬움에 더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땐 그랬지, 그때는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라든지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상호 간 관계 형성에 원만하려 노력하지만 이해관계로 상충돼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MZ세대들의 여러 특징 중에 하나는 ‘홀로아리랑’이다. 스마트폰이 몸의 일부처럼 돼버린 이 세대들은 초고속 정보화시대 속에서 태어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아주 유아기 때부터 사용하며 자랐기 때문에 혼자가 아주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이 세대는 다른 어떤 세대보다
우리의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수많은 관계 안에서 우리는 얻기도 하고, 때로는 잃기도 한다. 또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애를 쓴다. 삶의 관계 안에는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 다시 말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이다. 시작은 좋았지만 그 끝은 사납게 정리될 수도 있을 것이며, 시작은 비록 아름답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지는 관계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관계를 맺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 ‘계산적’이기보다는 ‘계획적’이 돼야 한다. 관계가 계산적일 때는 욕심이 생겨난다. 하지만 계획적일 때는
학교는 마쳤는데 갈 곳이 없다. 중학교 2학년 A양. A양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5년 전부터 홀로 지내는 할아버지 댁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신이나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며 혼자서 시간을 보냈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지금 그마저도 시들해져 갈 곳도 없고 집에도 들어가기 싫어 거리를 이곳저곳 배회하고 있다. 도시지역에 비해 시골은 청소년들에 대한 유해환경은 적다. 하지만 호기심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을 시기인데도, 어려운 가정 형편에 여느 다른 아이처럼 학원 보내달란 소리도 하지 못
봄이 주는 느낌은 참으로 많다. 생동하는 자연,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 산을 뒤덮는 초록, 만발하는 꽃, 사랑 그리고 새로운 만남 등등. 하지만 요즘 봄을 느끼기엔 날씨가 너무 짓궂다. 봄이 되면 괜히 기분이 들뜬다. 생동하는 자연을 보면서 기분이 싱숭해진다. 봄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냥 봄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사람은 봄에 산뜻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추억에 젖어 잠시나마 행복해하기도 한다.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우리의 인생은 날마다 선택의 연속이다. 유아기 때는 선택은 없다. 언제나 결정만이 있다. 하지만 성장해 가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무얼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한다. 또 사람을 만나게 되면 표정은 어떻게 해야 할지, 차를 마셔야 할지 밥을 먹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러한 사소한 것에 대한 선택에서부터 중요한 것에 대한 선택의 연속인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귀로에 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그것은 진실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가 인생을 떳떳하게 하며 후회 없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자왈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 여부운). 공자 이르길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어도 그 속에 즐거움이 있으며, 의롭지 않은 재물과 직위는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고 했다.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정신 중의 하나이다. 공자의 제자 중 안회는 특히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실천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 작품의 주요한 소재였던 강호가도(江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에는 1시간에 약 2000가지의 생각이 떠오른다고 한다. 하루 24시간 동안 우리 마음을 드나들며 명멸(明滅)하는 생각들은 무려 4만8000가지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말에 ‘오만가지 잡생각’이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가짓수는 많지만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말이다. 잡생각에 빠지면 고민이 되고, 병으로 발전하고, 인격을 파괴하기도 한다. 현대의학은 그것을 ‘공황장애’라 일컫는다. 우리 마음을 스쳐가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을 따라가 보면, 우리는 의미 없는 헛된 상념들을 따라다니며 생각의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상편에는 남곽처사(南郭處士)라는 무능한 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은 우(피리 吹)라는 관악기의 연주를 매우 즐겨 들었다. 그는 많은 악사들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특히 좋아해, 매번 300명의 사람들을 동원해 악기를 연주하게 했다. 우(吹)를 전혀 불지 못하는 남곽(南郭)이라는 한 처사가 선왕을 위해 우(吹)를 불겠다고 간청했다. 선왕은 흔쾌히 그를 받아들여 합주단의 일원으로 삼고, 많은 상을 하사했다. 남곽(南郭)은 다른 합주단원들의 틈에 끼여 열심히 연주하
한비자(韓非子) 세림상(說林上)에는 경험의 소중함을 이야기한 대목이 있다. 춘추(春秋)시기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제일의 위치를 차지하자, 많은 소국(小國)들은 제나라의 명을 받듦으로써 제나라의 보호를 받고자 했다. 당시 산융(山戎)이라는 나라가 제나라에 의지하고 있던 연(燕)나라를 침범하자, 환공은 산융을 공격했다. 기원전 663년, 제나라는 산융을 크게 물리치고 도읍을 점령했다. 산융의 국왕인 밀로(密盧)가 고죽국(孤竹國)으로 도망하자, 환공은 계속해 고죽국을 공격했다. 제나라는 봄에 고죽국을 공격했으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 가운데 영어로 호스 위스퍼러(the Horse Whisperer), 즉 ‘말에게 속삭이는 사람’이라 불리는 조마사가 있다. 이들은 말 사육장에 고용돼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말들, 특히 경주마들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한다. 말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외부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보인다고 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갖지 못하게 하면 종종 심리 발달에 이상이 생긴다. 말에게 무엇보다 성가시게 하는 것은 곁눈 가리개다. 말이 옆쪽을 보지 못하도록 눈가에 붙이는 가죽 조각이다. 똑똑한 말일수록 자기 나름대로 외부 세계를
십팔사략(十八史略)의 양진전(楊震傳)에는 후한(後漢) 때의 관리인 양진의 일화가 기록돼 있다. 평소 학문을 좋아해 유학(儒學)에 정통했던 양진은 한 고을의 군수(郡守)가 됐다. 그런데 어느 날 군의 하급 관청인 현(縣)의 현령(縣令)이 몰래 많은 금품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양진에게 건네주려고 하며 “지금은 밤이 깊으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라고 했다. 이에 양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는데(天知·地知·子知·我知),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오?” 현령은 크게 부
천지가 봄이 오는 소리로 소란스럽다. 저마다의 봄소식을 알리려 분주하다. 나무는 새싹 틔움으로, 꽃들은 피움으로 자기들의 봄소식을 알리고 있다. 천지가 봄의 기운이다. 자연은 봄의 기운으로 우리들의 삶에 즐거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봄은 왔지만 내 마음에는 봄이 아직 오지 않았다. 천지는 봄이라 얘기하지만 마음은 그다지 편하지 만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그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얻으며, 때로는 잃기도 하고 또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삶의 관계 속에서는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
동호지필(董狐之筆)이란 ‘사실을 숨기지 아니하고 그대로 쓴다’는 말로,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직한 기록. 동호의 붓’이라는 뜻으로 ‘기록을 담당한 자가 주위 사람들이나 권력을 의식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바르게 써서 남기는 것’을 말한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임금 영공(靈公)은 포악하고 무도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정경(正卿) 조순(趙盾)은 임금의 그런 행태가 몹시 걱정됐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좋은 말로 충고하고 바른 정사를 펴도록 호소했는데, 그것이 도리어 왕의 미움을 사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앙심을 품은 영공은 조
사람들은 무수한 인연(因緣)을 맺고 살아간다. 그 인연 속에 고운 사랑도 엮어가지만 그 인연 속에 미움도 엮어지는 게 있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 좋은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좋은 만남이라 생각했는데 그저 스쳐가는 만남도 있을 것이고, 그저 스쳐가는 만남이라 생각했는데 참으로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만남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인연’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관계를 인연으로 엮기를 좋아한다. 특히나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무언가로 엮기를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은 중국 당나라의 선승인 임제의 언행을 담은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말로 ‘어디 어느 곳에 있던지 내가 주인이고, 그 서 있는 곳이 모두 참된 곳이다’라는 말이다. 타계한 법정스님의 저서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는 이런 내용의 글귀가 있다. ‘어디서나 주인 노릇을 하라는 것이다. 소도구로서, 부속품으로서 처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디서든지 주체적일 수 있다면 그곳이 곧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내가 몸담고 있고 그 공간에 살아 있기 때문에 나
인연(因緣)은 반드시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한다. 불교용어로 많이 쓰이는 이 말의 뜻은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말이다. 풀이하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피하려고 해도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 연이 닿으면 만나게 되는 것으로 큰 틀에서 보면 ‘생자필멸 거자필반 회자정리(生者必滅 去者必返 會者定離)’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불교 ‘법화경(法華經)’에 나
논어(論語)는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을 들고 있다. ‘족식은 경제력’이고 ‘족병은 국방력’이고 ‘민신은 사회적 신뢰’이다. 공자는 가장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을 ‘민신(民信)’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면 조직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신뢰는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한가’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이 신뢰의 시작이다. ‘홀로 있을 때라도 나를 속이지 마라’라는 말은 조선의
고(故) 이병철 회장이 삼성에 입사해 처음 출근하는 아들에게 앞으로 마음의 지표로 삼길 바라며 휘호를 써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경청(傾聽)이라는 두 글자였다고 한다. ‘경청’이란 단어를 깊이 묵상하다 보니 ‘경청’의 범위에 대한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대의 지도자 즉, ‘리더’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소리를 들으려 할까? 또한 들으려는 자세는 돼있을까? 들을 줄 아는 리더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대통령 출근 시 실시하는 ‘도어스테핑(doorstepping)’에서 나오는 소리가 국민 다수의 소리일까? ‘리더’ 자
‘코로나19’로 인한 각종 폐해가 2년 6개월여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집단 이기주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데다, ‘우울증’ 등을 호소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소상공인, 의학계, 기업인들도 하나같이 자신의 이익챙기기에 혈안(?)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이같은 혼란의 사태가 언제쯤 끝날지 걱정이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로 최근들어 환자 수가 증가추세에 있는 데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끝나도 경제적·정신적으로 많은 후유증이 예상되는 만큼 필자의 생각은 ‘윤리’와 ‘
우리는 오래 전부터 사회의 구석구석에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고 도덕과 윤리와 규범이 붕괴되고 있음을 봐왔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과 힘있는 자들의 탐욕이 어우러져 마치 부정의 경쟁이라도 하듯 배불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 그들의 배불리기 싸움에 우리 민초들은 언제나 희생을 강요당해 왔고, 그들의 무대를 빛내주는 말 없는 관객이 됐을 뿐이다. 민초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잘 돌봐야 할 국회는 당리당략만을 주장하고, 최근 정부도 인사청탁 등 부정과 비리로 득실거리는 추태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는 극단적인 비판도 나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