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복판에 선 나이쯤에서 이제서나 그토록 힘들다는 생계형 창업을 하기로 나선 친구들을 보면서 힘을 내라고 덕담을 한다. 생존 성공유지 확률 30%에 도전하는 생계형 창업을 보면서 ‘나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전장에 나서는 전사처럼 각오로 가득 차 있다.그들에게 스승이 되어 줄만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현존하는 경영자 중에서 가장 멋있고 단연 돋보이는 보디숍의 창업자 에니타 로딕을 들 수가 있다. 1976년에 보디숍으로 화장품 업체를 시작했던 가정주부였던 에니타 로딕은 사업초기 은행에서조차 융자하기를 주저한 그야말로 맨몸의 창업이었다. 그 후 30년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49개국 1900여 매장에서 25개국의 언어로 판매하는 매장을 가진 창업자일 뿐만 아니
7∼8월은 연꽃의 계절이다. 이에 맞춰 전국 곳곳에서 연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연꽃은 10여년전만 해도 절집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동네 못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대중화가 되었다. 연꽃은 송나라 유학자의 거두인 주돈이가 꽃 중의 으뜸으로 묘사하면서 매화와 함께 선비들의 붓 끝에 자주 올려졌다. 주돈은 연꽃을 “펄 속에서 뿌리를 내렸으나 깨끗하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다/ 속은 비었으나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물속에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고 누구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다”고 칭송하고 있다. 유교에서는 선비들의 청빈함과 고매함의 상징이고 도교에서는 팔신선(八神仙)중의 하나인 하선고(何仙姑)가 지니는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홍수피해에 시달리고 있지만 뚜렷한 근본 대책 하나 세우지 못하고 피해 주민들은 망연자실(茫然自失)하고 있다.홍수재난은 인재(人災)와 천재(天災)가 있는데, 인재는 예고된 재난으로 사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재난이고 천재란 천재지변으로 인력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재난이다.상습홍수재해지역이란 예고된 재해지역으로 인력으로 재난극복이 가능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번 홍수를 계기로 특단의 항구적인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충의 땜질식 복구가 아닌 태풍과 홍수에도 견딜 완벽한 복구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빈번한 홍수피해는 십 수 년간 댐 하나 건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나라별 1인당 저수량을 비교하면 한국은 365㎥로 북미지역의 16분의 1이고, 수자원
이제 물난리가 끝나고 나면 다시금 휴가를 떠난다고 난리법석을 떨 것이다. 휴가(休暇), 글자 그대로 일정기간을 정하여 쉬는 일이건만 꼭 멀리로들 떠나 고생을 하고와야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보통 번거로운 일인가.각 기업체마다 이번 주말부터 정기 하기휴가가 시작된다. 공단의 대기업들이 시작하니 예하 하청기업들도 따라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철만 되면 휴가다, 피서다 하여 전국이 또 한번 한민족 대이동이 일어난다. 설이나 추석때의 민족 대이동은 조상숭배와 고향을 찾는다는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이라도 있지만 피서소동은 그런 명분도, 실리도 없는 데다 너무 몰개성적이다.언필칭 지금의 시대를 다양화시대니, 개성의 시대라고들 한다. 그래서 그런지 눈에 튀는 소위 개성파들이 온 나라를 휘젓고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프랑스의 여류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1992년에 이어 몇차례의 마약복용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나는 내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세인의 관심을 받았다. 아마 그녀의 이같은 변론은 현대 프랑스 문학의 대표적인 여류작가이기에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인간이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말하기 전에 ‘자신을 파괴할 자유’조차 허용하는 사회는 오늘날 아마 없을 것이다. 자살의 시도나 자해행위, 무위도식 등이 범죄나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서 오늘날의 보편적 가치는 자신을 파괴할 자유가 없는 것 같다. 파괴할 권리와 자유는 차치(且置)하고 우리가 향유할 권리와 자유조차 많지 않음도 느낀
요사이 어시장에 가 보면 각 정당 후보들과 자주 마주친다. 재선거에 나서는 국회의원 후보들은 일일이 상인들과 악수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한다. 지금은 저토록 굽혀진 허리가 당선된 후에는 어찌 그리 꼿꼿해지는 지, 웬 비리는 그리 자주 일으키는 지, 권위가 섰기 때문일까.‘권위’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어떤 분야에서 능히 남이 신뢰할 만한 뛰어난 지식이나 기술, 또는 실력’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렇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기까지 그들의 노력은 얼마나 눈물겨웠겠는가. 그러니 그들에게 주어지는 권위는 당연한 보상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위가 권위 자체로 지켜지면 존경받는 엘리트가 될 터인데 어찌된 까닭으로 그들을 향한 존경심이 자꾸만 줄어드는 것일까. 그건 그들의 권위주의를 보았기 때문이다.권위란 저절로 풍겨나는
우리지방에서 ‘어림도 없다’는 표현으로 ‘아나 콩콩’이란 말을 자주 쓴다. 기대를 했다가 어긋날 때 실망과 한탄, 비꼬는 표현의 자조적(自嘲的)인 말이다. 어원은 알 수 없지만 두루 쓰이는 우리지방 말이다. 지금, 한나라당의 행태를 보면 ‘아나 콩콩 재집권?’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엊그제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한나라당은 한껏 고무돼 있다. 비록 국회의원수는 제2당이지만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역대 가장 높은 것을 감안하면 거대 야당이란 말이 실감난다. 곧 있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한나라당이 싹쓸이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있고 보면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재집권의 꿈을 이룰 공산이 크다. 그 오만함인가. 한나라당의 추태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온 나라가 비 피해로 쑥대밭이 되어 있는데도 지역도당 간부들이
나라 안팎에서 ‘여름비’의 위세가 매섭다. 팔레스타인의 대지를 피와 분노로 물들이고 있다는 작전명 ‘여름비’의 위력은 체감할 수 없으나 참혹한 것이고, 온 나라를 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여름비는 체감함으로써 더욱 참혹한 것이다.TV 화면 속으로 생생하게 전달되어 오는 피해현장의 거친 물살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피해현장 사진을 보는 것으로도 멀미가 날 지경인데, 토사와 물에 휩쓸린 집더미와 폐허가 된 농경지를 보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피해현장의 주민들의 고통은 ‘간뇌도지(肝腦塗地)’라는 말이 적격일 듯하다. 정부는 태풍 에위니아와 호우로 극심한 피해를 본 5개 시도의 18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피해의 조기수습과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였고, 해마다 겪는 물난리에 대한 ‘인재ㆍ천재’의 논쟁도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지만 궁극적으로는 고독한 존재이며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 혼자이기 때문에 여럿이 더불어 살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오히려 더 큰 소외와 고독한 존재로서 다른 모든 것들과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얽혀 있는가를 보여주는 재미난 시가 있다. “살펴보면 나는 /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 나의 아들의 아버지이고 / 나의 형의 동생이고 / 나의 동생의 형이고 / -중략- / 그렇다면 나는 / 아들이고 / 아버지고 / 동생이고 / -후략-”(김광규)이렇듯 내가 형, 남편, 오빠, 조카, 아저씨, 제자, 선생, 납세자, 예비군, 친구, 적, 환자, 손님, 주인, 가장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얽혀 있어서 진정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질
나라 안이 온통 수해에 시달리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찾아오는 수해가 올해는 유난히도 심한 것 같다. 장마철이 되면 으레 겪는 농촌의 농작물 피해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물난리를 겪는 일이 너무나 빈번하다. 이번 여름에도 호우주의보가 너무 자주 내리더니 십만 평방미터가 채 안 되는 남한 전역에 중부 남부 할 것 없이 수해는 골고루 발생하고 말았다. 강원도 경기도의 일부지역은 인명피해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방송사마다 수해피해를 특집으로 다루어 보도하면서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사람 사는데 재난은 반드시 있다. 예로부터 삼재라 하여 물에 의해 일어나는 수해뿐 아니라 불의 재해, 바람의 재해가 있어왔다. 이 재해가 일어나면 난리나 질병 그리고 기근이 일어난다고 했다. 수(水), 화(火),
스위스 동쪽의 알프스 산자락에 ‘상갈렌(St. Gallen)’이라는 고도(古都)가 있다. 인구 7만5000명의 고색창연한 이 도시는 오늘날 스위스 상갈렌 칸톤의 수도일 뿐 아니라 동스위스 경제의 중심지이다. 상갈렌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엇보다도 10만권 가량의 고서와 2000권의 희귀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는 수도원도서관(Stiftsbibliothek)이다. 희귀 필사본들의 대부분은 중세 초기와 중세 전성기에 수도승들에 의해 필사된 것들이다. 이른바 15∼16세기 ‘상갈렌’의 르네상스를 통해 유럽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원천이었다.법보사찰 해인사 장경각에 보존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은 13세기 당시 20여년 동안의 조성작업 후에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그리고 팔만대장경이 해인사에 이운된 해는 여러 정황으로
7월 17일은 헌법제정 제58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헌법은 제2공화국의 의원내각제와 양원제(兩院制)를 제외하고 대통령제와 단원제(單院制)로 일관해 왔다. 두 가지 모두가 실패작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도 정략에 따라 개헌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헌법이 잘못되어 나라가 이 꼴이 된 것은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국익과 국민을 위한 정도의 정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통령이 없고 단임제이기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개헌해야 할 심각하고 필요 불가결한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9월 정기국회가 끝나면 정국은 대선국면으로 접어들고, 유력 대권주자들이 개헌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여야당이 합의하지 않으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지난 3일, 집에서 가까운 마산시청 광장에서 열렸던 마산시장 취임식에 나가 보았다. 통상 이런 행사의 경우 주최측과 앞자리에 앉은 내빈들 외에는 잡담을 하는 사람,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 몸을 비트는 사람, 전화를 받는 사람 등으로 어수선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날 취임식은 달랐다. 시청광장을 가득 매운 채 시장의 취임사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마산시민의 모습은 어려운 마산의 현실을 타개할 새로운 희망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뒤에 서서 시민들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수년전 지역 시민단체의 간부로 마산시 집행부와 의회와 갈등이 일어나 물리적 충돌까지 한 일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될 일은 아니다. 당시 서로에 대한 편견과 이해부족으로 인해 사사건건 기싸움이
사전을 펼쳐봐도 주부(主婦)만 있고 주부(主夫)는 없다. 그러나 집안살림을 도맡아 내조(內助)에 전념하는 남성들도 의외로 많고 차츰 더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신문사에 비정규직(비상임)으로 종사하는 필자도 일찌감치 정규직에 종사하는 집사람 아니 바깥사람한테 가장이라는 감투를 넘겨 버리고 주부(主夫)가 된 지 오래다.와이프가 출근하는 대로 집안을 대충 정리해 놓고선 따라 집을 나선다. 혼자 사시는 모친에게 문안도 할 겸 아침밥을 얻어먹기 위해서다. 나갈 때 물통이며 반찬그릇 몇 개를 빠뜨리지 않는다. 모친집에 달려 있는 정수기에서 물도 받아와야 하고 반찬도 몇 가지 얻어와야 가장(?)이 돌아왔을 때 저녁 밥상이 그런 대로 마련되기 때문이다.낮엔 가급적 집엔 들어가지 않는다. 동네 아줌마들 시선도 그러하고 들어앉
‘마창진’ 지역 서민의 편익을 위해서는 시내버스 공영제가 하루라도 빨리 폐지 돼야 한다. 공영제로 인해 지역민이 손해를 보는 것은 경영을 방만하게 해 오는 손해까지 고스란히 시민의 혈세로 보전하는 것 외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공영제로 인한 피해는 버스회사와 관할 관청의 야합에서 출발한 것 같은 냄새를 떨칠 수 없을 뿐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노사갈등이 시민의 발목을 잡고 있다.노사갈등을 보는 시민의 눈초리는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업주들이나 종사자들이 알아야 할 것이다. 공영제로 인해 서민이 당해야 하는 피해를 몇 가지만 더 열거해 보면 버스를 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대다수가 수긍을 할 것이다.먼저 불친절하다. 배차시간에 쫒겨 정류소에 서 있으면 그냥 지나가는 수가 많다. 한 시간 이상 기다린
옛날 규모가 큰 고을에는 반드시 거지집단이 있었다. 철저한 위계질서를 지키면서 잘잘못이 드러나면 사형(私刑)을 서슴지 않았고 목숨을 빼앗는 것쯤은 예사였다. 고을로 봐서는 골칫거리였지만 ‘막가는 사람들’이어서 관에서도 어쩌지 못했다. 어느 집에 대사(大事)라도 있으면 귀신같이 알고 찾아오기 때문에 아예 이들을 위한 음식을 따로 준비해 두는 게 상례였다. 그들의 행패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혼사(婚事)는 흥겨워야 되고 상(喪)을 당한 집안은 경건해야 한다. 그런 분위기를 깬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돼 그들을 대접하고 다독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주는 음식은 따로 있었다. 손님상에 남은 음식을 모아 대접했다. 그래도 그들은 감사하게 생각했다. 일반 손님과 같은 대접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대접조차 받지 못
고령화시대다. 출산율은 저하되고 웰빙이라 하여 건강관리에 주력하니 평균수명은 길어진다.아침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중장년들이다. 운동기구에 매달려 근육을 키우고 맨손체조로 체력을 단련시키지만 정작 저 건강한 에너지를 쏟을 곳이 어디에 있는가.저들은 대부분 구조조정이다, 명예퇴직이다 하여 권고사직을 받은 세대다. 보릿고개 시절에 태어나 새마을 운동을 거쳐 IMF를 극복한 저들, 저들이 30촉 알전등 아래서 공부하며 농경시대, 산업시대, 전자시대에 이르기까지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뛴 사람들이다.‘사오정’, ‘오륙도’도 옛말이 되고 이젠 이구백(이십대 90% 백수), 십장생(십대도 장차 백수를 생각함)이란 신조어가 나오는 실정이라지만 저들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 없다.저들은 이제야말로
한나라 ‘소후’(昭侯)가 술에 취해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왕의 모자를 담당하는 ‘전관원’(典冠員)이 행여나 왕이 감기라도 들까봐 옷을 가져다 덮어 주었습니다. ‘소후’가 잠에서 깨어 보니 자기 몸에 옷이 덮여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물었습니다. “누가 옷을 덮어 주었느냐?” 이에 신하가 답하기를 “‘전관원’이 덮어 주었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소후’는 ‘전관원’을 불러다 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평상복을 담당하는 ‘의상원’(依裳員)도 벌을 주었습니다. ‘의상원’은 평소 자신의 직분에 충실치 못하였기 때문에 벌을 주었고, ‘전관원’은 자신의 직분이 아닌 것을 넘어서 행동하였기에 벌을 주었습니다.한비자 ‘월관지화’(越官之禍)에 나오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전관원’에게 굳이 벌을 주
친선관계로 방문한 6월말 상하이는 더위와 짙은 습기가 함께 하고 있었다. 푸동공항에는 중국이 최첨단으로 자랑하는 자기부상열차가 상해도심을 연결하고 있다. 향후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간선철도에 이러한 모델을 적용한다고 한다. 상하이는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를 앞두고 무척이나 동적인 느낌이다. 상하이도 북경처럼 쉼 없는 도시재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구시가지는 언제 헐릴 지 모르는 개발전야를 맞고 있다. 상해임시정부청사 주변도 지금 한창 헐리고 있었다. 길 건너 지역은 이미 철거공사가 한창인데 상해임시정부 청사블록은 남아 있다. 국력의 정도에 따라 그 곳이 기념공원이 될 수도 있고 빌딩 숲이 될 수도 있으리라.상해의 화려함은 식당에서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응접실이 딸린 식당방의 호화스런
‘그래, 태극전사들 욕봤다’ 비록 본선 진출엔 실패했지만 전국민적 공감대와 투혼을 불러 일으켰기에 아직도 그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다.필자에게 미리 쓸 기회가 왔더라면 아마 ‘태극전사들 제발 단디 해라’고 시작했을 것이다.경상도 버전 중에서 압권이 ‘단디 해라’와 ‘욕봤제?’지 싶다.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쓰는 일상용어로 아이를 서울로, 외국으로 유학을 보낼 때도, 군대엘 보낼 때도, 어디 취직이 돼 나갈 때도 으레껏 당부하는 용어가 ‘단디 해라’다. ‘단단히 해라’에서 비롯된 용어겠지만 대인관계도 잘 하고 일처리도 야무지게 잘하라는 내용이 함축된 용어로 만사 ‘단디 해라’ 만큼 더 좋은 당부의 말은 없는 것이다.‘욕봤다’, ‘욕봤제?’ 또한 경상도 말 중에서 가장 찬사적 용어를 가장 반어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