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대통령과 도백 당선자에게

  • 입력 2012.12.24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간에서 흔히 쓰는 사자성어 가운데 시종일관(始終一貫)이란 말이 있다. 시작과 처음이 같아야 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모든 일이 엉클어져 꼬이는 것은 시작과 끝이 한결 같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불상사다. 자신의 삶과 타인에 대해 약속한 일을 놓고 깔끔하게 마무리한 사람이 드문 것은 지나친 과욕과 허세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속이는 일에 두려움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 때문이다.
진동만의 ‘오만둥이’같이 길가에 날렸던 숱한 위정자들의 공약들이 과연 숙성된 ‘미더덕’처럼 맛깔스럽게 국민들의 밥상에 오를 풍요로운 성찬이 될 지 아니면 독(毒)이 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민들과 도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와 홍준표 경남도지사 당선자에게 영광의 월계관을 씌워준 것은 두 분이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식상한 기성정치인이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시종일관의 자세가 엿보이는 믿음이 가는 자도자상이란 점을 높이 샀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대선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한국정치사의 한 획을 다시 쓰게 한 신기록을 낳았다. 75%의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승리하지 못한 것과, 남성우월주의가 잔존하는 의식을 깨뜨리고 신라 이후 천여 년 만에 여성 통치자를 탄생시킨 진기록을 역사서에 기록하게 된 것이다.
이전투구와 다를 게 없었던 박빙의 결전에서 박 후보가 승기를 잡은 것도 따지고 보면 당선자편의 높은 전략이 아니라 단일화라는 억지춘향이 식의 짜깁기 후보를 내세운 낙선한 쪽의 패착이었다는 여론과, 또 하나는 스스로 종북주의자를 자처한 이정희 후보자가 tv 토론 때 국민을 섬기기 위해 나선 위정자라기보다는 박근혜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해 출마했다는 상식을 벗어난 기상천외(?)의 독설(毒舌)이 토론을 시청하는 국민들에게 괴리감과 섬뜩함을 안겨주었고 일부 부동표와 기권표 성향의 유권자들을 박 후보 쪽으로 쏠리게 만든 쓰나미 효과를 유발했다는 여론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란 반대편을 죽이고 타도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화합과 상생의 장으로 엮어가는 고난도의 기술(技術)이라는 것을 국민들은 아는데 왜 고단수의 정치기술자들인 그들이 오판을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정권에만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겠지.
정치란 정치인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여론의 향배를 따라 흐르는 물 같은 것이라야 함에도 지난 정치는 항상 위정자와 그 측근들의 손에서 농단되어왔고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대다수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은 몰락하고 사회의 위와 아래를 지탱하는 중간층은 허물어졌다. 즉 상·중·하가 고르게 균형을 잡아 나가야 되는 경제민주화의 축이 붕괴된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만 존재하는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그런 나라에서 윤기가 흐르는 사람들은 권력과 물질을 넘치게 지닌 자와 사이비 성직자들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하는 충(忠)은 전제주의 국가에서 요구하는 무조건 적인 윗사람에 대한 굴종이 아니다. 충(忠)을 파자(破字)하면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으로 나뉜다. 즉, 편견에 흔들리지 않는 확고부동한 자신과의 약속이 바로 충인 것이다. 정치인들이 두고 쓰는 관용과 탕평을 뜻하는 용서(容恕)라는 말 가운데 서(恕)를 파자하면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나뉜다. 곧 남의 마음도 내 마음처럼 더불어 생각한다는 깊은 뜻이 들어 있다.
우리의 대통령 당선자와 도백 당선자는 자신들이 국민과 도민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며 비록 정적이라 할지라도 재목이 된다면 국가와 경남도를 위해 유용한 자산으로 활용할 덕과 지혜를 겸비한 인물로 확신한다. 국민과 도민들은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이 아니다. 그분들이 단상에서 피를 토하듯 외치던 치도(治道)에 대한 맹세의 절규를 기억하고 있다.

부디 지역색과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갈라진 민심과 무너진 경제민주화의 보를 튼튼하게 다시 구축해 주길 당부 드린다. 5년과 4년은 짧다. 국민들의 심판이 얼마나 매서운 줄 알았으면 국민들이 원하고 바라는 정치를 해 달라. 국민과 도민들은 두 분에게 처음과 끝이 한결 같은 시종일관이라는 아름답고 숙련된 위정(爲政)의 기술을 보고 싶어 한다. 더군다나 소외된 자와 편견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상에 출현하신 예수그리스도의 탄신일이 바로 내일이기에.

/수석논설위원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