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국립공원과 극기 산행

  • 입력 2013.04.30 00:00
  • 기자명 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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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소생하고 신록이 눈부신 계절 4월이다. 우리나라 내륙 최고봉인 지리산 천왕봉(1915m)에도 한낮이면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한낮의 따스한 햇볕이 아까워 주변을 맴돌아보기도 하고 휴일동안 나들이 계획을 세우고, 겨우내 못했던 운동계획도 다시 세우고,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분주해지는 계절이다.
이즈음이면 지리산국립공원은 단체 탐방객들로 붐빈다. ‘00대학 신입생 극기훈련’, ‘00기업 직원 지리산 극기훈련’ 등 다양한 깃발을 펄럭이며 겨우내 움츠린 마음을 열고 그야말로 ‘화이팅’을 다짐하기 위한 극기훈련 장소로 지리산국립공원을 선택한 것이다.
이들은 보통 3일~4일이 소요되는 지리산 종주코스를 2일만에 주파한다는 목표로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해 밤늦게까지 산행하기도 하고, 평소 운동량은 전혀 생각지 않고 천왕봉 당일 산행을 시도 한다.

또 느즈막이 대피소에 도착해서는 밤늦게까지 뒷풀이하고 화려한(?) 산행경험으로 얘기 꽃을 피운다.
잠시 눈을 붙인 후 천왕봉 일출을 보기위해 새벽같이 또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을 마친 이들은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지난 16일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로 긴급한 구조신고가 접수되었다. 응급구조사가 곧바로 출동하여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AEC(심장자동제세동기)를 통해 응급처치를 하였으나 결국 사망한 불행한 사고였다.

평소 운동량이 많지 않은 사고자는 회사에서 실시하는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당일 천왕봉 정복이라는 무리한 산행으로 사고를 당했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대부분은 무리한 산행으로 인한 사고와 탈진, 저체온, 심장마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실제로 최근 5년간 통계를 보면 무리한 산행으로 인한 탈진, 경련, 저체온증이 65%, 산행 중 날이 어두워져 구조를 요청하는 것까지 하면 전체 안전사고의 90%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
극기 산행으로 인한 피해는 개인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국립공원제도는 우리나라 최고의 자연자원을 있는 그대로 후손에 물려주기 위해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제도이다. 이곳에서는 자연이 주인이고 사람은 손님이다.

지리산국립공원에는 지난 10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복원한 반달가슴곰 27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지난 겨울 두 번째 출산에 성공해 전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반달가슴곰은 겨우내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새끼를 데리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게 된다.
반달가슴곰에게 인적이 끊어진 야간시간대는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반달가슴곰의 행동반경은 130.42㎡로 하룻밤에도 천왕봉을 넘어 다닐 정도로 활동량이 많다.
야간산행이나 비박으로 인한 인기척이나 음식물 냄새 등은 반달가슴곰의 행동을 위축시키고 행동반경을 축소시켜 생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위협은 지리산에 서식하는 모든 야생동물에게 똑 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극기산행을 경험한 대부분의 탐방객은 지리산을 다시 찾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힘들고 두려웠던 기억으로 각인된 지리산은 경외(敬畏)의 대상일지는 몰라도 휴양(Recreation)과 치유(Healing)를 위해 편안하게 찾기는 힘들 것이다.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는 올해부터 입산시간지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주요 탐방로 입구마다 입산시간을 정해 야간산행 등 무리한 산행문화를 바꿔보자는 취지이다.
예를 들면 노고단에서는 오후 2시(여름철 오후 3시)부터 출입이 금지된다. 노고단에서 출발해 가장 가까운 연하천대피소까지 5시간이 걸리니 야간산행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시간 이후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다.

천왕봉 당일 산행 코스인 중산리와 백무동도 마찬가지 이다.
그간의 탐방행태로 볼 때 이 제도는 종주산행을 주도하는 일부 모집산행 업체들의 반발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야간산행으로 인한 자연자원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고 지난해부터 홍보가 이루어져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보고 산행문화가 바뀔 때까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 스스로 지리산을 도전과 정복의 대상이 아닌 나를 낮추고 상처를 위로받는 공간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체력에 맞는 탐방계획 짜기, 정상정복보다는 둘레길 등 저지대 이용하기, 샛길이용하지 않기, 대피소 예약하고 이용하기 등 착한탐방에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지리산은 언제나 그곳에서 당신의 영혼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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