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부처님 오신 날 앞에서

  • 입력 2013.05.13 00:00
  • 기자명 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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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17일은 2557년 부처님 오신 날인 성탄절이다. 그런데도 나라 안팎이 검증되지 않은 한 전직 세도가로 인한 구설수에 휩싸여 전란처럼 아우성이다.
진실이 실종된 세상에서 진실이라며 우기는 그 자체가 최고의 위선이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미국 현지에서의 행동에 대해 법치국가에서 법보다 언론이 앞장서 여론을 부추겨 윤 전 대변인을 성격파탄자나 성추행범으로 몰고 가는 것보다 더 개탄스러웠던 것은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과 윤 전 대변인이 서로 물고 뜯는 진실공방전이었다.

선덕여왕 이후 천여년 만에 남성우월주의라는 두터운 벽을 깨고 여제(女帝)로 등극한 박근혜 대통령은 비록 인간의 마음까지 들여다 볼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에 개운치 못한 인사로 홍역을 치렀지만 북의 공갈 앞에 속수무책으로 봉 노릇만 해왔던 과거 정권들과는 달리 소신을 가지고 개성공단 문제와 북측이 두고 쓰는 핵 공갈에 의연하게 대처했고 사실상 남북의 기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내 국민들의 자존심과 국격을 드높였다. 또한 취임 후 첫 번째였던 미국 방문도 갑과 을이 아닌 프랜들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유연하고 노련한 회담으로 여성대통령이란 편견을 불식시키고 한미 양국은 갑과 을이 아닌 친구라는 수평적 관계의 맹방으로 자리매김하는 외교적 수완까지 선보였다. 먼저 긴 여정의 순방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그 노고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수고하셨고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옥의 티라는 안타까움처럼 이번 윤창중씨 문제를 지켜보면서 또 새삼 생각나는 게 ‘인상여 열전’에 나오는 ‘염파’와 ‘인상여’와의 얘기다. 조나라의 권신인 염파는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며 공을 세운 일등공신이었으나 인상여는 적국인 진나라 왕과의 회맹에서 그 주인인 왕을 위기에서 구한 공으로 염파보다 더 벼슬이 올랐다. 이를 시기한 염파는 인상여를 원수 대하듯 했지만 인상여는 염파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것조차 피한 채 염파와의 충돌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갔다.
요즘 식의 여론재판이라면 인상여는 비굴하고 야비한 인간이 분명했다. 아마 당시도 그랬던 듯 인상여가 가장 아끼는 충복 한 사람이 그 곁을 떠나려 하자 인상여가 불러 세웠다.
“왜 나를 떠나려 하느냐?”라고 묻자 부하가 “세간에서 제 주인이 비굴하게 몸보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란 비난이 높습니다.”
그 대답에 인상여는 웃으며 이렇게 답변했다.
“염파와 진나라 왕 가운데 그대는 누가 더 강하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염파와 충돌을 하지 않는 이유는 진왕이 우리 두 사람을 부추겨 싸우도록 하는 반간계 때문이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물고 뜯다가 지쳐 둘 중 하나가 죽기를 바라는 것은 사냥꾼들이 숨어 지켜보면서 바라는 짓이다. 지금 진나라가 원하는 것도 그와 같다. 내가 염파보다 강한 진나라 왕도 꾸짖고 나라의 보물인 화씨벽과 왕을 구해냈거늘 하물며 염파를 두려워해 피하겠느냐. 나는 먼저 나를 발탁해 준 왕과 나라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 그와 다투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이 말을 들은 충복은 짐을 풀고 무릎을 꿇었다. 상장군 염파 역시 이 소문을 듣자 윗도리를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짊어지고 와 자신을 때려주길 부탁하며 용서를 빌었고 조나라는 태평성대를 이어나갔다.
후일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는 근본은 ‘문신과 무신의 화합이다’라고 하여 장상화(將相和)라고 했고 지상병담 병가대기(紙上兵談 兵家大忌)라고 하여 ‘너 잘났다·내 잘났다’ 식의 끝없는 탁상공론이야 말로 조무래기들의 다툼이라고 폄하했다.
비록 염파와 인상여 같은 인물의 곁 자락에도 못 미치는 필자도 칠순 가까운 삶을 살면서 모략중상을 당해 진실규명을 하거나 이길 수 있는 싸움인데도 조직과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싶어 입을 닫고 물러난 적이 많았다. 하물며 한 국가의 권력의 핵심이자 왕의 측근이었던 이남기와 윤창중이 지들만 살자고 이래서야 되는지 모르겠다. 천 년 전의 옛 얘기가 오늘에도 가슴에 와 닿는 건 다 이유가 있겠지.

부처님도 이런 부대끼는 중생의 삶을 빗대어 모두 업보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쳤고 그분께서 평생을 바쳐 전하고자 하는 말씀도 화합과 상생이었다. 이 성스러운 성탄절 앞에서 개인적 이전투구는 그치고 생각 있는 국민들이라면 위로는 핵, 아래로는 영토분쟁과 몰락한 서민경제로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피아간의 불만과 갈등을 거두고 미래지향적인 화합과 상생과 양보와 나눔의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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