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외교통상부는 있는데 외교관은 없다

  • 입력 2013.07.10 00:00
  • 기자명 김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카시아 향이 창호지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스며오는 것을 느끼는가 싶었는데 성큼 7월이 내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이맘때면 연례행사처럼 지루한 장맛비와 열대야가 일상을 짜증나게 하는 계절이다. 아열대로 변한 이상기온으로 인한 피해는 서민들에게만 해당될 뿐 불량부품으로 원전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한수원산하의 임직원들이 급료를 동결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부정부패의 책임은 정부 감독부처와 한전과 한수원에 있는데도 자신들 범죄와 감독소홀을 만회하기 위해 국민들의 가정용전기료를 다단계로 인상해 고혈을 짜고 있는 정부와 한국전력의 악랄한 수법이야말로 가렴주구와 다들 게 없는 악정이다. 서민들에게 유일한 지옥의 동아줄인 국민연금의 금년도 인상율이 고작 3% 미만이라는 사실을 등 따시고 배부른 국회의원이나 공무원, 공기관의 임직원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연일 NLL속기록 문제를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싸움은 하늘과 지축을 흔들고 있으니 장마가 끝나면 이 여름은 훨씬 더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필자가 느끼는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NLL은 필자의 짧은 단견으로는 북이 됐건 남이 됐건 공동소유하건 우리 영토이나, 일본 총리나 일본의 극우우파들이 내쏟는 독도를 비롯한 위안부문제, 과거사에 대한 지금의 발언은 북측의 핵탄두보다 더 가공할 협박이자 위협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1875년 9월, 일본 군함 3척이 해로 측량이라는 구실로 조선의 영해를 침범 했을 때 그 배에는 불과 36세의 일본 육군중장인 군사전문가 ‘구로다’와 ‘이노우에’ 라는 외교전문가가 실질적 인 지휘자로 승선하고 있었다. ‘이노우에’ 역시 당시 41세로 영국유학파로 재무·외무대신을 거친 정략가였고 후일 초대 조선공사로 조선을 손아귀에 넣는데 일익을 담담한 인물이다. 거기에 비해 항의 차 강화도로 나가 그들과 대좌한 조선의 벼슬아치는 외교와는 거리가 먼 신헌 어영대장과 윤자승 부총관이었다. 상대는 선진국의 유학을 마친 탄탄한 지식을 지닌 외교전문가였고 또 한 사람은 신식군사지식으로 단련된 대일본제국의 무장이었는데도….

이미 일본은 히데요시나 도쿠카와 막부 때부터 승려들까지 밀정으로 내세운 데 반해 조선은 당시 그들이 요구조건으로 내세운 수호조약(修好條約)의 간교한 술책의 겉자락도 알지 못했고 그 후 1년 뒤 한·일간에 강제로 맺은 조약안에는 일본은 그들의 문자를 사용하고 조선은 한문으로 작성한다는 수치스러운 문구가 들어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1446년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어여삐 여겨 만든 순수한 우리글인 한글은커녕 그런 썩어 빠진 정신을 지닌 위정자들이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에는 참으로 역부족인 나라꼴이었고 을사늑약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 비슷한 예로 해방 뒤부터 6·25 전야까지 북측은 남침을 위해 소련과 중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군비증강에 박차고 있을 때 대한민국의 조야는 파당으로 쌈박 질만 하고 있었다. 왜구나 오랑캐라며 비웃던 민족이 그런 왜구와 오랑캐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과거의 수모와 수치를 잊은 채 일본향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저 삼국지에서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왕권에 위협이 되는 그 동생인 조식을 죽이고자 일곱 걸음을 지나지 않았을 때 시를 지으라 했다는 옛 고사가 생각난다. 칠언율시(七言律詩)로 후대에 당쟁과 같은 피붙이끼리의 다툼을 경계하는 골육상쟁을 희화화(戱畵化)한 대표적인 시로 손꼽히는 칠보시(七步詩)의 구절은 이렇다.

“콩을 삶기 위해 콩깍지로 불을 때니/ 콩이 가마솥 안에서 울고 있네/ 콩과 콩깍지는 본래 하나인데/서로 들볶기에 어찌 그리도 급한가?”
눈만 뜨면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들볶고 다투는 정치판, 우경화와 좌경화로 치닫는 극한 국민정서, 이게 바로 콩깍지로 콩을 삶는 일과 무엇이 다르랴. 박근혜 대통령이 하늘과 귀신을 부리는 재주를 지녔다 해도 이런 이전투구판에서 무슨 국리민복을 위한 선정을 베풀 수 있을까?
하기야 극우보수 측에서 내건다는 논리가 김구 선생을 테러분자로 몰고 군사정권과 친일파를 미화하는 판국에다, 홍준표 도지사가 공기관의 감가상각을 내세우며 강제 해산하려 드는 서민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진주의료원 폐쇄를 타깃으로 한 관료주의 식 복지론이,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 불사지른다는 속담과 맞아 떨어져 국제적으로 희화화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수석논설위원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