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산책]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

  • 입력 2006.08.29 00:00
  • 기자명 이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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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덴바덴에서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는 마산 출신의 조각가 문신은 로마자 이름으로 Moon Shin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 현지의 독일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우리 생각대로 ‘문신’이라고 읽어주지 않는다. ‘모온쉰’으로 읽는다.

왜냐하면 ‘Moon Shin’이라는 표기는 영어를 쓰는 나라 사람들의 발음을 염두에 두고 쓴 로마자이기 때문이다. 로마자는 라틴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현재 유럽 여러 나라를 중심으로 하여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문자다.

오늘날의 영어는 문자를 로마자로 쓰고 있지만 대모음변화라는 영어사의 사건에 의해 모음들의 발음이 크게 흐트러졌다. 전문적으로는 입의 아래쪽에서 발음해야 할 모음이 위쪽으로 상승했다는 표현을 쓴다. 영어 ‘foot’의 모음 ‘오’는 ‘우’로 발음하고 ‘feet’의 모음 ‘에’는 ‘이’로 발음이 이동된 것이다. ‘달’을 의미하는 moon의 모음 ‘오’도 ‘우’로 발음하게 되었다.

따라서 Moon Shin의 Moon은 ‘달’을 의미하는 영어낱말 ‘moon’의 발음처럼 ‘문’으로 읽어줄 것을 기대하고 쓴 것이다.

나라마다 발음하는 습관이 달라 모든 나라에 우리가 요구하는 정확한 발음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우리말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는 알파벳 원발음에 따라 문자로 적는 것이 일반적인 룰이다.

우리나라에는 로마자 표기법이 만들어져 있다. 로마자표기법은 우리말을 남의 글자인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식이다. 60년 전 우리가 로마자 표기법을 처음 제정했을 때의 목적은 외국인을 위해서였다. 외국인이 우리말표기를 발음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알파벳이 영어의 위력과 더불어 국제 문자화됨으로써, 또 인터넷 시대의 공용문자가 됨으로써 로마자 표기법은 우리 언어생활에 한글 맞춤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로마자로 고유명사를 적을 때 영어낱말을 발음하는 방식에 따라 적는 습관 때문에 국제적으로 많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문씨는 Moon으로 적는 것과 함께 고씨는 Koh로, 구씨는 Kuh로, 박씨는 Park으로, 서씨는 Suh로, 안씨는 Ahn으로, 엄씨는 Uhm으로, 오씨는 Oh로, 윤씨는 Yoon으로, 이씨는 Lee로 많이 적고 있다. 이러한 표기는 발음상으로도 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전부 원칙상의 현행 로마자 표기법에 벗어난다.

특히 이와 같은 영어발음에 따른 표기는 심지어 영어국가에서조차도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 실제로 미국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받아들고 다시 한번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물어봐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3대 재벌회사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Samsung으로, 현대는 Hyundai로, 대우는 Daewoo로 쓰고 있다. 이러한 표기 때문에 서양사람들이 삼성을 ‘삼숭’으로 읽고 현대는 ‘히운다이’로 읽는다. 대우는 더 복잡한 발음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로마자표기법이 있지만 실제로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1984년 표음주의 원칙으로 개정해서 쓰고 있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자체가 실제로 문제 투성이고 실용성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표기법은 학문(學問)과 항문(肛門)을 ‘hangmun’ 하나로 적는가 하면, 십리나 심리를 ‘shimni’, 독립과 동립은 ‘tongnip’으로, 문리와 물리는 다같이 ‘mulli’로 표기하게 되어 있다. 또 반달표와 어깨점은 도로표지판이나 관광안내판에서만 사용되고 있을 뿐,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는 점, 표음주의 원칙으로 음운변화를 허용하면서도 인명은 동화작용을 인정하지 않는 것 등의 이중잣대가 너무 많다.

로마자 표기법을 이대로 계속 방치할 경우 언젠가는 치유할 수 없는 재앙이 될 수 있다. 당장이라도 문씨를 Moon으로 표기하든 Mun으로 표기하든, 박씨를 Park으로 표기하든 Pak으로 표기하든, 혹은 Bark으로 표기하든 Bak으로 표기하든 간섭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이 볼 때는 전혀 별개의 성들이다.

이현도/문화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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