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우리 정치판에는 왜 커튼콜이 없는가?

  • 입력 2013.09.12 00:00
  • 기자명 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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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curtain call)이란 무대 위의 주역들에게 감동한 관객들이 일어나 환호하며 박수를 치면 주연이나 주역들이 다시 무대로 나와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며칠 전에는 국민스포츠 스타인 류현진 선수가 소속된 LA다저스 팀의 ‘후안 유리베’선수가 3연타석 홈런을 날리자 5만여 관중이 일어나 기립박수로 환호했고 유리베는 커튼콜로 화답했다.
이처럼 커튼콜이란 무대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인류와 국가는 물론 사회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도 커튼콜은 뒤따른다.

얼마 전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시대의 주적인 호치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의 묘소에 헌화하고 자택까지 방문해 베트남 국민들과 정치지도자들의 커튼콜을 받았다. 그러나 국익을 위해 어제의 적을 오늘은 껴안고 포옹하면서도 정말 더 껴안고 보듬어주어야 할 내부의 정적들에겐 인색하다는 우려가 높다.
이석기 의원의 제명문제를 거론하는 집권당의 행태를 보자. 그가 내란을 획책해 대한민국을 김정은에게 헌납하려는 혐의가 있었다 해도 그 문제에 대한 진부(眞否)의 진실규명은 여당이나 국정원이 아니라 사법부에서 3심의 최종판결이 내려진 다음 제명을 하건 추방을 해야 함에도 여당이 에둘러 삼권분립이 보장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스스로 파괴하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소리도 들린다.

이석기 의원의 행보가 이적행위라면 국민의 대표나 국민을 앞에서 이끌어나가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범죄들은 이적행위가 아니란 말인가? 저비용고효율일지라도 자칫 관리를 잘못하면 북한의 핵탄두나 다름없이 국민을 다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에 불량부품을 납품하도록 뇌물을 꿀꺽한 그 분야의 간부들이나 직원들은 단순범죄지 이적이 아니란 말인가? 중앙이나 지방정치를 책임지면서도 지역색이나 금권이나 권력으로 치부를 획책하고 공천 장사를 하는 것은 이적행위가 아니란 말인가? 그런데도 유별시리 정치권의 범죄나 대기업 총수들의 상상을 초월한 범법행위는 생활고에 시달려 저지른 일반 민생사범들보다 더 앞당겨 복권시키고 사면시키는 것은 이적행위가 아닌가?

필자는 이석기 의원에게 돌팔매를 던질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인생의 선배로써 조언 한 마디를 해준다면, 왜 영웅이 되고 싶으면 탈남(脫南)해 김정은 앞에 달려가 충성맹세하고 인민대표회의대의원이 되지 대한민국의 입법을 주관하는 국회의원이 됐느냐고? 말해주고는 싶었다.
YS 시절에 장기 미전향수로 있다가 석방돼 북으로 송환된 이인모 씨처럼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도 공산주의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만 있다면 그야말로 영웅칭호를 받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다.
탈북을 하건 탈남을 하건 그것은 대가를 각오한 개인적 사상에 대한 선택이므로 잘잘못을 가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인민대의원이 대한민국을 찬양하고, 대한민국의 정당이나 국회의원이 북비어천가를 읊조리는 것은 이치에 전혀 맞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나 그들이 평소에 외쳐온 종북을 당당하게 부르짖지 못하고 묵비권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조롱하고 있다면 이 의원은 영웅이 아니라 하찮은 졸개나 프락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은 국민들의 혈세로 먹여 살리는 것보다 즉시 북이나 국외로 추방하는 법을 만드는 입법이 우선되어야지 제명 운운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권력정당의 횡포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따지고 본다면 색깔론이나 지역색으로 황금 배지를 달지 않은 정치인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늘도 민생은 제쳐두고 쌈박질에만 여념이 없는 대한민국의 정치무대 그 무대에는 언제쯤 국민들의 진정한 커튼콜이 쏟아질지 기다려진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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