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론]딱한 대통령

  • 입력 2006.09.01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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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하여 “도둑 맞으려니까 개도 안 짖는다”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여야의 공방이 치열하다. 한쪽은 개는 2004년부터 짖었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안 짖었다고 맞서고 있다. 사행성 오락실이 그 흔한 편의점 숫자보다 많다는데 과연 국민들의 눈에도 개가 안 짖은 것처럼 비춰졌을까.

문제는 개가 짖고 안 짖고의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문제의 심각성을 마치 그때서야 인식했다는 점이다. 즉, 이미 국정원 등 여타 정보기관의 다양한 정보 보고가 대통령비서실로 보내졌음에도 제대로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놀라울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오락실 업주들은 이른바 살생부로 불리는 상납받은 단속 공무원 10명씩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할 정도이니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래에서의 비리도 어느 정도인지 가히 상상이 간다. 그 덕분에 유진룡 전 문광부차관의 경질과 관련한 청와대의 과도한 인사개입 의혹은 여전히 숙제로 남은 꼴이 되고 말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는 만무하다.

인사시스템의 문제는 노대통령 취임 이후 끊임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무신경으로 일관했다. 분명 코드인사가 잘못이라는 것만은 아니다. 집권하면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의중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요직에 등용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부의 코드인사에서는 공직자로서 필수적인 자질인 개인의 능력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렬한 비판이 되고 있다. 청와대의 실무를 장악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명 386세대들의 능력을 너무 과신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왜 바다이야기와 관련한 여러 정보 보고가 중간에 희석되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청와대가 잘 돌아 간다고 믿는 국민들은 이제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대통령과 여당은 완전한 사면초가에 싸여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니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5·31지방선거에서 민심의 이반을 확인했음에도 정부와 여당은 계속 여유만 부리고 있다. 무능한 여당보다 부패한 야당을 선택해야만 했던 국민들의 원성을 가볍게 흘려버리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통령은 제대로 성과를 낸 정책도 별로 없었음에도 집권 3년 반을 지나는 시점에서 “향후 임기까지는 관리형 대통령이 되겠다”라든지 “그래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보다 지지도가 높지 않느냐”고 말할 때는 딱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문제가 된 바다이야기 역시 총체적 비리의 결정체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허가과정에서 얽히고 설킨 비리커넥션이 존재할 것이고 단속을 태만히 하거나 눈감아준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공무원들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어디 바다이야기 뿐이랴. 필연적으로 동양문화에서 부정과 비리문제가 영원한 숙제는 아닐 것인데 없어지기는 커녕 더 고착화되고 있다. 최고위 지도층들조차 맑지 못한 우리의 실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단호한 척결의지와 실행은 아마도 대통령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싱가포르와 대만의 좋은 예를 왜 대통령은 한 번도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도덕성에서조차 자유스러운 고위공직자가 별로 없는 실정이다. “인사 청탁자는 패가망신하게 하겠다”던 대통령의 취임 직후의 일성은 그 이후 패가망신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사청탁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사회 전 분야에 뿌리 깊은 부정과 비리를 척결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무 무리인 듯싶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해준 말없는 국민들을 결코 잊어버려서도 안 된다. 국민들은 한결같이 다음 대통령은 노대통령과 같은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 당선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왜 이런 믿음이 생겨났는가.

대통령 노무현의 실패는 한 사람의 대통령으로서의 실패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한 정치인 노무현에게 기대했던 이 나라의 진정한 개혁을 바라는 모든 지지자들의 가슴에 희망과 믿음과 용기를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수화된 여론과 무능한 정부, 과반수에 가까운 의석을 가진 무능한 여당으로는 개혁의 빛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더없이 딱하게 보이는 대통령이다.

이동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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