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법륜스님께 여쭤볼까?

승인2013.11.11l수정201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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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시간과 세월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나의 시공이라는 원 속에서 우주의 생성원리가 윤회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둥근 원을 들여다보면 어디에도 시작과 끝이 없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강물처럼 끝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며 인간의 삶은 그 강물에 떠내려가는 부표물일 뿐이다. 우리는 함께 흘러가는 동일체일 뿐, 그러다가 서로 부딪히면 인연이라 하여 잠시 머물다 다시 제각기 다른 길로 흘러가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내외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소세를 마친 다음 외출에 나선다. 30여년 동안 함께했던 시간들은 과거와 현재에도 함께 했고 미래에도 더불어 할 여행인줄 모르겠다.
매일 백팔 배를 올리는 ‘소봉암’이라 명명한 조촐한 암자(거실)에 모신 부처님이나 지구상의 사찰에 모셔진 어느 부처님도 살아계신 생불은 아니다. 플라스틱이나 청동, 무쇠, 석재, 소조(흙), 목재, 건칠(종이)로 만들어 그 위에 금색 도금을 한 형상에 불과하다. 형상은 어디까지나 형상일 뿐이며 나와 내 아내가 거실바닥에 엎드려 얻고자 하는 것들은 분명 내 안에 있는데도 보지 못하는 ‘나의 나’를 찾는 일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단원 김홍도는 제자인 혜원 신윤복과 저잣거리의 인파를 모델로 삼은 군선도(群仙圖)인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를 함께 그리며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것이 최고의 화공이다.”라는 화두 같은 말을 건넸다. 그렇듯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접점을 찾았을 때 우리 부부의 새벽 외출도 끝나게 될지 모른다.

몇 해 전 딸 사위가 사는 미국을 방문했을때 인근에는 사찰이 없었다. 하루는 딸 사위가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에 함께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 라는 제의를 어렵게 해왔다.
처음은 곤혹스러웠지만 우리 내외는 40년 가까이 걷던 길을 바꿔 다른 길로 들어가 봤다. 비록 의식과 의전은 다르지만 300여명이 넘은 신자들은 불교신도임을 소개했음에도 이교도인 우리 부부를 열렬하게 박수로 환영했고 담임목사님은 점심 조찬에까지 초대해 미국에 온 것을 축하하고 무사히 귀국하길 기도해주었다.

불교도를 무조건 사탄으로 취급하는 개신교는 한국에만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며 우리 내외가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같은 동족으로서의 희열이 느껴지는 동질감뿐이었다. 그리고 신앙의 길은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느꼈다.
결국 종교인끼리의 배타성은 자기가 믿는 신앙의 교주를 유일시하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요구한 적도, 절대적인 신으로 섬기도록 강요한 적이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선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낮춰 하나님과 동일한 일체를 이룬 존재였고 부처께서는 왕위를 버리고 수행자로 낮춰 중생을 찾아다닌 보통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대신 보내셨을 뿐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고 사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부활이나 열반은 죽어서 얻는 영광과 축복의 죽음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는 인식의 전환일 뿐이다. 악에서 선으로, 이기심에서 이해심으로, 증오에서 용서로,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분기점일 뿐이다. 모든 복은 선에서 비롯되고 모든 평화는 이해와 용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형상의 부처나 십자가는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하는 인류와 중생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이정표에 불과한 것이다.

살다보면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름인 줄을 알면서 신앙인들도 생존의 법칙 때문에 교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저지를 때가 많다.

우리 내외는 그저, 어제는 행여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나? 그리고 오늘은 어떻게 바른 하루를 보낼 것인가? 참회의 기도를 하는 것뿐이다. 내가 남을 탓하고 비판할 때 내 자신에게도 흠과 비판을 받을 만한 행위는 없었는지 그런 미망의 횟수를 가능한 줄이기 위해 매일 새벽 외출에 나서는 것뿐이다.

이 칼럼은 5년 전 논설위원 시절에 쓴 칼럼인데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여러 지인과 독자 분들의 부탁이 있어 자구 몇 자를 수정해 올린 글이다. 우리 내외 같은 소시민도 일상의 시작을 나를 돌아보고 나를 더 낮추는 겸허한 자세로 여명을 맞이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지킴이를 자처하는 정치권은 어떤가. 달그림자를 보고 짖는 변견(便犬)처럼 피아간에 잘났다고 짖어대는 쉰 목소리들이 너무도 역겹고 지겹다. 그들에게는 국민은 아예 안중에 없고 정치라는 뼈다귀 외에는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영양가 없는 이 지루한 정쟁의 종말은 언제일까? 오는 11월22일 금요일 오전 10시30분, 마산 MBC 홀에서 우리 시대의 멘토라는 법륜스님의 금년 100회째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이 개최된다고 한다. 질문자로 나서서 이 끝없는 당파싸움의 결말과 해결책을 진지하게 여쭤봐야겠다.

/수석논설위원김순  abz3800@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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