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꿈과 같은 백년대계(百年大計)

  • 입력 2006.09.04 00:00
  • 기자명 강종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문파문 등으로 김병준 부총리가 물러난 지 25일 만인 지난 1일 비로소 새 교육부총리가 내정되었다. 그런데 무려 35명이나 되는 교육부총리 후보자 중 많은 학계출신 후보자들이 논문검증을 두려워하여 한사코 고사하는 바람에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명망있는 교수, 총장출신의 후보자들이 자신이 일생동안 썼던 논문에 자신감조차 없다니 학자로서의 기본자질은 물론 그 동안의 명성도 그릇된 방법으로 형성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흔히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직업으로 대학교 교수를 꼽는다. 무(武)보다 문(文)을 중시한 과거의 전통에 따른 사회적인 존경과 미래 사회의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할 제자를 양산하는 스승이라는 이유만이 아니다. 구속되지 않는 자유와 안정된 보수, 연간 절반에 가까운 방학도 있기 때문이다. 교수의 직업이 그런 존경과 혜택을 받기에 사회적 책임도 다른 어떤 직업보다 강하다. 그 시대의 정의를 세우고 가치를 정립시키는 일이 학자인 교수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논문을 통해서이다. 판사가 판결로써 말한다고 한다면 교수는 논문으로써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만큼 교수의 명성은 논문을 통해서 나온다. 그런데 논문이 까발려지니까 자신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명성은 잘못 쌓여진 것이 아닌가. 잘못된 논문관행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고치려고도 하지 않는 사회가 학계라면 이미 그 사회는 보수화된 사회가 분명하다. 그래서 혹자들은 학계를 우리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의 하나라고 매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학계는 1980년대 이후 일본인 유학생들이 선진국에서 사라진 이유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언제까지 국외학위를 우대해야 하는 학문의 후진국으로 남을 것인가.

교육의 본질은 개인을 건전한 사회인으로 육성시키는데 있다. 즉, 인간의 사회화에 있다. 사회 각 분야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게 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적인 목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단편적인 지식습득만을 강조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올바른 가치관의 형성은 등한시 해왔다. 즉, 기본이 안된 교육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결과 부정과 비리가 고착화되고, 사회의 행복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이기주의 사회로 변하고 말았다. 우리사회가 흡사 사상누각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의 근원에는 교육문제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부의 단계가 올라가면 갈수록 강하고 심오해야 할 교육이 우리는 선진국과 오히려 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초중등 과정의 지식습득의 정도가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진 서구 선진국들이 사회의 안정성과 결속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하여 자연적으로 그 사회가 튼튼해졌다고 오판해서는 안된다.

건강한 사회는 뿌리가 튼튼한 교육에서 나온다. 획일화된 영어공부에 인생의 승부를 거는 학생들과 공무원의 자기계발로는 밝은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21세기가 국제화시대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자신의 분야에 대한 폭넓은 사고와 지식을 습득하기에도 부족한데 오로지 영어에만 매달려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낭비중의 낭비가 아닌가. 모든 학생들이, 모든 공무원들이 영어를 잘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사회, 기업 할 것 없이 영어가 필요한 업무에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근무하게 하면 그만이다. 1년, 10년 만에 한번 써먹을까 말까 한 영어가 자신의 고유한 업무영역을 계발하는 것보다 그렇게 중요해서 취업이나 승진에서 영어 성적이 필수적인가. 공직사회가 오히려 앞다투어 영어공부를 독려하고 있는 실정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사교육비 문제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며 형편만 된다면 영어권 국가로의 유학은 필수적이 아닌가.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다. 무엇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는 교육,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땜질식 정책을 보면서 어찌 백년대계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미 10여년 전부터 대학교조차 강의평가제가 시행되었는데도 강력한 교원단체는 교원평가제를 거부하고 있음을 보면 집단이기주의를 넘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엉터리 선생과 엉터리 학자, 기본이 덜 된 교육내용, 영어병에 걸린 학교와 사회를 보면서 백년대계는 꿈이려니 한다.

이동재/논설위원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