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튀니지 사막에서 만난 천년의 올리브 나무

  • 입력 2013.12.31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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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나라 튀니지에서 강렬한 태양아래 끝없이 펼쳐지는 올리브 밭을 보았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과도 같은 붉은 땅에서 묵묵히 홀로 서있는 천년의 올리브 나무에게서는 스페인이나 이태리에서 보는 올리브 나무와는 또 다른 원초적인 생명과 죽음에서 느껴지는 종교적인 엄숙함이 있었다.

아름다운 풍광과 천혜의 기후 덕분에 유럽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아프리카의 관광지인 튀니지는 이미 기원전 7·8세기에 페니키아 문명이 번성했고,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점령했던 명장 한니발 장군의 나라, 해상제국 카르타고의 역사적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럽에 직면한 지리적 위치와 아프리카 최고의 곡창지대인 튀니지는 기원전 1세기부터 1956년 독립하기까지 거의 이천년을 로마와 터키 (오스만트루크), 프랑스에 점령당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발은 아프리카에 있다’는 말은 튀니지의 오랜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잘 대변해준다.

구약성서에도 감람나무로 등장하는 올리브는 아마 지중해연안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식물일 것이다. 흔히 올리브하면 스페인을 떠올리게 되지만, 튀니지는 전 세계에서 올리브 면적이 가장 큰 나라이며, 세계에서 4번째 올리브유 생산국이다.

올리브 나무가 7000만 그루 이상 자라고 있고 한 두 집 건너 올리브 농사를 짓고 있으며, 올리브는 튀니지의 가정에서 매 끼니마다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튀니지 농산물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올리브는 특히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건조지역에서 올리브 나무를 키워 소득을 내니 튀니지의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중요 작물인 것이다.

올리브는 본디 가뭄에 잘 견디는 식물이어서 햇빛만 있으면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더욱이 나무를 심은 지 5-10년 뒤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해서 100 살까지도 올리브를 수확할 수 있다니 정말 신이 내린 축복의 나무가 아닌가?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기후 변화와 계속되는 가뭄은 올리브 농사 또한 예외 없이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필자가 튀니지의 사막지대인 남부로 가는 길을 차로 달리는 동안 유래 없는 심각한 가뭄과 병충해로 인해 말라죽어가는 올리브 나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죽음과 경계선에 있는 사막의 가뭄은 더욱 강렬하였다. 석양이 지는 메마른 땅에서 내 평생 처음 마주친 천년된 올리브 나무들이 튀니지의 과거와 현재를 품에 안은 채 쉬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왠지 먼 나라 아프리카의 가뭄과 지구의 신음소리를 처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주로 자연 강우에만 의존하는 튀니지 올리브 농사의 특성상 가뭄에 잘 견디는 올리브 품종 개발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랫동안 튀니지에서는 강우량이 많은 북부지역에서는 그 기후에 맞게 Chetoui 품종을 심는 반면, 연간 강우량이 250mm도 채 안 되는 남부 지역에서는 Chemleli 품종을 재배해 왔다. 가뭄에 강한 올리브 품종은 뿌리가 깊고 가지가 적어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하는 반면, 열매를 많이 맺는 품종은 뿌리가 약해 가뭄에 잘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고대 페니키아 문명시대부터 야생 올리브 접목기술을 가지고 있던 튀니지는 다양한 유전자원을 이용하고, 가뭄에 강한 품종과 접목을 통해서 뿌리가 깊어 가뭄에 더 강하고 열매를 많이 맺는 품종 개량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와 아프리카 식품 농업 협력이니셔티브(KAFACI)의 지원으로 튀니지 올리브 연구소와 가뭄 극복을 위한 공동 연구과제가 수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발전된 농업생명공학 기술이 튀니지의 사막에서 가뭄을 이기고 앞으로 천년동안 강하고 아름답게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올리브 나무를 육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농촌진흥청 분자육종과 / 윤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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