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우리 시대의 ‘타루비’를 보고 싶다

  • 입력 2014.01.09 00:00
  • 기자명 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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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사자어로 좋은 문구들이 거론됐지만 눈에 띄는 게 ‘도행역시(倒行逆施)’라는 문구가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사마천의 사기 오자서열전’에 나오는 말로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나쁜 일이나 악정을 도모해 도리와 상식,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세계 어떤 나라에도 선정을 베푼 통치자와 독재정치로 한 시대를 지체장애로 만든 인물들은 있었다.

어느 국가나 어느 시대건 목민과 폭정을 가름하는 주역은 측근들이었다. 누가 측근이 되느냐에 따라 국정의 운영방식은 달라졌고 백성들의 삶 또한 태평성대와 맥수지탄(麥秀之嘆)으로 갈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전 국회의원을 비서실장으로 곁에 두고자 했을 때 이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로 가는 좌표에서 이탈했다는 여론엔 무게가 실려 있다.

지역색을 부추겨 김영삼 정권을 태동시킨 부산 ‘초원 복국집’ 사건의 주역인 그가 검찰총장, 법무장관과 3선 의원을 마치고 다시 칠순 중반의 나이에 최고의 실세인 청와대비서실장(도승지)으로 발탁된 그의 인생여정은 ‘동방불패’가 아니라 ‘관직불패’의 오뚝이 같다는 일부 공치사에도 불구하고 겨울 나목에 갈기갈기 찢긴 채 매달려 있는 이파리처럼 추하게 보였다. 떠날 때를 알아 일몰처럼 불타오르다 서리 찬 어느 날 여명에 한 잎 남김없이 이파리를 뚝, 거침없이 떨구고 뿌리로 돌아가는 노거수들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분수를 망각한 노욕(老慾)과 노탐(老貪)으로 삶을 마무리한 사람들에겐 죽은 뒤 관 속에 노추(老醜)라는 명패 하나만 달랑 들어 있을 것 같다. 그런 명패는 방부제를 칠하지 않아도 영원히 썩지 않는다. 노욕의 좌장인 박희태는 어떤가? 다행이도 범부를 자처하며 한 평생을 올곧게 살아온 채현국 선생이 지척인 양산에 계셔서 우리 시대가 외롭지 않고, 채명신 장군이 현충원의 장군묘역을 마다하고 사병묘역에 안장하도록 해 진정한 노병의 정신을 보여준 게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인간은 감동을 받으면 눈물을 흘리고 분노를 느끼면 증오를 느낀다. 민초들이 감동받고 행복을 느끼는 시대에는 분명 최고통치권자의 곁에는 그 주인을 감동받는 역사의 인물로 만든 측근들이 있었다. 그런 인물들에게는 어김없이 타루비(墮淚碑: 눈물 흘리는 비)가 세워지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비 앞에 서면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땅의 진품 타루비를 찾으려면 전남 여수를 찾아야 한다. 진남관 부근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보물 1288호인 타루비는 장군이 전사한 6년 뒤 수하 장졸들이 국가의 도움 없이 십시일반으로 추렴해 세운 추모비로 진정한 민족의 타루비라고 할 수 있다. 채명신 장군과 채현국 선생의 묘비도 분명 타루비로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도표상의 행복지수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 행복수치를 바란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측근정치를 불식시키고 유연성을 발휘해 난마처럼 얽힌 정치와 국정을 안정시키고 공권력이면 만사형통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을 접고 지역문제에서 국가문제로 몸집이 커져버린 밀양송전탑 문제와 경남도민의 자존심이 걸린 경남은행 문제에도 한 마디쯤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현직 대학교수가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원맨쇼를 연출하고 안녕하지 못하다는 대자보가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며 근래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맞서 대통령이 결사항전의 결연한 자세를 보면서도 국가정체성을 좌우지하는 교학사의 친일독재 미화를 언급한 변태교과서에 대해 정부가 단호한 척결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또한 경남도민들은 홍준표 지사 역시 103년 동안이나 서민들의 안식처역할을 했고 건물 또한 100년이 지나 유형문화재나 다름없는 진주의료원을 재개원 시켜 은퇴 후 타루비의 주인공이 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힘을 쥔 사람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과를 돌리며 탓하는 것이야말로 진실이 아니라 횡포라는 게 대다수 식자층의 자탄인 것 같아서 말이다.

/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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