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은 테러다

  • 입력 2007.06.04 00:00
  • 기자명 권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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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갑자기 날카로운 갈고리에 입술이 걸려 끌려간다. 근래 인터넷을 달군 이 무시무시한 장면은 2006년 대규모 금연법을 통과시킨 잉글랜드 금연 광고 중의 일부다. 이 광고가 회자된 이유인즉, 우리나라 보건복지부가 새로운 개념의 금연광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담배는 보이지 않는 폭력입니다”라는 카피 위로 남자의 작업실에 가득 찬 담배연기에 여자가 난타당하고, 아버지의 담배연기가 귀여운 아이들의 폐 안으로, 여자의 담배연기가 남자친구의 폐 속으로 쿨럭 들어가고 이내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절한다. 그렇다. 흡연은 ‘폭력’이며 간접흡연은 그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건복지부는 꾸준히 금연광고를 펼쳐왔다. “담배는 나쁩니다. 당신은 나쁩니다”부터 “진실을 말하세요” “지금 말하세요”까지 카피 변화를 보면, 점점 간접흡연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새로 선보인 광고는 간접흡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라고 촉구한다. 우리나라는 2003년 국민건강증진법에 소위 금연법을 보완하면서 본격적인 금연 캠페인에 돌입했다. 당시 남자 성인의 흡연율은 68%로 세계 1위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나머지 간접 흡연인구를 보호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이 수치는 2005년에 50%대로 낮아졌고, 2006년에 40%대로 진입하였으며 현재 30%로 낮추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한다.

지난 5월 31일은 1987년부터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세계금연의 날(World No Tobacco Day)이었다. 그 궁극적 목표는 이 세상에서 흡연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홈페이지에 가보면 올해의 슬로건은 “내부로부터 금연 : 100% 금연 환경을 조성하고 누리자”이다. 즉 담배 연기 없는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라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담배를 사스나 조류독감, 말라리아, 후천성면역결핍증과 같이 전 세계 인구를 강하게 위협하는 재앙 수준의 전염병(epidemic)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 인구의 사망 원인 2위, 현재 추세라면 2020년쯤 전체 흡연자의 절반인 약 3억 2천만 명 정도가 담배로 인해 사망한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메아리 없는 소리가 이 금연광고다. 보건복지부의 이번 광고는 비흡연자 국민들 대다수가 이미 인식하고 피해 입었던 ‘폭력’이라는 단어를 이제 와서 겨우 꺼낸 것에 불과하다. 아니, 비흡연자라는 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담배를 안 피는 사람이 훨씬 더 많고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니 당연히 우리들이 평범한 정상인이다. 흡연자는 ‘뻔히 알면서도’ 40여종의 발암물질을 포함한 4000여종의 유해화학물질을 바로 우리 옆에서 마구 뿌리고 다닌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심신 성장발달을 저해하고, 악성 호흡기질환을 유발하고 환경오염을 부추기면서 타인의 생활과 생명에 위해를 가하고 있으니, 이것이 간접살인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아직도 담배를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이라며 선택권과 흡연자의 인권을 들먹이려는가. 당신이 휘두르는 담배연기라는 폭력으로 아무 죄 없는 주변의 부모, 배우자, 연인, 자녀, 친구, 동료가 죽어가고 있음을 인식하라.

우리 정부는 이미 2004년 이후 담뱃값 인상과 금연 정책으로 인한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담배를 둘러싼 정책과 세금 등 이로 인한 국민 정서의 총체적 괴리를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공익광고로는 드물게 광고상까지 타면서, 또 폭력이라고 외쳐가면서 금연 광고를 하면 무슨 소용 있나. 다른 한쪽에선 KT&G가 천사 날개를 달고 비까지 맞아주면서 보건복지부보다 더 때깔 좋은 이미지 광고로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는데. KT&G의 CI 컨셉트가 뭔지 아는가.
“Korea Tomorrow & Global”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 그 어디에도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약간의 언급조차 없다. ‘담배뉴스’라는 코너를 클릭해보니, “해외에서 담배 한류 열풍” “금연정책강화 지자체만 울상” “담뱃값 오르면 물가당국도 속 타” 등 이런 종류의 기사 목록만 나열되어 있어 기가 막힌다. 복지재단과 사회공헌 사업, 스포츠 구단을 통한 홍보전략 등도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마인드만 있을 뿐이다. “한발 앞선 복지세상, KT&G가 행복 네트워크로 실천합니다” 3월에 나온 지면광고를 보니 담배연기를 맡은 듯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요즘 세상에 테러라는 단어 함부로 쓰면 안 된다. 하지만 본래 ‘폭력’이라는 뜻이니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이렇게 말해야겠다. 제발 ‘Korea Terror& Gang’이 되지 말라고! 흡연자들에게도 똑같이 기대(?)한다. 제발 정부 정책 운운하면서 스스로 테러를 자행하는 흡연자 집단에 기생하지 말고 스모크 프리 세상으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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