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개문읍도(開門揖盜)

  • 입력 2014.07.07 00:00
  • 기자명 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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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손권전(孫權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 말년, 조정의 통제력이 상실되자, 강동(江東)의 손책(孫策)은 자신의 세력 기반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에 강동 오군(吳郡)의 태수인 허공(許貢)은 황제에게 밀서(密書)를 보내 손책을 제거할 것을 건의하고자 하였으나 손책에게 발각되어 죽고 말았다.

한편 사냥을 나갔던 손책은 허공에게 큰 은혜를 입은 식객들이 쏜 화살을 맞아 죽었다. 당시 손책의 아들 손권(孫權)은 겨우 15세. 부친의 죽음을 비통해 하며 군정을 살피지 않자, 장소(張昭)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지금 간사한 무리들이 우리들을 뒤쫓아 오고, 이리 같은 놈들이 도처에 숨어 있는데, 자네는 부친의 죽음만을 슬퍼하고 대사(大事)를 돌보지 않고 있으니, 이는 문을 열어 도둑을 맞아들이는 것과 같네(是猶開門揖盜).”

지난 1일 새롭게 출발한 7대 산청군의회를 바라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주민들의 대표로서 주민들의 뜻을 대변하기 위해 의원으로 선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작도 전에 주민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벌써 줄서는 것부터 배우고, 분당 지어 세력을 형성하는 것만 배우니 기자는 주민의 한사람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주민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의장선거 때부터 공명정대(公明正大)보다는 담합을, 새로운 정치 구현보다는 패거리 정치의 구태(舊態)를 택했다. 특히 지난 2일 실시된 상임위원장 선출에서는 구태의 정점을 보여줬다. 패거리 정치의 힘겨루기 모습을 보이며, 1곳은 초선급의 의원이, 2곳은 모두 초선의원들이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비록 투표의 모양새를 갖추기는 했지만 기권한 의원들도 마땅히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선출된 세 의원 모두가 자질과 인격면에서 훌륭한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회 운영위원회는 의회의 원활한 운영과 행정 집행부간의 조율을 담당하는 특히 중요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보통은 의회 경험이 풍부한 재선급의 의원들이 맞는게 보편적인데, 이번에 처음 선출된 의원들은 선출되자마자 위원장을 맞는 것을 보니 모두의 재선급의 역량에 지역 주민들이 정말 잘 뽑았다는 생각에 자랑스럽기까지 한다.

기자는 축구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실력은 동네축구선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약 그런 기자를 지금 브라질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로 뽑아서 월드컵에 출전하라 한다면, 마냥 기뻐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기자의 실력에 대해 고민도 할 것이고, 부진에 대한 온 국민들의 비난과 비웃음에 대한 부담감도 들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기자는 그런 제의를 단칼에 거절할 것이다. 내 자신과 실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에게 희망이 있다. 그저 내 가족들이 건강하고 자녀들이 바르게 커주고 등등 아주 소박한 바람들을 가지고 대부분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지역주민들은 풀뿌리 민주주의 개념조차도 관심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저 그들이 가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서 기초의원들을 뽑아서, 그들을 통해서 어울려서 잘 살아 보자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이루려는 대리만족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주민들은 그러한 작은 희망조차도 가지면 안 되는 것인가.

개문읍도(開門揖盜)는 개문납적(開門納賊)이라고도 하며 ‘스스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한 말이다. 산청군의회는 개문읍도(開門揖盜) 말아야 할 것이다. 가장‘바른 길’이 가장 ‘빠른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을 어려워해야 할 것이다.

/노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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