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아의 시네마 블루](4)

삼부루 전사의 애수

  • 입력 2007.06.15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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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이 대사를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아. I know you never come back.” 리말리안의 이 대사엔 사랑, 회환, 후회, 미련, 아픔, 상처, 고마움과 그리움이 한데 섞여 눈물 꽃을 피운다. 영화 ‘화이트 마사이 Die Weisse Massai’(2005)는 스위스 출신의 백인여성 카롤라와 아프리카 케냐의 삼부루족 리말리안의 작은 불꽃같은 사랑을 그린다. 단, 이 영화에서 흔히 백인여성과 흑인남성간의 결합이 유발하는 정치적인 미묘함과 차별적 시선은 결코 용납되지 않음을 미리 알려드리고 싶다. 감히 말하건대, ‘화이트 마사이’는 근래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슬픈 영화였다. ‘슬픔’이라는 정서의 뿌리가 상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근저에 깔고 있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상실을 동반해야 하는 것이라면, ‘화이트 마사이’는 바로 슬픔이다.

2년을 함께 한 연인과 케냐에 여행을 왔다가, 처음 본 삼부루 전사에게 한눈에 사랑에 빠진 카롤라. 그녀는 리말리안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 내가 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 사람의 교감은 매우 아련하지만 동시에 간결하고 선명하게 전달된다. 영화의 배경이 된 케냐의 자연이 형언하기 힘든 어떤 웅장한 힘과 신뢰를 보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남녀의 만남과 사랑이 찰나의 욕망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진 사랑임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영화는 케냐를 무대로 올 로케이션을 했는데, 특히 리말리안의 부족 ‘삼부루’ 마을이 전반적으로 공개된다.

흔히 아프리카의 자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한다. 그것은 아프리카 자체에 대한 선입견이나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감정이입이 100퍼센트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간접 매체를 통해서 줄곧 우리는 아프리카의 야생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척박함과 고통의 역사에 대해선 외면한 적이 있지 않은가. 카롤라의 내면에도 100 퍼센트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요인이 많다. 특히 어린 소녀에 대한 할례나 여성의 고통스런 유산으로 노출된 그들 특유의 여성관이 문제를 만든다. 그럼에도 그녀가 ‘백인 마사이족 여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리말리안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깨닫고, 수용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다. 카롤라는 그런 건강한 태도로 자신의 삶과 사랑을 당당히 ‘선택’한 것이다. 4년간의 그 삶을 끝내고 리말리안을 떠나 딸과 함께 스위스로 가버린 것도,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리말리안의 관점에서 다시 쓴다면 어떨까? 분명 그의 모습은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이 많지만 눈빛이나 행동 등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유산을 겪는 부족의 여자를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카롤라를 보고, 리말리안이 어쩔 수 없이 부족의 오랜 관습을 깨고 여자를 부축하는 장면을 보라. 그가 몹시 갈등하는 모습이나 이후 세심하게 몸을 씻는 모습에서 삼부루 전사의 문화적 충격을 읽을 수 있다. 또 낯선 남자의 눈을 똑바로 보면 안 되는 부족의 관습을 개의치 않는 카롤라에게 딴 남자가 생긴 것으로 오해하여, 계속 억누르다가 어느 날 리말리안은 전통 머리를 가위로 잘라버리고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 사실 그도 카롤라만큼이나 사랑 하나만 믿고 온 몸으로 기존 질서에 대응하면서 충격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카롤라와 리말리안을 연기한 두 배우는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다. 독일 배우 니나 호스(Nina Hoss)는 이 영화로 국내 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녀의 활약으로 카롤라의 강인하고 건강한 면과 섬세하고 순응적인 면이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재키 이도(Jacky Ido)는 실제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부르키나 파소 출신이다. 마사이족은 아프리카 내에서도 가장 뛰어난 체격 조건과 문화를 가진 종족으로 현재 케냐와 탄자니아에 소수만이 남아 있다. 리말리안은 마사이족과 매우 비슷한 삼부루족이다. 배우 재키 이도는 삼부루도, 마사이도 아니지만 그의 얼굴과 체격, 특유의 머리장식과 케이프 등은 아프리카 남성의 인격과 매력을 잘 드러낸다.

이 영화의 원작은 유럽 베스트셀러 작가인 코리네 호프만(Corinne Hofmann)의 자서전적 작품이며 우리나라에서도 <하얀 마사이 >(2006)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문화적 비평과 호기심이 아니라, 그저 사랑과 이별의 슬픈 이야기로 이 영화를 봐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세상에 이런 ‘슬픔’ 흔치 않다.

/창원대학교 어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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