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기의 세상읽기]병원의 이상한 이름들

  • 입력 2007.06.22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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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신의 이름을 김 치질로 바꾸어 고친 외과의사가 있었다. 그분이 일반외과 전문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독 치핵이나 치루 등 항문주위 수술을 전문적으로 했었다. 지금은 항문외과가 따로 있어 이걸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이 따로 양성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외과의사라면 누구나 항문수술을 할 수 있었고 그리고 했다.

일반외과 의사들이 말하는 3대 수술 즉 가장 많고 자주하는 수술이 바로 충수돌기 절제술(일명 맹장수술)및 탈장수술 그리고 치핵 수술이었기 때문이다. 김 치질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정식 개명신청을 하여 법원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낸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 의원 이름을 ‘김 치질 의원’이라 바꾸고 큼직하게 써 만든 대형 간판을 자신의 의원 입구에 턱 하니 내걸었다. 그분이 그 후 얼마나 자기 이름값을 해 떼돈을 벌어 재벌이 되었는지 나는 들은 바 없다.

치질이란 단어는 현대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독립된 병명으로 등재되어 사용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받아 치핵을 치질이라 불렀던 게 아닌가 짐작될 뿐이다. 비근한 예를 들면 충수 돌기염을 일반적으로 맹장염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치질은 그 당시엔 특정한 한 개의 병명이었으므로 병명을 간판에 적어 선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아예 바꾸어 ‘김 치질이란 이름을 가진 의사의 의원이다’ 라는 의미로 간판을 달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하면 의료법에 저촉? 되지 않기 때문인데 매우 특별하신 분으로 무슨 개인적인 불가피한 사연이 있을 것으로 여겨 우리는 그 당시 웃고 넘겼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앞 다투어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들을 병의원의 이름으로 바꾸어 달거나 작명? 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하얀 치과나 아름다운 피부과, 속편한 내과 등 병의원의 이름으로는 생소한 이름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름은 그 추구하는 바의 목적이 뚜렷하므로 그런대로 봐 줄만하다. 아마 신세대 의사들이 그런 걸 선호하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보는 것은 기존 병의원들은 한자이름 일색이기에 다소 식상한 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런 이름도 흔치는 않지만 기발한 신형 병의원 이름이다. 허 선생님과 이 선생님이 동업하는 허 &리 의원인데 주로 허리를 전문으로 보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러나 전혀 관계없는 이상한 영어나 외국어로 된 마치 칵테일 집이나 노래방과 같은 이름을 붙이는 건 좀 고려해 볼만하다.

신체의 어떤 특정부위를 의미하는 단어를 사용 하면서 맞춤법이 틀리거나 소리 나는 대로 적어 병의원의 이름으로 하는 경우도 좀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여겨진다. 미국서부를 여행할 때 가이드라 자칭하는 기자출신 한 남자가 언제나 휴게소에 도착하면 ‘지금부터 학교 가실 분은 몇 분까지 시간을 드리겠다.’고 방송을 하곤 했다.

어리둥절 하는 우리들을 보고 학교란 ‘학문을 닦거나 학문에 힘을 The는 곳?’ 이므로 이른바 큰 것을 보실 분은 그곳(학문=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항문이 된다)에 힘을 주거나 닦게 되니 그게 학교가 아니고 뭐냐는 논리로 우릴 웃겼던 일이 생각난다.

대장항문과가 그때 그 가이드의 논리를 반대로 받아들였는지 불리우는 어감이 좋지 않다 해서 ‘학문의원’으로 바꾸어 표기하는 것은… 글쎄 그게 옳은 건지 아닌지 나는 헷갈린다.

한술 더 떠서 이번엔 어감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어떻게 보면 오히려 어감이 더 나빠졌는
데도 불구하고 어떤 특정신체부위를 상징하는 단어를 맞춤법이 틀린 이상한 단어로 바꾸어 병원이름으로 하는 경우도 빈발하고 있다.

척추를 측추로, 무릎을 무룹으로 해 그 부분을 특히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라는 뜻을 강조하려고 한 눈물겨운 노력이 가상하기까지 하다. 유명제약회사가 한때 영어로 제약사의 이름을 표기 할 수 없다는 법 때문에 파머(Pharma) 라는 단어를 ‘깨뜨릴 파(破)에 마귀 마(魔)’를 붙여 한문으로 破魔로 했다는 이야기는 일찍이 내가 들어 봤지만 무룹이나 측추는 무슨 의미인지 알 길이 없다.

혹시 그 병원 의사선생님들께서 일찍이 치질 선생님이 하신대로 개명을 한건 아닐까?

그런 것도 아니라면 그렇지 않아도 한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애들이 많은 게 현실인데 먼 훗
날 전자문자 만들듯 무릎을 무룹으로 척추를 측추로 영원히 만들어 버릴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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