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기의 세상읽기]법치국가의 비극

  • 입력 2007.07.13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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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양심을 어머니로 하고 윤리를 아버지로 하여 태어났다. 어머니인 양심은 너무 변한 세상에 적응치 못하고 병들어 앓아 누웠고, 쓸쓸히 남은 윤리는 외롭고 괴로워하다 입산하여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그래서 법만 홀로 남았는데 부모가 없으니 법은 성숙되지 못한 채 오로지 덩치만 커졌다. 그러니 양심으로 해결 될 것들도, 윤리로 다스려야 할 것들도 모두 다 이 성숙되지 못한 덩치만 커져버린 법만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고 말았다,

법 많은 나라치고 잘 사는 나라 없다. 국민이 잘 산다는 건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산다는 게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제 분야가 투명해져 법 없이도 국민들이 행복하게 산다는 말이다.

한해에도 수천 건의 법들이 제정된다. 조례다 시행규칙이다 이런 것들까지 합치면 한해 수만 건에서 수십만 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에 관련된 일부 몇몇 단체나 개인들을 제외하곤 관심 있는 사람은 없다.

너무나 많다보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알 도리나 흥미가 없다는 게 옳은 말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만들지 않을 수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하도 그 숫자가 많다보니 그 가운데는 모법인 헌법에 위배 되거나 상충되는 것들이 생겨나 날로 헌법재판소의 위헌제청이 늘어난다.

또한 처음 제정 할 당시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었건만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의 변화로 이런 현상들은 두드러진다. 뿐만 아니라 법을 제정함으로써 오히려 하지 않음만 못한 결과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최근 최저봉급액수를 법으로 정해 버리니 봉급액수가 올라가 멀쩡하게 잘 다니던 아파트 수위가 실직을 하게 되어 자살까지 한 일이 있었다. 괜스레 서민들 편이 되겠다고 법까지 제정했지만 실제 가장 혜택이 필요한 극빈층 노인들이나 그에 준한 사람들이 그나마 겨우 얻은 직장에서 쫓겨나 실직자가 되고 만 것이다.

비정규직 법이 통과되자 이상한 고용형태인 무기계 직종이 새로 생겨 극히 소수에게만 혜택으로 돌아간 반면 해당되지 않는 비정규직은 무더기 해고로 돌아와 법이 만들어지지 않음만 못하는 의외의 결과도 생기고 있다.

그것뿐이랴! 도로교통법과 미터법은 국민들을 무더기 범법자로 전락하게 만들 수도 있다. “총을 불법화하면 범법자만이 총을 가질 것이다.” 정서적으로 전혀 다른 미국은 개척시대부터 전통적으로 개인의 총기소유는 개인과 가족의 정당방위에 필요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에 범법자만 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공자(孔子)께서는 일찍이 ‘도지이정(道之以政) 제민지이형(齊民之以刑) 민면이무취(民免而無恥)’라 하여 “법으로 다스리고 형으로만 다스린다면 백성은 그 법을 피하려고만 할 뿐 범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놈의 법을 우습게 보는 것도 큰 문제지만 법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법치만능주의도 문제다.

걸핏하면 ‘제도적 장치…’하는 게 문제해결의 유일한 방법이라 유식한 분들은 말씀하신다.

“사람이 법만으로 사는 게 아니니라,”
“법만으로 산다면야 오늘날처럼 법 밝은 세상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법만으로 산다면 법에 걸리지 않을 놈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너는 법에 걸리지 않는 일만하고 사는 성 싶지?”
“그런 게 아니니라.”

작가 이무영(李無影)이 소설에서 한 말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 같다. 법은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기위한 일개 방법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법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해서 국민이 잘살고 행복해 진다고 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나라의 명운에 지대한 영향을 줄 대통령을 뽑는 이른바 대선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대선주자끼리 고소에 고발이 난무하고 법 없으면 못사는 국민처럼 된 것이다. 실제 법을 만드는 사람들과 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더 법을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고소고발을 일상화해서 법으로만 살려고 한다.

요즘은 마치 법 때문에 사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법 좋아 하는 자 법으로 망한다’는 말 그냥 전해 내려오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은 양심을 어머니로 하고 윤리를 아버지로 해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양심과 윤리가 먼저고 법은 그 다음이다. 지금 우리는 이순서가 바뀐 감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제대로 하려면 병든 양심을 건강하게 일으켜 세워야 하고 외로움에 지쳐 세상을 등진 윤리를 우리 곁으로 되돌아오게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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