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숙 에세이]그 곳에 마음 빛이 있다

  • 입력 2007.08.22 00:00
  • 기자명 권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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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그리워하는 건 그 시대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의 자신이 그리운 까닭이라고 한다. 가끔은 그 시간들을 꺼내어 자신의 옛 모습을 되짚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여름이 통 물러날 기색이 보이지 않은 기온 탓으로, 잔뜩 찌푸린 표정은 가족들에게 편치 않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아침일상들을 마무리 할 즈음 과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오랜 시간의 궁금함을 기계적인 전화선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만나러 나가는 길은 도로포장으로 인한 체증이 심하여 더욱 더디게 만남이 이루어 졌다. 내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 있었던 그녀에게 미안함과 연민을 느끼며 좋지 않은 교통체증에게 원망을 돌렸다.

삶의 변화는 그녀의 모습도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 누구든 어쩔 수 없이 다리를 꺾고 고통스럽게 주저앉게 되는 절망의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처참히 부서져서 다시는 일어서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때가 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인한 생활의 변화는 감당하기 어려움으로 곳곳에서 봇물처럼 한꺼번에 몰려와 가족의 별리로 이어졌다한다. 가족의 생계가 막막하여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은 또 다른 고통이 된 모양이었다.

흐르는 것은 시간뿐이 아니었나 보다. 그녀에게서 흐른 것은 젊음이었지만 흐르면서 얻은 건 편안함과 넉넉함을 가진 관조하는 자세였다. - 깊은 눈빛이 그것을 증명하는 듯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런 빛이었다.

살아가면서 실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의 발견이 필요한 것이며 실패가 값진 것이 아니라 실패의 교훈이 값진 것이다. 그것은 산에 나무가 있고 땅속에 바위가 있듯이 삶에 튼튼한 뼈대를 만들어 주는 모양이었다.

힘들고 버거운 삶 속에서 좌절과 절망을 맛보는 일이 많다. 그러나 그 때가 바로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라는 걸 새길 때가 아닌가 싶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바닥치기’라고 할 수 있겠다는 것이 그녀의 생활 철학이었다.

그녀와의 만남동안 많은 것을 간접 경함으로 인하여 배우고 익혔다. 집착과 미련을 덜어 내고 스스로를 새롭게 짜고 엮는다는 기꺼움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나의 지성도 감성도 영혼도 병목에 갇힌 채 진작부터 동맥경화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은 지 걱정이었다.

나무가 단단한 목질을 품게 되는 건 어김없이 찾아오는 힘겨운 계절을 겪으며 만들어 지는 거라는데, 예정에 맞춰 살고 계획성 있게 사는 건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 궤도에서 일탈하는 것이 뜻밖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 그게 자의건 타의건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이제야 보이는 것이 순서의 바뀜이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었다는 여유와 관용에서 오는 것 같다.

그녀의 심연에서 울려 나오는 얘기 속에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것이 있다. 미래에 대한 빛이었다. 따뜻하고 찬란한 빛이었다. 다시는 그녀를 잃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의 빛이었다.

오래전에 사라졌던 수많은 여름 영상들이 내 안에 다시금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제는 상실의 아픔을 겪고 싶지 않다. 그것이 삶의 어쩔 수 없는 필연이라 하더라도 별리(別離)는 괄호 속에 묶여 있으면 한다.

한 순간의 여유로 우연한 해후의 선물을 얻었다. 하루가 이 일로 행복하다. 이 행복이 오래가도록 되새김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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