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마당]봄소식 유감

  • 입력 2006.04.26 00:00
  • 기자명 심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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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다던 생명의 계절이라는 봄이 와 벌써 맹춘(孟春)이 되었다. 개화의 찬란함을 뽐내던 꽃들이 낙화하고 이파리에게 자리를 물러주고 있다. 신록이 번지고, 녹음이 우거지고하여 봄의 진행은 멈추지 않아 달포가 지나면 또 여름세상을 만들 것이다.
남들도 그렇겠지만 나는 해마다 봄이 올 때가 되면 봄소식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추운 겨울 지나면서부터 누구에게나 봄은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인동(忍冬)의 고초를 겪다보면 생리적인 바람이 누구에게나 있다. 우선 추우니까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원초적인 감정에서부터 봄에 대한 생각은 일어나는 것이다. 봄이 희망을 상징하는 계절인 것은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에서 새싹이 나고 꽃이 피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볼 때도 기쁜 것이고 들을 때도 기쁜 것이다. 옛 사람들은 봄이 와도 꽃이 보이지 않으면 봄 같지 않다고 하였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은 꽃이 피지 않는 땅을 두고 한 말이다.

봄이 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나무를 심는 일이다. 요 몇 년간 나는 해마다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주마다 나무심기를 해왔다. 올해도 장날마다 언양장에 가 마음에 드는 나무를 사와 내가 거처하는 반야암의 일손들을 동원하여 경내 여기저기에 심었다. 설중매를 위시해 청매, 홍매, 옥매 등과 주목, 불두화, 산다화 등도 사다 심었다.

나무를 심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그리움과 서러움을 한 그루 나무뿌리에 붙여 파묻어 심으니 여기에서 세세생생의 내 꿈과 희망이 심어지고 나와 인연 닿는 모든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심어져 시절인연이 다가올 때 꽃 피우고 열매 맺게 해 달라고 빌어본다. 이렇게 비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있는 순수한 염원을 말없이 독백하며 이번 생의 고달픔을 달래보는 말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무를 심어 놓고 난 뒤에 나는 마음이 뿌듯한 만족감을 느낀다. 마치 하루의 공부를 잘 한 것 같은 편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마음이 된다.

유명한 임제선사(?~867)는 산문에 나무를 심어 놓고 나무를 심은 까닭을 산의 경치를 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뒷사람에게 심는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가 있다. 심는 모범을 보인다는 것이 매우 뜻 깊은 말이다. 좋은 원인을 만들어 좋은 결과를 기다리게 한다는 인과법을 가르치는 법문이기도 하다. 역대로 나무를 사랑한 도인들이 많았다. 재송(裁松)도인은 평생을 파두산에 소나무를 심으며 살다가 그 복력으로 몸을 바꾸어 환생해 출가하여 부처님의 법을 이은 조사가 되었다. 일본의 양관(良寬1758~1831)스님은 마루 밑에서 솟아난 죽순을 자라도록 하기 위해 죽순이 커 다 큰 대가 될 때까지 마루를 뜯어내고 천정을 뜯어내고 지붕을 뜯어내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봄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올 봄에 꼭 한 그루 나무나 꽃 한 포기라도 심어 놓고 기다리자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희망과 찬미의 계절인 봄이 되면 나타나는 걱정거리가 있다. 애써 심은 나무가 당해를 잘 자라다가 겨울을 못 이기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비싸게 사다 심은 산다화 두 그루가 죽어버렸고 몇 년 전에 큰절에서 이식해 심은 오죽(烏竹) 가운데 일부가 지난 겨울의 추위를 못이기고 말라 버린 것이다. 내게 있어서 심어 놓은 나무가 죽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이 더하여 괴로움이 된다. 기후나 자연의 조건과 나무의 생장을 생각하기 전에 인연의 무상함과 박복의 가난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기가 심은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것이 자기의 복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 논리를 나는 가지고 산다. 인간의 업이 자연현상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와 관계된 식물이 인간의 복과 관계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봄이 되면 범죄율이 증가한다거나 가출 청소년이 늘어난다는 이야기 등이 사람의 업과 계절이 무관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엘리어트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10여일 전에 오대산 월정사에서 화엄산림이 있어 다녀온 적이 있다. 간 김에 적멸보궁이 있는 중대를 참배하러 올라갔는데 황사가 짙게 끼여 시야가 흐려 산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으며 날씨가 추워 오들오들 떨면서 내려온 적이 있었다. 고비사막의 먼지가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봄을 망가뜨린다. 황사가 일어나는 고비사막에 나무를 많이 심어 녹지대를 조성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금년 봄이 지나면 내년 봄이 또 기다려 질 것이다. 내년 봄에 내게 기다려지는 봄소식은 올봄에 심은 나무가 모두 싱싱하게 잘 자랐다는 소식이 될 것 같다.

한지안 / 스님, 조계종 종립 승가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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