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기 세상읽기]고개 숙인 귀국

  • 입력 2007.09.07 00:00
  • 기자명 하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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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님들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죄지은 것 없습니다.”

탈레반에게 납치되어 인질로 잡혔다 귀국하는 19명이 인천국제공항에서 귀국인터뷰를 하려는데 주위에서 들려온 고함소리다. 묘하게도 이 소리는 여과 없이 그대로 TV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는데 화면을 비춰주지 않아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목소리로는 환영 나온 같은 교회의 젊은 남자 신도일 것 같은 추측이 갔다.

죄지은 건 아닐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 듣기가 좀 거북하다. 죄를 짓는다는 게 꼭 타인에게 신체적 또는 물적 손해를 입히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특히 종교적으로는 광범위해서 모든 인생의 삶 자체가 원죄에 속하기도 한 것이다.

남에게 못할 짓을 직접 하지 않았다고 자신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해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죄를 지어 죄송 하는 경우도 있고, 죄를 짓지 않아도 죄송한 입장이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인데, 뭐 그렇게 이런 따위, 어느 높으신 분 말씀대로, 깜도 아닌 건수를 머리 숙여 죽을죄를 진 것처럼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씀이시다.

40일 넘게 험악한 낯선 이교도들 속에 억류되어 이미 두 명의 목숨까지 희생당했으며 성폭력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겨우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천사 같은 형제자매들이 대대적인 환영은 못 받을지언정 죄지은 표정을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말일 것이다.

문제는 같은 종교를 가지고 같은 교회에 다니는 분들을 제외하면 이런 생각을 그대로 모두가 수긍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뷰에 앞서 계란을 귀국한 그들에게 던지려 하다 경찰에 붙잡혀 간 이른바 네티즌들이 붙여준 계란열사(?)도 있기 때문이다.

억류되어 인질로 고생할 때 까지는 실제 국민들은 과격한 표현들은 자제했다. 어떻든 아까운 두 사람이 탈레반에 의해 살해 되었으므로 남아있는 인질 모두의 안전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표현을 과격하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속마음까지 그렇다는 건 결코 아니다. 이제 귀국해 모두 돌아 왔으니 그동안 참았던 하고 싶은 말들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번사태에 정부의
대응은 너무 열성적이다 못해 헌신적이라 할 만 했다.

대통령특사에다 외교통상부장관, 그 위에 국가정보원장까지 몸소 현지로 총 출동하여 과히 대한민국이 얼마나 자국민 인질 해결에 적극적인 정부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도 남았다.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테러분자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기에 외국여행은 위험하게 되었다” 걱정들을 하시는데 붙잡혀 봤자 대통령 특사와 국가정보원장이 현지로 몸소 오셔서 선그라스맨과 말끔히 해결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탈레반 대변인의 말대로 8월말까지 아프가니스탄 내에는 협상내용대로 한국인이 다 떠나고 없어야 하는데 아직도 남아 있다면 인질만 빼내고 나면 그만인 작전(?)인지도 모른다.

다음번에 일어나는 인질사태는 다음정부가 떠맡아 엿이나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몸값도 탈레반은 받아 무기를 사서 지하드(성전)에 사용하겠다고 그 액수와 사용처까지 밝힌데 반해 우리정부는 단 한 푼도 준 사실이 없다고 한사코 우기고 있다.

인질을 이미 2명이나 죽였고 매일 매일 한명씩 총살해 죽일 듯이 날뛰던 탈레반들이 알라신의 계시라도 받은 양 온건파나 강경파가 모두 심경을 바꾸어 갑자기 인질을 무조건 전원석방 하게 되었다고 믿기에는 그 각본이나 연출이 너무 어수룩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뭔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 석방할 리가 없으며, 우리정부와 직접대화 하여 뭔가 대단한 것을 얻어간 것만은 분명한데 정부는 아무것도 지불한 게 없다고 한다. 정부 말대로 라면 정말 마음씨 좋은 탈레반들이다.

그래서 일단은 탈레반한테는 차후에 인질이 되어도 그냥 풀어줄게 틀림없으므로 나는 해외여행, 특히 아프가니스탄 여행에는 겁낼 필요가 도무지 없다 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여행금지나라 지정은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다.

잡았다 공짜로 풀어주는 탈레반을 왜 무서워해 여행이나 선교를 포기해야 하느냐 말이다.

이번 참에 참으로 대단한 외교술을 우리 정부는 만천하에 두루 떨쳤다. 대통령 특사에 카메라 세례에 눈이 부실정도로 노출된 국정원장, 그리고 외교통산부장관 까지 직접 현지 또는 접경지 영향력 나라에까지 출두 했으니 탈레반인들 겁나서 별 도리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이러니 죄지은 것 없다고 하는 것이고 고개를 떨 굴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게 아닐까?

이제 한동안 비난과 동정이 쏟아지고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후에 어떤 결론이든 날것이다.
어떻든 돌아온 분들과 고인이 된 분들, 그 가족들 국민들 모두 이번 사건을 하루속히 잊어버리고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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