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숙 에세이]철이 드는 분노

  • 입력 2007.09.12 00:00
  • 기자명 권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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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과 지혜는 나이위에 절로 쌓여가는 것이 아닌가 보다.

출근길의 도로에서 맞닥뜨리는 불쾌감부터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일들로 인해 나의 정신세계는 분노와 불안으로 시작할 때가 종종 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히기 위해 나름 쌓인 내공을 발휘해 보지만 어쩔 도리가 없을 때에는 강약의 차이는 있겠지만 스스럼없이 쏟아 낸다. 그러고는 자신이 멋쩍을 때에는, 스스로 ‘분노도 경건한 신념만큼이나 나를 성숙케 한다’는 지론으로 위로해 본다. 그것으로 인해 무언가를 잃게 된다면 그것의 가치는 어차피 그 정도의 것을 넘어서지는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남들이 알고 있는 나에 대한 인식들인, 저 햇빛 쏟아지는 오후의 권태 같은 안정감과 편안함이야말로 턱없이 꾸며진 기만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보여 지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분노하고 표현하는 날 보며 우리 아이는 “엄마, 모두들 엄마의 진실을 알면 까무러칠 거야.”

“내가 누굴 닮았게, 다혈질적이고 불의를 못 참는 멋진 엄마의 성격을 고대로 닮았지요.”라며 놀려댄다.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 분노도 결코 맹목이 아니다. 그것도 판단하고 선택하고 용납하고 거부한다. 그러니 분노하지 않는 법을 배울 것이 아니라, 제대로 분노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어리석음으로 해서 분노 할 수는 있으나 분노로 해서 어리석어 지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내 부드러운 속살이 상처위의 딱지처럼 굳어지는 것과 같은 것일까? 때때로 그 상처가 덧나는 것처럼 똑같은 상황에 처하고 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또 그렇게 분노하며 후회하는 것을 보면 많은 시간이 필요 한 것 같다. 원칙에 따르지 않고 감성에 끌리거나 이성에 복종하지 않고 유혹에 빠져들면 아픈 상처는 딱지를 뒤집어 쓸 틈 없이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밤사이 게릴라처럼 파고드는 잔주름이나 새치 따위는 걱정꺼리도 아니다. 속절없이 쓰러져가는 젊음이야 괴롭고 가슴 아프지만 그것은 어차피 내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다만 내가 답하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들을 찾아내려 한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대단한 원칙주의자도 아니요, 떳떳하게 외칠 수 있는 도덕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불안 속에서 충분히 동요하며 그것을 견뎌내야 하고 버티어 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 속에서 파닥거리고 부딪히고 휘청거리는 몸부림이야말로 나의 삶을 깊이 있고 풍요롭게 이끌 것이다.

차이와 불일치를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면서 만들어 내는 긴장과 탄력을 끌어안으려 애쓴다. 내 빈약한 이성능력을 탄탄히 다져 줌으로써 병적으로 예민한 감성과 지나치게 범람하는 열정을 속박하고 견제해 주리라는 확신을 갖는다.

서투름으로 인한 실수를 털어내기 위해 연습이 필요 할 것이다. 못 말리는 본성이 일어나는 일 도 있을 것이다. 때때로 낭패감과 열패감으로 휩싸일 때도 있을 것이지만 철들어 가는 분노의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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