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갤러리] 평사리에서 진주까지

  • 입력 2007.10.10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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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 평사리 허수아비들

박경리가 쓴 〈토지〉의 대목을 한번 읊어보자. 사투리가 질펀하다.

‘겨우 이삭을 물기 시작한 들판의 벼는 바람을 타고 짙고 연한 서릿빛 초록의 물결을 이루며 서편을 향해 나부끼고 있었다. 덤불 속은 한결 서늘해진 것 같았으며 우물 근처 습한 곳에서는 지렁이 한 마리를 물어낸 암탉이 장닭을 피해 뜀박질을 한다. 아이를 들쳐 업은 임이네는 도랑가에 쭈그리고 앉아 빨래를 한다. 방망이질을 할 때마다 등에 업힌 아이가 울곤 했다. “어느 놈의 여편네가? 빨래통은 내동댕이쳐놓고 어디 갔이꼬?” 올 때부터 빨래 방망이랑 버선이랑 걸레가 든 통이 나동그라져 있었는데 임이네가 빨래를 헹굴 즈음까지 임자는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가씨난가 여편넨가 모르겄다마는 봄도 아닌데 바램이 났나?”하는데 풋콩을 따서 넣은 광주리를 들고 강청댁이 도랑으로 내려왔다. 그는 흥, 하는 시늉을 하며 통을 끌어당겨 빨랫돌 위에 걸레를 올려놓는다. “나는 누구 꺼라고?” 강청댁은 아무말 안 했다. “간난할매가 죽었다누마.” “항우 장사라도 늙으믄 별수없지. 불로초는 없인께.” 강청댁은 방망이질을 세차게 하며 내뱉았다. “두만네 성님이 추수 때까지는 살아얄 긴데 하더니만…기별한다고 지금 막 길상이가 뛰어가는구마.” “빌어묵을 제집년! 누가 지하고 말하자 카나. 비우도 좋고 쇠가죽맨치로 낯짝도 두껍다!” 강청댁은 빨래를 주물러서 구정물을 뺀다. 임이네는 헹군 빨래를 통속에 넣으며 ”두만네는 수가 터졌구마.” “…” “논 다섯 마지기가 누구네 아아 이름이건대” “…” “우리네 한평생, 뛰고 굴리도 별수없지, 흥! 남으 땅 부치묵으믄서도 노상 수풀에 앉은 새맨치로 맘 한분 놓고 사나?” “뉘 아니래?” 솔깃해서 강청댁은 대꾸했다. “생각할수록 한심하지. 종살이도 오래 하니께 땅마지기를 얻는데…”

〈토지〉 무대인 하동 악양면 평사리 들녘이 지금은 누렇다. 들판은 황금색 가을을 맞고 있다. 들판에 허수아비들이 많다. 보통 허수아비가 아니다. 갖가지 ‘의관’을 갖춘 허수아비들. “허수의 아비들. 히히.”

논매는 농부 모습의 허수아비. 동네이장 아저씨 허수아비. “우리쌀이 최고여”하고 큰소리치는 허수아비. 그네 타는 모습의 허수아비. 강강술래하는 허수아비. 춤추는 허수아비·임신한 허수아비.

“그런데 그네 타고 강강술래 하는 허수아비가 여자들인데, 허수아비라 불러도 되나?”

“허수아비의 딸 미스(Miss) 허수들인가?”

평사리 들녘의 허수아비들은 오는 13∼14일 최참판댁 일원에서 열리는 ‘제7회 토지문학제’의 부대행사로 설치된 작품들이다. 허수아비 중에는 이충무공의 백의종군 행로, 정기룡장군의 행렬을 재현한 허수아비들이 있다.

▲북천면 남바구들의 메밀밭

하동 악양에서 벗어나와 하동읍을 지나 진주가는 국도를 타고 오면 하동과 진주의 중간쯤에 북천면이 있다. 북천면의 남바구들에서 ‘2007년 코스모스·메밀 꽃단지 탐방·체험행사’가 열렸는데 행사는 지난 7일로 끝났다. 축제기간에 이미 30여만명 관광객이 축제장을 다녀갔을 정도로 축제는 성황을 이루었다. 대단한 축제였다. 코스모스는 축제와 함께 그 전성기를 넘기면서 화려함이 예전 같지는 않다. 지금은 하얀 메밀꽃이 제철이다. 그래서 축제는 끝났지만 파장은 하지 않았다. 먹거리 판매점과 농·특산물판매장은 오는 20일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메밀꽃 피는 달밤에 축제장의 천막술집에서 메밀묵으로 막걸리 한사발 “크으 -.”

메밀꽃의 대명사는 뭐니뭐니 해도 이효석의 작품 〈메밀꽃 필 무렵〉이다. 북천에 가서 그의 작품을 떠 올리며 “크으 -” 한 잔 더. 과거의 추억 속에 사는 고독한 장돌뱅이 허생원의 말을 들어 보자.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팔자에 있었나부지.”

▲진주남강 유등축제

북천에서 진주까지는 지척이다. 북천에서 메밀꽃을 보았다면 어두웠을 때 진주에 가자.

‘진주 남강 유등축제’는 대한민국 최우수축제다. 지난 1일 등불을 켠 축제는 14일에 불을 끈다. 남강 유등축제는 세계 최대의 등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만 5천개에 달하는 등을 강물에 띄웠다니 대단하다. 임진란의 진주대첩을 상징하는등, 도깨비등, 원앙등, 논개등, 고려청자등, 사슴등, 등등. 또 2만여 개의 소망등 행렬. 진주 남강이 등으로 환하다. 많은 사람들이 강둑에 앉아 등불을 감상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진주가 많이 좋아졌다. 강둑에 분수대도 있어 마치 파리의 세느강을 연상케 한다. 옛날에는 ‘개천예술제’ 기간에 창호지로 붙여 직접 만든 등을 강물에 띄워 소망을 빌었는데 ….

그 시절에는 유등이 지금처럼 크고 장대하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소담하고 서정적이고 낭만적이었다. 남녀 연인이 강둑에 앉아 강물에 흘러가는 등불을 보며 사랑을 이야기 했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불빛 조명이 아름다운 남강다리를 보니 아폴리네르의 ‘미라보다리’가 생각나네.

‘미라보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 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 / 내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기리 /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옴을 …’

이일광기자 ik@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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