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상 칼럼]인간의 존엄, 불구속수사원칙에서 찾아라

  • 입력 2007.10.12 00:00
  • 기자명 권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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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규정은 우리의 국법체계상 최고의 규범성을 갖고 있으며, 국가공권력은 물론 개인도 존중해야 한다. 독일기본법은 제1조에 「인간의 존엄은 불가침이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의무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제10조 후단에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강조하고, 기본권을 불가침의 인권이라고 하여 국가권력도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자유권은 생활권과 달리 국가가 간섭·개입하지 않을수록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공권력으로부터 침해 받을 소지가 큰 곳은 신체의 자유이다. 경찰과 검찰이 신체의 자유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국가기관이라는 것이다. 신체의 자유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피의자의 구속이다. 피의자가 구속되고 나면 사로잡힌 인질처럼 완전히 기가 꺾이고 주변의 인심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죄인처럼 풀이 죽고 변호인이나 남의 도움도 쉽지 않아 고립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이나 법률은 여기에 대한 처방을 내놓고 있다. 우리의 사법체계도 구속남발을 막기 위해 여러 제도를 두고 있다. 헌법 제12조에는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고 청구의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구속영장은 압수수색이나 체포영장보다는 혐의의 증명정도가 한 단계 높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범죄혐의가 인정되면 일정한 주거가 있는지, 증거를 없앨 염려가 있는지, 도망갈 염려가 있는지를 따져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구속영장이 발부된다. 범죄혐의가 인정되어도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발부사유임을 법관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불구속수사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연유한다. 헌법 제27조 4항에는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인간 존엄을 궁극 목표로 하는 민주헌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법관의 기본자세와 판결의 기본방향을 규정하는 원칙일 뿐만 아니라 수사시관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관한 원칙이다. 이는 판결 이전의 절차는 물론 판결 형성의 과정에도 적용되어야 하고 불구속수사·불구속재판을 원칙으로 하며, 예외적으로 도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에 구속수사·구속재판이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체포·구속이 되어도 위법·부당할 경우에 구속적격심사로 석방될 수 있다. 헌법 제12조 6항에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속이 적법하지 않거나 사유가 부당한 경우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로 영장발부에 대한 재심절차라 할 수 있다. 범죄혐의·증거인멸혐의·도주혐의 여부를 심사하여 혐의가 없는 경우 석방하게 된다. 그리고 수사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문이 근절되어야 한다. 헌법 제12조 2항에는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문은 사람의 정신과 신체를 파괴시키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을 정면으로 훼손하기 때문에 근절시켜야 한다. 형법에는 고문행위를 한 공무원을 처벌하는 규정을 들고 있다. 고문을 근원적으로 없애려면 미국에서 확립한 「불법의 과실도 불법이다」는 원칙이 인정되어야 한다. 고문 등의 강제자백을 통해 얻어진 흉기 기타 증거도 불법의 과실이므로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원칙이다. 자백이 고문에 의해서 얻어졌다고 해도 이를 통해 얻어진 물적 증거는 증거능력을 인정한다면 고문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고문근절을 위해 고문에서 얻어진 증거는 증거능력으로 인정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는 고문근절과 과학적 수사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민주국가에 있어서 국민이 주인이고 공무원은 주인에게 봉사하는 봉사자이다.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존엄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에 헌법은 국민의 무죄추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불구속수사원칙도 여기에서 연유된다. 구속은 인간의 전도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지인을 면회하러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철문을 나오면서 느낀 것은 천당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교도소 안은 지옥이고 교도소 밖은 천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속은 원칙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예외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구속영장발부 비율이 2%정도라고 하니 많이 개선 되었다고 본다. 이번 신성일·정원재씨 영장 기각과 관련하여 검찰은 불편했다. 이 문제로 전국 고검장 간담회가 열렸는데 정상영 검찰총장은 검찰은 함께 성찰해보자고 했고 구속수사관행에 대한 자성이 이어졌다고 하고, 이용훈 대법원장은 검찰의 반응도 일리가 있다고 했다. 상호 잘못이 있다는 반응인데 문제는 구속해야 수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증거확보가 불가능하다는 말은 이해가 곤란하다.

인권신장의 측면에서 첫째, 초동수사를 철저히 하고 영장이 기각되면 법원명령을 존중하여 재청구를 삼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밤샘 수사는 실질적으로 고문에 가깝다고 본다. 번갈아 가면서 밤새도록 수사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대검청사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밤샘 수사를 강행하는 것이 국민의 눈에 고문의 현장으로 비친다면 문제이다. 검사와 법관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구속수사의 원칙하에 존엄한 국민 개개인을 섬기는 자세로 여론과 언론에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법률에 의한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공평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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