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Sketch] 화림동 팔정자 계곡을 드라이브 해보니

육십령에서 안의까지, 부전계곡과 정자들 삼림 작업실

  • 입력 2007.10.17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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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동(花林洞)은 심진동(尋眞洞)과 원학동(猿鶴洞)과 함께 안음삼동(安陰三洞) 중의 한 골짜기다. 안음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골짜기를 안음삼동이라고 했다. 안음이란 함양 안의마을의 옛 이름이다. 수승대가 있는 원학동이 지금은 거창군에 속한 마을이지만 이전에는 안음현이었다. 심진동은 장수사터가 있는 마을로 용추계곡이라 부르고 있다. 화림동은 육십령에서 안의까지 계곡따라 흐르는26번국도를 낀 골짜기를 말한다. 화림동을 글자대로 해석하면 ‘꽃피는 산골’. 지금은 길가에 코스모스가 많다.

예로부터 팔담팔정이 있었다는 골짜기다. 그 만큼 계곡이 수려했고 선비들이 음풍농월하기 좋았던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골짜기의 상징인 농월정은 3년 전 쯤에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농월(弄月)’이 ‘달을 희롱했다’는 말인데 안음 선비들이 얼마나 잘 났으면 달을 희롱하고 놀았을까.

이 골짜기에 정자가 많았다는 것은 계곡이 좋아 계곡을 보고 노래하고 술 마시며 놀았던 선비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계곡과 정자는 인생의 악세사리였다. 먹고 입고 자는 데 쓰이는 필수품이 아니라 인생의 사치품이다.

황산마을에 있는 동호정 앞거리를 수청거리라고 했다. 선비들의 수청을 들기 위해 분주하게 오고간 기생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호정 앞의 물 가운데에 있는 무지무지하게 큰 너럭바위를 차일(遮日)바위라고 한다. 해를 가려준다는 뜻인데 바위는 오히려 햇살 속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정자보다 그 바위에서 벌인 술판이 더 화려했을 것 같다.

동호정 건너 황산마을에 서각가 삼림 송문영이 산다. 은진 송씨 문중의 솔밭을 사들여 솔밭 속에 작업실을 지었다. 삼림(森林)이라는 그의 호는 전부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그 나무들을 헤아려 보자. 하나, 둘, … 다섯 개의 나무다. 그는 거의 이십년을 외아들과 단 둘이서 나무를 파며 살았다. 지금은 신혼살림 중이라 느지막하게 집에 깨가 쏟아진다.

삼림은 우리나라 서각계의 중창조라 해도 과언 아니다. 평생 동안 숲 속을 떠나지 않고 나무를 팠으니 그의 칼질은 신기(神技)이다. 요즘은 그의 빗 음각 작품이 돋보인다. 그에게 숲은 악세사리가 아니라 생필품이다.

동호정에서 더 들어가면 군자정이 있다. 바위 위에 세워진 작은 정자다. 군자정에서 더 올라가면 거림정이다. 거림정이 현존하는 정자 중에 스케일이 가장 크다. 화림동에 여덟 정자가 있다고 했는데 남아있는 정자는 고작 세 개 뿐이다.

화림동에는 부전계곡이 좋다. 원시적 채취가 묻어나는 긴 골짜기이다. 부계 전병순(1816∼1890)이 은거하고 강학하던 동네로 그의 흔적이 ‘부계정사’라는 퇴락한 집으로 남아 있다.

집은 정사 옆집 주인에 의해 차실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서당건물의 채취는 현판의 글로 남아 있다. 현판을 읽어 보자.

들어가는 문이 ‘독행문(篤行門)’이다. 독행문을 지나 ‘부계정사’라는 현판이 달린 마루 안을 들어서면 마루는 툇마루까지 맞통해 있다. 마루 양옆으로 방이 네 개 있다. 각 방 위의 편액이 ‘박학실(博學室)’이고, ‘심문당(審問堂)’이고, ‘신사헌(愼思軒)’이고 ‘명판제(明瓣齊)’이다. 순서대로 풀이해 보자.

“널리 배워야 하며(博學之), 상세히 물어야 하며(審問之), 삼가 생각을 해야 하며(愼思之), 밝게 분별을 해야 하며(明辨之) 돈독하게 행해야 하느니라(篤行之)”. 주자(朱子)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세우고 내건 학규(學規)를 부계정사 서당의 편액으로 붙여 놓은 것이다.

부전계곡의 초입 옥산마을에는 남명 조식선생의 시비가 있다. 남명이 이 골짜기에 놀러와서 한 수 읊었던 모양이다.

‘푸른 봉우리 높이 솟았고 물은 쪽빛인데 / 좋은 경치 많이 간직했어도 탐욕되지 않아 / 걸리는 것 없는데 꼭 세상사 이야기할 것 있으랴? / 산 이야기 물이야기만 해도 이야기가 많은데.’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부전계곡은 서상 IC에서 나오자마자 오른쪽에 가는 길이 바로 나타난다. 옥산다리를 건너간다.

이일광기자 ik@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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