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가 인생의 밑거름

  • 입력 2006.04.27 00:00
  • 기자명 조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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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더위에 먼지 가득낀 선풍기 마저 달그닥 거리는 교실 안에서 혈기 넘치는 중학생들의 고약한 땀냄새가 진동을 한다.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 얼굴에 발냄새가 나는 발바닥을 갖다대면 친구들은 ‘꺄르르’ 하고 웃던 한여름밤 야간자율학습 시간의 철없던 시절이 그립다.’

직장인 김성근(36)씨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갑자기 아릿한 중학교 시절로 되돌아 간다.

철없고 장난끼 많던 중학교 시절에 우리들은 왜 그렇게 선생님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에 반항하는 학생들이 멋있어 보였던 시절. 그때 한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백선생님의 제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담긴 매가 없었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참된 삶을 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추억속을 더듬어 본다.

나는 아침 등교때에는 정문을 통해 학교에 갔지만 야간학습자율시간이 끝나기 전 하교시에는 다른 정문을 자주 이용했다. 이십년이 흘렀다. 백선생님은 교실 수업외에 나에게 참사랑이 담긴 개인수업을 간혹 하셨다.

나는 야간자율학습시간이 끝나기 전 화장실 창문을 뛰어넘어 또 다른 담벼락 사이를 지나 하교하는 개구멍이 있었다. 학교 정문이 아닌 나만의 정문이었다.

언제부터인지 학교가 인정한 정문외에 내 출입구역인 개구멍의 크기가 커져만 갔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입소문으로 알기 시작한 이후로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개구멍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불안해 지기 시작한다.

오늘 따라 교무실 근처 복도에 선생님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까지 접근하는데 성공, 창문만 넘으면 어김없이 내 세상이다. 한발짝을 올리고 힘껏 나머지 발을 올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바지끝을 잡아 당긴다. 저학년이든 동기생이든 내가 인상한번 찌푸리면 다 도망가는 터라 “어떤 자식이야”라며 험상궂게 잘도 찌푸린 얼굴을 돌렸다. 그 순간 내 눈앞에 보인건 나보다 더 험상궂은 표정. 정말 거울을 갖다 댄듯한 느낌이었다. 이십년이 지나도 이제 그리운 은사님이 딱 버티고 있었다.

변명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선생님은 사랑의 매로 개인수업을 시작하셨다. 쉴새없이 뺨과 머리로 날라오는 손바닥, 선생님의 실내화까지도 몇대를 맞았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나는 원없이 맞았다. 그날은 개인수업외에 과외수업까지 받았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반장을 통해 자초지종을 듣고는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교회를 가는 길이었으면 그렇다고 말을 할 것이지. 멀쩡한 교문 놔두고 왜 개구멍을 이용하느냐. 그러니까 어제와 같은 일이 생기는거 아니냐”며 다짜고짜 또 화부터 내셨다.

이내 긴 한숨을 내쉬며 선생님은 어제 맞은데는 괜찮은지 묻고는 제자를 다독거리셨다.

중학교 사춘기 시절, 그때는 왜 그렇게 뭐든 반항부터 하고 싶어 했었는지 바른대로 말하는 것도 싫었고 삐뚤하게 행동해야 직성에 풀리는 듯 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선생님 마음도 참 많이 아팠을 것 같다.

그 당시 선생님이 나에게 사랑의 매 수업을 하지 않았다면 사회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이 부족했을 것이다. 학창시절 만난 은사님 한분 한분 다 고맙지 않은 분이 있겠는가. 한분마다 제자 사랑에 불철주야 노력한 것을 제자가 철이 없어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저에게 사랑을 담아 개인수업과 과외수업을 마다하지 않은 백선생님 은혜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동창회 때 친구들과 만나면 제일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호되게 자기를 두들겨 때린 선생님’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제자와 선생님이 간혹 만나면 ‘철없고 망나니 같은 녀석에게 사랑의 매를 든 제자’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한다.

그당시 선생님이 나를 그렇게 때리지 않았다면 내 기억 속에는 다른 분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고마운 은사님도 많이 계셨지만 추억이라고는 매맞은 기억의 시간들만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나이만 성인이지 정신연령은 여전히 고교 3학년 생인 것같다. 오늘날 내가 사는 사회는 내가 뭘 잘못해도 자신에게 손해만 없으면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분명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요즘 이상하게도 그 분들이 보고싶어진다. 이럴때 선생님이 “야, 나와 정신상태가 그게 뭐야. 엎드려” 하고 부르면 “예” 하고 나가서 시원하게 몇 대 맞고 싶다.

조유빈기자 ybjo@jo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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