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풍경의 정물’ 그리고 플라멩코를 위하여

전형적인 사실주의 화풍, 꺾어온 꽃들과 꽃병, 바람에 날리는 스카프…

  • 입력 2007.10.25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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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작품 ‘못 다한 꿈의 조각들’의 화면은 푸른 바다이다. 바다 멀리 양쪽에 나지막한 뭍이 있고 뭍 사이로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가 가까이로 펼쳐져 오는 것을 보면 바다는 남해의 어느 한 곳인 듯하다. 그림 중앙에는 바다색깔로 탈색된 큰 첼로가 하늘을 향해 있다. 한 켤레의 발레구두. 방금 붓칠을 하다가 올려놓은 듯한 파레트. 먼 곳에서 플라멩코 의상을 한 여인이 화면의 한 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림을 그리려다 말고 춤을 추려나?”
실제로 그는 23일 열린 전시회 오픈식을 플라멩코 춤으로 열었다.

푸른 바다색깔의 레이스가 달린 플라멩코 의상을 입고 나와 ‘솔레아’를 추었다. ‘무거운 색조의 그림들에서 느낄 수 있는 춤’, 먼 해원을 향해 흔드는 노스탈지어의 깊은 몸짓. 정열적인 춤. 격정적인 발소리. 박수장단. “올레.” 솔레아가 끝나자 성악가수가 노래를 불렀고 이어 그는 분홍색 의상을 갈아입고 나와 또 다시 ‘쿠바의 여인’이라는 플라멩코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줬다.

그는 처음부터 화가로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그림은 비교적 늦게 시작했다.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0년간을 경남대 미술과에 출강했다. 플라멩코는 마산에서 서울로 오르내리며 배운 것으로, 오픈식에서 보여준 춤이 그 때 연마한 실력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여름 거창국제연극제의 목백일홍 꽃 만발한 야외무대에서도 플라멩코를 추어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이전에 김준형씨의 책 ‘플라멩코이야기’ 출판기념회에서도 춤을 추었고 ……. 그의 삶은 음악과 회화와 춤이 꿈과 현실 사이로 교차하는 것 같다. 꿈은 현실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의 그림 속의 풍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그림은 하루하루의 생활을 기록하는 일기와도 같다. 숨을 죽이듯 캔버스에 수를 놓듯이 레이스를 그린다 …….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꽃과 찻잔, 광기어린 보랏빛 실크 스카프. 또 때로는 여인과 마른 꽃의 뒤틀린 가지를. 밀실과도 같은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의 꿈과 사랑을, 때로는 욕망과 불안을 그리는 것이다.”

그가 ‘작가노트’에서 한 말이다. 김진숙의 그림은 전형적인 사실주의 화풍의 정물화다. 그가 담는 정물은 늘 정방형의 조각보 위에 놓여진다. 꺾어온 꽃들과 꽃들을 꽂아 놓은 꽃병, 꽃이 동동 뜨는 정한수 한그릇, 낙엽, 석류, 장신구, 반짓고리 ….

정물화는 위에서 바라다 본 시점으로 사진을 찍듯이 극도로 절제된 생략과 구성에서 아름다운 광택을 발하며 우아한 분위기에 세밀한 관찰을 통하여 섬세한 빛의 표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씨는 팜플릿에 실린 ‘김진숙의 정직한 풍경의 정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실적인 표현으로 생동감을 더하고 있는 김진숙의 그림은 전적으로 화면에 쏟아넣은 그의 조형적인 실재감을 주기위한 완벽한 노력에 있다”며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성의 기물들을 가지고 하나의 정물로 만들어내는 그의 기술은 색채와 만나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정직한 정물의 꾸밈없는 통일감을 준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진숙의 지나친 사실성에 대해 “세부적인 묘사와 형태의 진정성에 그치기 쉬운 우려가 있다”고 충고했다.

이일광기자 ik@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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