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고춧가루가 중국산일 경우

  • 입력 2007.11.27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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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다. 올해에는 배추값이 비싸졌다니 마음이 흐뭇하다. 값이 떨어져 캐어내지도 않은 채 밭에서 썩고 뒹굴던 때의 배추를 생각하면 올해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배추를 사먹어야 하는 도시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농작물값은 농촌사람들의 생활과 비례한다. 농작물값이 비싸야만 농촌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진다. 하긴 도시의 상인들이 비싼 배추값을 마냥 놔두지는 않는다. 중국산 배추를 가져와서 우리 시장에 막 풀어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잘 되어도 그만 못되어도 그만이다. 농사일이 잘 됐다 싶으면 그놈의 수입산이 쳐들어와서 판을 깨고 못되면 못되는 대로 생활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농촌은 벌어먹고 살 곳이 못된다. 농사일로는 커가는 아이들의 학비며 대학 등록금을 감당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한 동안 살 때의 이야기다. 한국인이라면 어디로 가든 피를 못 속인다. 독일에서도 김치를 먹어야 사는 것이다. 한 두어달 생활하는 것이라면 여러해 살 때보다 오히려 그 곳의 음식맛에 적응이 잘 된다. 갓 익은 빵이며 부드러운 스테이크가 감칠 맛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김치생각이 난다. 김치와 밥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독일에서도 한국인이라면 김치 담는 일이 생활 속에서 중요한 행사다. 김장을 할 때는 서로 품앗이를 하기도 하지만, 김장 잘 하는 전문가는 이 곳 저곳 불려다니며 실력발휘를 하게 된다.

독일에도 김장용 배추가 시장에 나온다. 일본배추(Japankohl)라고 하는 것인데 길쭉하게 생긴 중국배추(Chinakohl)에 비해 땅딸막하고 통통한 것이 우리 배추모양이면서 덩치가 훨씬 작고 속잎이 부드럽다. 이 배추는 유럽의 남쪽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김치를 담을 때는 배추를 비롯, 소금 생강 마늘 고춧가루가 필수다. 소금이며 생강과 마늘은 독일에도 많다. 문제는 고춧가루다.

독일에서도 고춧가루를 구할 수 있긴 한데 거기 있는 고춧가루는 주로 중국산이다. ‘중국산’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중국산 고춧가루의 맛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다. 맛이 독특하다는 표현보다는 맛이 아예 없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맵기는 지독스레 맵다. 입을 대면 입술이 얼럴럴할 정도로 매우므로, 매움의 강도만 놓고 볼 때 세계 최고다.

부득이 한 경우 중국산 고춧가루로 김장을 담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고춧가루만큼은 한국으로부터 공수해 와서 김장을 한다.

우리나라 고추는 매움 속에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다. 외국인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맛이다. 마치 소월이나 영랑 혹은 미당 시(詩)의 깊은 맛을 외국인이 느끼지 못하듯이 한국의 고춧가루 맛은 한국인만이 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고춧가루만큼은 신토불이라는 것을 나는 독일생활에서 깨달았다.

내 처가는 농촌이다. 교직생활을 했던 장인이 정년을 하고 농촌에 들어간 것인데, 정작 농사일은 장모가 도맡아 하고 있다. 덕분에 김치는 처가로부터 택배로 받아먹는다. 장모가 직접 농사지은 배추로 김장을 해서 김치를 자식네들에게 보내 주는 것이다. 남들은 “배추값이 비싸다” “농약을 쳤다” “수입산이다”하는 말로 호들갑을 떨지만 내 식솔들은 처가덕에 행복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김치를 먹는다. 그러면서 “만약에 장모님이 안 계시면 이런 김치맛도 못 보겠네”하고 걱정을 한다. 왜냐하면 장인장모를 대신해 농촌에 살 처가식구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농촌은 급속도로 공동화 되어 간다. 산간 들녘은 황무지로 변하고 있다. 밭이 하도 오래 묵어서 밭인지 산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빈집도 부쩍 늘어났다.

농림부에 따르면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빈집은 지난 2003년부터 올해 6월말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7만여채로 지난해 5만7000여채에 비해 1만4000여채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경남의 경우는 농촌지역 빈집이 경북, 강원도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단다. 농촌에 빈집이 늘어나고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므로 산과 들이 황무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요새는 농촌에 이주해 오는 것을 ‘귀농(歸農)’이라 하지 않고 ‘귀촌(歸村)’이라는 표현을 쓴단다. 생계를 위해 농사지으러 시골에 온 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농업이 천하의 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맞는 말인데 그 어느 위정자도 이 말에 실감하지 않고 흘러가버린 옛말로 치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농촌이 활기를 띄어야 농촌을 변방으로 한 지역도시가 살고 지역도시가 살아야 국토가 골고루 살만한 곳일텐데 이 나라는 어찌된 영문인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밖에 없다. 전국 인구의 절반이 전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농촌이 황무지가 되면 될수록 우리것이 아니면 안되는 김치 속의 고춧가루가 중국고춧가루일 수밖에 없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아니 벌써 식탁위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농촌을 무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자업자득이다. 중국산 고춧가루. 맵기는 세계 최고로 맵고 고추맛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고춧가루.

이현도 문화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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