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양체재의(量體裁衣)

  • 입력 2015.06.29 14:26
  • 기자명 /노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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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제서(南齊書) 장융전(張融傳)의 이야기이다. 남북조 시대, 남제(南齊)에 글재주가 좋은 장융이라는 고관(高官)이 있었다.

 그는 비록 요직에 있었지만 평소 생활은 검소했으며, 항상 오래되고 낡은 의복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나라 태조는 사람을 시켜 자신이 입던 옷을 장융에게 보냈다. 당시 황제가 자신이 입던 옷을 하사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할 상이었다. 제나라 태조는 옷을 보내면서 친서(親書)도 함께 보냈는데, 태조는 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인은 경의 옷차림을 보고 경의 생활이 매우 검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소. 그런데 경과 같은 고관이 낡고 헤어진 옷을 입는 것은 조정의 체면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으며, 백성들로부터 과인이 경을 천하게 대우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소. 지금 옷을 함께 보내니, 좀 낡긴 했지만 새 옷을 입는 것보다는 더 잘 맞을 것이오. 왜냐하면 이 옷들은 과인이 특별히 사람을 시켜 경의 몸에 맞게 고치도록 했기 때문이오”

 양체재의(量體裁衣)란 ‘구체적인 상황에 근거해 문제나 일을 처리함’을 비유한 말이다.

 산청군은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무상급식 조례 개정안이 지난 5월 27일에 산청군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 됐지만 한달도 체 지나지 않아 산청군의 재의요구로 임시회를 통해 부결 시켰고, 또한 묵혀 두었던 서민자녀 지원 조례안은 슬그머니 통과 됐다.

 이것이 잘못됐다기보다는 이럴 수밖에 없는 산청군의 현실이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재정자립도가 10%도 되지 않는 산청군은 외부 바람이 부는 데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엑스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면 자체 예산으로 행사를 치를 수 없는 것이 산청군이다.

 또 국비나 도비를 지원 받지 않고서는 마을길 하나도 정비 할 수 없는 자치 단체가 산청군이다. 여름 태풍으로 수해가 난다해도, 낙석으로 인해 차량이나 사람들의 통행에 위험을 도사리고 있어도 국·도비를 지원 받지 않고서는 산재한 위험을 해결 할 수 없는 자치단체가 산청군이다. 그만큼 열악한 곳이 산청군이다.

 지금 산청군의 학부모들은 산청군의회에서 통과한 무상급식 지원조례를 산청군수가 반대해서 안 된다고 울분을 토로한다.

 하기사 무상으로 주던 것을 수익자 부담으로 돌리니 학부모들이 화를 낼만도 하다. 그렇지만 산청군의 행정은 상부 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므로 상급 기관의 방침에 해결책 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1월 안정 행정부에서는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자치단체는 교육경비를 지출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경남도와 경남도교육청 수장들의 정치놀음으로 그나마 무상으로 지원되던 아이들의 밥값을 급기야 돈을 내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산청군이 대응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 서글프다. 그저 상급 기관의 눈치만 보면서 향후 대책만 연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급기관에서는 향토 장학회 등을 통해 지원하던 것도 편법이라고 패널티나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겠다고 겁박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각 학교에서나 학부모들은 산청군에서 지원하지 않는다고 연일 행정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들끼리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중단하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현재 처한 어려움들을 같이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자. 지금 산청군은 아이들의 밥도 중요하고 그 동안 지원되던 교육경비로 우리 아이들의 방과 후 학습도 중요하다.

 하지만 산청군의 내일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로 확충도 중요하고, 농축산물의 경쟁력 강화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산청군의 미래는 같이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행정만으로도 주민만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저마다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정말 상대방이 잘못을 하고 있는 데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은 비겁하겠지만, 상황을 잘 살피어 서로 상생(相生) 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급선무 인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양체재의(量體裁衣)해야 한다. 역경을 도전의 기회로 삼으면 된다. 또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해 확실한 비전으로 산청군의 미래를 다 같이 준비하면 된다.

 상호간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기가 가진 최선의 것을 주어보자. 그리할 때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산청군은 더 건강해지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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