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입법부의 궤멸을 지켜보며

  • 입력 2015.07.09 12:07
  • 수정 2015.07.1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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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1조 1항에 나오는 대목이다. 참 근사하고 멋지다. 그런데 과거사는 그렇다 치고 근대사에서도 국민이 주인이 된 적이 없었다. 권력을 쥔 자들이 주인이었고 국민은 허수아비요 들러리였다.

 이것은 권력자나 위정자들이 단초를 만든 게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가 지역색과 이념으로 갈라져 고스톱에서 ‘쓰리고’처럼 무조건 밀어주자 식의 개판민주주의를 양산해 스스로 허수아비와 들러리를 자초한 업보다.

 엄연히 삼권분립이 보장돼 있는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재채기 한번에 정권을 쥔 여당이 스스로 백기를 들고 자폭 당했다면 그 선량들을 선출한 국민들도 함께 자멸한 것이다.

 또한 그런 국회가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진지하게 국민스스로가 고찰하고 다음 선거에서 입법부를 기사회생시키는 특단의 선택을 내놓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행정부가 주인이지 입법부와 국민이 주인이 아니다.

 이번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낙마는 인구에 회자되는 유신정치의 환생이란 말이 오히려 더 적합할 정도로 국민들의 실망은 마지노선을 넘었다. 어처구니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 모르겠다.

 제왕이 백성과 신하의 생사여탈을 쥔 제국주의 시절에서도 특정한 몇몇 임금을 제외하곤 언로는 살아 있었고 국가기능의 조직은 지켜졌다.

 조선조 500년에도 의정부와 육조는 대체로 건재했고 언로를 담당하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란 삼사(三司)가 있어 실정이나 탐관오리를 탄핵하고 임금의 잘못된 정책도 서슴없이 상소를 올려 견제했고 선비들은 3족과 9족이 멸문지화를 당해도 제왕의 바르지 못한 정사를 지적했다.

 국가기록물인 승정원은 임금의 말 한마디 일 거수 일 투족을 낱낱이 기록해 승정원일기로 후세에 남겨졌는데 전번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국가기록물은 비록 정치적 분란의 소지가 있었지만 언젠가는 국민에게 밝혀야 할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국제적으로나 국가와 개인의 비리를 폭로하는 ‘위키리스크’에 들어가면 햇볕에 돌출된 두더지처럼 국가나 개인의 치부들은 숨고 숨길 게 없이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위키리스크가 아니더라도 국가전산망이 해킹에 뚫리고 군(軍)의 보안을 책임지는 기무사의 고급장교가 국가기밀을 유출하는 상황에서 군도 믿지 못한다고 말한다.

 필자가 군에 근무하던 때 군 고위급 사령관이나 군단장이나 사단장도 아닌 대대장이나 연대장인 중위권 장교들이 전입하는 날에도 어김없이 비무장지대에 설치된 북한의 고성능스피커가 국민과 일반 군이 모르는 전입과 전출 사실을 왕왕대고 상관들은 솜으로 고막을 막고 근무하라고 지시했다.

 군 안에도 그만큼 고정간첩들이 기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고의 첩자라는 마타하리들이 군 인사들을 미인계로 꼬여내 첩보를 입수하거나 돈에 매수돼 국가기밀을 적국에 넘긴 사례는 소련이나 미국 등 강대국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우리 군의 보안을 정부가 확실하게 점검하고 보안을 강화해야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말이 빗나갔지만 이번 유승민 원내대표의 강제축출은 행정부의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의 위상을 업그레이드 시킨 게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500년 전의 제왕적 시대나 박 대통령의 부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오점인 유신일당독재정치의 냉동유전자를 다시 소생시켰다는 주변 여론들이 거부감 있게 들리지 않는다.

 당나라 현종은 지나치게 색을 탐하고 음식을 즐기는 식도락가로 유명했으나 가장 측근인 정승 한휴의 직간으로 수라(밥상)는 1즙 5찬을 넘지 않았고 미색인 궁녀들은 왕의 주위에서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왕이 수척해지자 충성분자들이 한휴를 탄핵했지만 현종은 아척비천, 즉 임금이 마르고 백성이 살쪄야 태평성대와 부국강병이 이뤄진다며 한휴를 오히려 두둔했다.

 백성은 하늘이며 곧 민심이 천심이라는 맹자가 언급한 ‘주수철학’을 외면한 위정자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권력이란 물 위의 배 같은 것이다. 폭풍과 풍랑과 암초를 피하는 지혜를 지닌 선장이 아니라면 배건 국가건 파멸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입법부를 향한 살기 어린 발검(拔劍)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국민들이 볼 때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정체성을 함몰시킨 독재적 사고방식으로 보는 여론이 더 비등하다. 이래서 국회무용론이 힘을 싣는 현실이 안타깝다. 결국 대통령의 독선이 국회를 죽인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죽이고 국민을 죽인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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