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어느 경찰서장의 세족식

  • 입력 2015.08.31 12:10
  • 수정 2015.08.31 12:11
  • 기자명 /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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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조직이다. 그런 만큼 그들에게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다른 조직들에 대한 기대보다 남다르다.

 그러나 방대한 조직과 권력을 매개체 삼아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짓밟는 일부 정치경찰이나 승진에만 급급해 선량한 서민을 용공분자나 범죄자로 조작하는 소수 경찰 때문에 전체 경찰들이 매도당할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개도 잠드는 시간, 두 눈을 부릅뜨고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는 것은 군과 경찰뿐이기 때문이다. 서민을 등치고 공권력으로 치부와 영달을 꾀하는 사람들이 경찰뿐일까? 성직자들과 신성한 교사들까지도 존경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소수 못된 경찰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면 내 형제와 자식 가운데도 못된 형제와 자식은 있다.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의 마지막 푸념처럼 억울한 국민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경찰의 가장 큰 ‘가오’라는 말은 경찰스스로 새겨야 할 경전이나 다름없다.

 얼마 전 산청경찰서장 진종근 총경이 신입의경들에게 직접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에 대한 보도를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세족식이란 종교에서는 가장 신성한 의식이다.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윗사람이 가장 아랫사람의 벌을 씻겨줌으로써 상하가 일심동체가 되고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계기가 된다.

 또한 존경하는 스승이나 노약자를 위해 발을 씻어주는 것 역시 인륜도덕의 주춧돌이다. 예수그리스도와 부처님의 행적에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주고 제자들이 스승의 발을 씻겨드리는 기록들은 언제나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내리는 것처럼 2000년이 넘도록 인류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있다.

 불교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첫 서두에도 걸식(탁발)을 하고 돌아와 발을 씻고 설법에 임하는 부처님의 행적을 세족(洗足)이라며 성스러운 의식으로 받들고 있다. 결국 세족의 의미는 부처님의 동체대비와 예수님의 박애로 이어지는 평화와 사랑의 교두보로 인류평화를 견고하게 하는 지렛대와 같다.

 힘들게 삶을 지탱하면서도 가뭄의 소나기처럼 삶의 의미를 절망에서 희망이라는 빗줄기로 느끼게 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곤경에 몰아넣고 특별사면으로 풀려나온 재벌들의 통 큰 기부가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소문 없이 행해지는 진 총경 같은 이런 공인의 진정한 부하사랑이 자식을 군에 보내놓고 전전긍긍하며 잠 못 이루는 모든 부모들과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가장 파워풀한 경찰의 ‘가오’다.

 진 총경은 산청경찰서장으로 부임하기 전에도 경남도 치안지도관으로 재직하면서 경남도경을 도민들로부터 신뢰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산청은 지리산자락에 자리한 물 맑고 인정 많은 고장이며 명의인 허준 선생의 행적이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활인의 애민정신이 곳곳에 남아 있는 말 그대로 산 곱고 물 맑은 지역이다.

 산청의 한방약초 축제가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지리산의 영기를 받고 자라는 약초들도 한 몫 거들겠지만 맑고 고운 산청의 인심과 인정, 그리고 꼿꼿한 선비정신 또한 산청의 모티브 역할을 해냈다. 더군다나 이번 진종근 산청경찰서장의 세족식은 산청의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살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고장으로 만드는데 크게 일조 한 것 같아 흐뭇한 심정이다.

 예전 관청이 있는 부근에는 송덕비라며 전, 현직 관장을 추념하고 기리는 비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아마 그중 대다수가 백성과 지역 부호들의 고혈을 짜 세운 송덕비로 생각해도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여수 진남관 앞에 가면 불멸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름이 타루비(墮漏碑: 보물 1288호)다. 그 비 앞에 서면 눈물 흘리지 않는 백성이 없었다고 해서 붙인 송덕비다.

 얼마 전 모 유명인이 자신의 송덕비를 세웠다가 세간의 비난에 밤 중 모르게 철거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공인들이 신언서판과 어묵동정에 좀 더 수양을 쌓도록 권하고 싶다.

 나이는 잘 모르지만 진 총경의 나이가 불혹을 지난 지천명쯤으로 생각돼 칠순의 필자가 처서가 지난 가을의 초입에서 이런 덕담을 하나 선물로 보내 드린다. ‘가을 단풍이 봄 꽃 보다 더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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