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매독환주

  • 입력 2016.01.17 18:36
  • 기자명 노종욱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편의 이야기이다. 춘추시기, 어떤 초(楚)나라 사람이 진주(珍珠)를 얻게 됐다. 그는 진주를 높은 값에 팔기 위해, 향내 나는 목란(木蘭)으로 작은 상자를 만들고, 다시 계초(桂椒)등으로 향기를 물씬 풍기게 했다. 그런 뒤 진주를 상자 안에 넣고, 다시 여러 가지 보석으로 상자의 겉을 장식했다.

 초나라 사람이 진주 상자를 들고 시장에 나타나자, 정(鄭)나라 사람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진주 상자에 마음이 끌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진주 상자를 샀다. 그는 진주 상자를 반나절 동안이나 살펴보고 비로소 상자을 열었다. 초나라 사람은 이 정나라 사람이 진주를 매우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정나라 사람은 진주를 초나라 사람에게 돌려주고는 빈 상자만을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떠나버렸다.

 초나라 사람은 상자 파는 솜씨는 훌륭했지만, 진주파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다. 모든 일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선후(先後)가 있는 법이다. 허세 때문에 내실(內實)을 망친다면, 이는 정말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지난 6일 삼장면을 시작으로 실시된 2016년 산청군 읍·면 순방이 지난 15일 산청읍사무소를 끝으로 마감했다. 해마다 기자는 군수의 읍·면 순방에 동행하지만 올해는 유독 순방의 방법과 취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누구를 위한 순방인가?”라는 의문과 “과연 무엇을 위한 순방인가?”라는 의문이 순방이 마치는 순간까지도 지속적으로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물론 취지는 좋았다. 군민들의 애로사항을 현장에서 직접 듣고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군민들과의 소통의 기회를 넓히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순방을 계획하는 공무원들이나 준비하는 해당 읍·면에서는 순방을 마치기 전까지 온통 순방에만 신경을 곤두 서 있기 때문에 다른 일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이는 순방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다른 일들은 못하게 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시간적·행정력의 낭비요 또한 민원인들에 대한 직무유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읍·면 순방의 실효성과 행정력 낭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 읍·면 순방의 방법 개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각 읍·면별 순방에 대한 준비하는 모습과 진행은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군수와 도의원, 지역 군의원들의 인사. 그리고 군정홍보 영상 시청. 영상을 마치면 진행되는 주민과의 대화에서는 민원성 건의 그리고 개인적인 불만토로.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순방 내용으로 과연 주민들의 소리는 얼마나 들을 수 있을까?

 주민과의 대화에서 제기되는 내용들은 대부분이 마을 이장들을 통해 각 읍·면장들에게 건의하면 되는 것들이 주류를 이루는 내용들로 굳이 군수 순방을 통해 다시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과 동시에 시간적 낭비라 생각이 들며, 순방에 참여하는 주민들도 각 읍·면에서 마을 이장단을 중심으로 억지로 동원해야 하는 모습에 수반되는 행정력의 낭비도 이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여겨진다.

 이제는 산청군도 읍·면 순방에 대한 방법과 제도를 개선할 때라고 여겨진다. 물론 행정이 각 읍·면으로 찾아다니면 직접 민원인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여러 곳에서 제기되는 불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연초에 산청 문화예술회관에서 지역주민들을 초청해서 한 번에 군정 홍보도 하고 시책도 홍보하는 등, 효율성을 꾀하고 각 읍·면별로 취합된 건의 사항을 청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또한 건의사항들은 사전에 읍·면별로 조사를 해서 당일에 시급한 순서대로 질의·응답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읍·면 순방 중, 일상에 바쁜 주민들을 동원해야 하는 어려움과 준비에 대한 부담은 훨씬 줄어 들것이라 생각이 든다. 물론 만나서 직접 듣는 것도 사람 사는 정이라 하겠지만 순방을 위해 소요되는 시간적·행정력을 최소화 하는 데 목적을 둔다면 행정이나 지역주민들도 부담은 덜어 질 것이다.

 매년 이뤄지는 순방과 전년과 같은 진행. 이제는 무엇이 진정 지역주민들을 위하는 방법인지 산청군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매독환주라 했다. 이 말은 ‘본연의 일은 잊고 지엽적인 일만을 추구함’을 비유한 말이다. 이제 산청군도 계속 해 왔던 일이라 그대로만 따르지 말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보다 스마트한 사고로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