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칼럼] 중국과 지구보안관 ‘팍스 시니카’

  • 입력 2016.05.24 15:46
  • 수정 2016.05.24 17:57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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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칼럼니스트
▲ 수필가/칼럼니스트

 21세기 들어 중국이 대국굴기의 기치를 드높이고 있다.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앞세운 중국식 사회주의 시행 이래 불과 40년 만에 지구촌 패권을 향한 ‘중국드림(中國夢)’의 대장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30년 간 연평균 10% 대의 고도성장을 거듭함으로써, 3조 2000억 달러의 세계최대 외환보유국이자, 3년째 무역규모 세계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구매력지수(PPP)로 평가한 국내총생산(GDP)도 17조 6300억 달러로, 미국의 17조 4600억 달러를 앞질러 세계1위다. 위안화를 국제통화기금(IMF)의 기축통화에 편입시킴으로써, 달러화와 유로화에 이어 단숨에 세계 3대 통화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제 지구촌의 관심은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G1, 즉 새로운 ‘팍스(Pax)’시대를 열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Pax’라는 용어는 라틴어로 평화와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말인데, 오늘날에는 최강 국력으로 세계질서를 평정해 지구보안관 역할을 하는 국가를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팍스 시대는,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 황제부터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집권하던 약 200년을 말한다. 이 시기에 로마는 지중해 주변지역은 물론 메소포타미아까지 차지해 최전성기를 구가했으며, 라틴문학이 황금기를 누린 시대였다.
 
 이 시기에 이어 인류가 두 번째로 맞이한 절대 권력이 바로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시대다. 12세기 불세출의 정복자 칭기즈칸이 로마제국보다 더 광활한 대제국을 건설해, 60여 년간 유라시아 대륙에 이른바 ‘타타르의 평화’를 향유케 했던 시기를 말한다.
 
 세 번째 팍스시대는 19세기 영국이 지배하던 ‘팍스 브리테니카(Pax Britanica)’시기다.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룩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대영제국의 전성시기를 일컫는다.
 
 그 다음이 바로 오늘날 미국이 패권을 쥐고 있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다.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은 영국으로부터 ‘팍스’의 바톤을 이어 받았다. 소련이 지난 1989년 붕괴돼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자, 미국은 막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재편하는 등 지금껏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반세기 지구보안관으로 군림하는 동안 ‘팍스 아메리카나’의 권위에 대항했던 소련과 동독은 허망하게 붕괴됐고, 최근에는 쿠바마저 백기 투항했다. 끝까지 버티고 있는 북한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면서 그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다.
 
 반면, 종전이후 ‘팍스 아메리카나’에 협력했던 많은 나라들은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그렇고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때 미국에 맞섰을 때 중국은 붕괴 일보직전까지 갔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때 수천만이 아사했다. 국운이 풍전등화의 기로에 섰을 때, 마오저뚱은 닉슨과 핑퐁외교를 통해 극적으로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 미국의 ‘팍스’배지까지 위협할 만큼 상전벽해의 굴기를 한 것이다.
 
 지난 반세기 지구촌을 호령해 왔던 미국의 위상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 현재 17조 5000억 달러의 부채를 가진 세계 최대 채무국이자, 약 440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자동차, 전자제품, 조선업을 비롯한 제조업은 사실상 다 몰락했다. 기축통화의 지위를 이용해 돈을 마구 찍어내어 소비로써 국가를 지탱해 나오는 실정이다.
 
 중국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소위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기치를 더 높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착륙, 한계론, 위기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중국 경제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성장률 7%대 벽이 무너지고, 6.9% 성장에 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이른바 ‘바오치(保七)’ 시대가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바오류(保六)’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최저치의 충격적 수치다.
 
 그러나 단순히 이 수치 하나만으로 중국의 경착륙을 예단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중국의 자본주의는 무늬만 자본주의일 뿐, 자유 시장경제 질서하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독점 자본주의, 족벌 자본주의. 관료 자본주의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영기업의 만연한 부패와 부실은 중국경제의 화약고다. 국가로 부터 독점적 지위와 권한을 부여받은 족벌관료들이 국영기업의 요직을 독식하고 있는 한 부패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016년 3월 말 현재 중국의 국내외 순부채가 163조 위안(약 2경 8712조 원)이라고 밝혔다. 적자 공기업의 부채규모는 이미 위험수위를 훨씬 넘었다. 중국정부가 지금처럼 부실 국유기업의 빚을 삭감하는 편법을 통해 인위적으로 좀비기업의 생명을 연장해 준다면 경제몰락의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꼴이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 반세기 우리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던 혈맹 미국의 반대편 동쪽에서 또 다른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태양의 패권 쟁탈전은 앞으로 점입가경일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진퇴양난의 궁지에서 국운을 건 선택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중국이 미국의 뒤를 이어 ‘팍스 시니카’로 등극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앞으로 중국과 공존해야 한다. 지난 2004년부터 이미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미국과 일본의 수출 비율을 합친 18%보다 7%가 더 많은 25%를 우리는 중국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경제적 최대 교역국으로서만이 아니다.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상황을 포함해 요동치는 현재의 동북아 정세에 실체적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향후 중국의 대국굴기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그러나 중국도 인류화평을 선도하는 진정한 ‘팍스 시니카’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가 있다. 대국적 포용력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공존의 리더십을 견지해야 한다는 ‘팍스’의 준엄한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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