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칼럼] ‘STX호’ 이대로 좌초하나

  • 입력 2016.05.30 15:34
  • 수정 2016.05.30 16:19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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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 칼럼니스트
▲ 수필가 / 칼럼니스트

 중국의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 창싱다오(長興島)에 위치한 ‘STX조선해양 종합생산기지’건설현장을 처음 찾은 것은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지난 2008년 5월께로 기억된다. 당시 필자는 행안부 산하 정부기관의 베이징사무소 부소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 당시는 한국에서 많은 자치단체장과 공무원 그리고 지방의원들이 연수단 형식으로 중국을 대거 방문하던 시기였다. 필자가 몸담고 있던 기관은 한국에서 오는 연수단의 방문 희망기관을 섭외해주고, 통역과 우호결연 등 양국 지방정부 간 국제 교류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STX 다롄 조선해양기지는 한·중 경제합작의 대표적인 모범사례로써, 한국 연수단을 견학시키기에 매우 적합한 코스로 판단돼 향후 연수 코스로 포함시키기 위한 사전 답사였다.
 
 다롄 시내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시간 반가량 달려서 도착한 ‘STX 다롄 조선해양 종합생산기지’건설현장은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였다. 당시 연말까지 1단지 준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날 본 홍보 동영상과 조감도, 그리고 직접 목격한 550만㎡ 부지에 조성중인 공사 현장은 진해공장의 몇 배는 될 것으로 짐작됐다. 조선기지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쪽에는 영빈관 건물이 그 화려하고 웅장한 위용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관계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플랜트 제작시설과, 1000t 골리앗 크레인이 들어 설 것이라며, 연신 호기롭게 ‘월드 베스트(world best)’임을 강조했다.
 
 실제 다롄 생산기지는 그 후 줄곧 세계 최고의 기록을 갱신했다. 지난 2007년 3월에 기공식을 가진 후, 2008년 4월에 스틸 커팅을 하고, 그해 12월에 1단지 준공 완료 및 1호 선박인 5만 8000t급 벌크 화물선을 진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공식 불과 20개월 만에 조선단지를 완공하고, 스틸 커팅 8개월 만에 선박을 진수하는 등 모든 과정이 당시로서는 세계 신기록 감이었다. 조선경기 호황과 중국의 파격적인 우대정책 그리고 풍부한 현지 노동력과 강덕수 당시 회장의 열정이 시너지 효과를 거둔 결과였다. 연 매출 14조 8000억 원, 영업이익 7490억 원을 올리면서 당당히 세계 조선업계 ‘빅4’신화를 창조하기까지 이르렀다.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는 1000년 전에 이미 고구려 후예들이 세운 발해를 해동성국이라고 칭송했는데, STX가 이곳 발해만의 창싱다오에서 다시 한 번 고구려와 발해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 같아 우리 국민들을 몹시 고무시켰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다롄 공장의 무리한 투자가 STX호 추락의 주요 원인으로 평가 될 줄은 그 당시로서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추락엔 날개가 없다고 했던가. 불과 5년 후인 2013년 자율협약에 이어 지난 25일 법정관리 수순에 들어감에 따라 거함 STX호는 좌초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롄공장 건설이 STX조선해양의 골리앗 크레인을 멈추게 한 결정적 원인일까. 물론 무리한 해외투자와 해양플랜트 사업의 합병, 그리고 저가수주의 악순환은 파산의 결정적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론적이지만, STX의 다롄투자와 상관없이 지난 2008년 말 당시 지구촌은 이미 금융위기 한파의 거대 소용돌이에 접어들고 있었다. 강덕수 당시 회장이 다롄 진출을 고민하던 2005년과, 투자합의 조인을 하던 2006년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리 예측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중국의 유치조건이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리커창 부총리는 합작이 아닌 100% 단독 외자투자를 허용하는 전례 없는 조건을 제시했고, 도로와 다리 등 기반시설 설치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40만 평을 더 매립해 100만 평의 부지를 70년 간 쓸 수 있게도 했다. 진해공장 인근 죽곡부락 주민들의 끊임없는 피해보상에 시달려온 STX로서는 용지확보 해결 외에도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임금 카드까지 제시한 다롄투자 조건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어쩌면 STX로서는 최상의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STX 다롄조선소의 두 주역이던 강덕수와 리커창의 명암은 확연히 엇갈리고 있다. 강덕수 회장은 만신창이가 돼 야인이 됐고, 리커창은 1조 6000억 원이 투입된 STX의 다롄 유치 공로로 랴오닝성 당서기에서 국무원 부총리로 영전했으며, 지금은 중국 서열 2위인 국무원 총리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005년 한반도 최남단 진해의 조그만 어촌 죽곡(竹谷)마을까지 찾아와 함박웃음 짓던 리커창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진해는 지금 온통 침울한 잿빛 안개로 자욱하다.
 
 100여 개에 달하는 협력업체는 줄줄이 도산위기에 처해 있고, 수많은 근로자의 호구지책이 암담한 지경이다. 한때 연간 100억 원을 상회하던 진해구의 세수감소는 말할 것도 없고, 인근 횟집, 주택 등 지역경기 침체는 불 보듯 뻔하다.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쓰나미가 예상된다.
 
 바라건대, 이번 법정관리 절차가 청산이 아닌 회생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2~3년 만 버티면 글로벌 조선업 경기가 다시 회복된다는 전망도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 그리고 채권단과 상공업계가 발 벗고 나서서 회생의 역사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벌써부터 들려오는 근로자의 자살 비보를 남의 일로 받아 들여서는 안된다.
 
 월드-베스트 마크가 선명한 STX 출근버스가 줄지어 창원 시가지를 주행하고, 회색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식당 안을 꽉 메워 왁자지껄하던 시절이 세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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