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길 칼럼]중국이 우리의 곳간이라고?

  • 입력 2008.04.30 00:00
  • 기자명 장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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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만에 밀가루 값이 대폭 오르면서 라면이나 과자·빵 등 밀가루를 주원료로 하는 식품류 가격이 또 다시 들썩 거리고 있다.

특히 이번 밀가루 값 인상은 정부가 52개 생필품의 가격 동향을 주시하며 물가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지 1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어서 업계의 충격은 상당하다.

농업 인플레이션을 뜻하는 합성어인 애그플레이션이란 생소한 단어가 국민들의 귀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도미노처럼 물가가 뛰면서 밀 가격은 올 들어서만 100% 넘게 올랐다. 서민들은 폭등하는 물가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문제는 곡물가 상승이 물가를 끌어 올리는 애그플레이션 현상은 상당기간 지속 될 것이라는데 있다.

돈만 있으면 식량은 얼마든지 있다는 꿈을 깨워 준 것은 주요 곡물 생산국인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 세계 밀수출 5대국가가 관세를 부과하면서다. 보라는 듯이 이집트, 베트남, 인도, 캄보디아가 아예 쌀 수출을 금지시켜 버렸다. 식량은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처럼 생산국들이 “우리 먹기도 모자란다”며 팔지 않겠다는 식량자원 민족주의까지 가세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에다 지구 온난화로 세계는 가뭄과 홍수 등 기상이변이 꼬리를 물면서 곡물 생산 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공업제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논밭이 공장으로 변하고 이농으로 인해 묵히는 논밭이 매년 수만ha라는 것이다.

또 미국과 브라질 등 바이오에너지 붐이 일면서 사람이 먹을 식량이 연료를 생산하는데 빠져 나가고 있는 탓도 크다. 여기에 소요되는 곡물이 미국에서 재배되는 옥수수의 ⅓이라고 한다. 바이오에탄올이 인류의 재앙이 될지 희망이 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인도와 중국 등이 높은 경제성장으로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육류 소비가 크게 늘었다. 이에 발을 맞추기라도 한 듯 소를 키우기 위한 사료용 곡물소비도 덩달아 늘어 식량위기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들어 국제 쌀 재고량은 1976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국제 쌀 유통량도 ⅓로 줄어들었다. 세계 식량위기는 강풍을 만난 들불처럼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다.

이러다가는 돈을 주고도 식량을 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면서 나라마다 식량을 지키고 확보하기 위해 아우성을 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등의 쌀 수입국들은 쌀값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면서 사회분위기 마저 심상치 않다. 쌀 최대 수입국인 필리핀은 1인당 하루 쌀 판매량을 4㎏를 제한했다. 홍콩에서는 사재기가 벌어졌다. 대만 뤼수롄 부총통은 “쌀값 폭등이 고유가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쌀 자급률이 95%를 넘고 2~3개월분의 소비량을 비축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곡물 전체로는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우리식탁은 중국 농정당국이 기침만 해도 감기가 들어 버린다. 중국이 곡물자급률이 25%에 불과한 우리나라 곳간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 곳간에 중국이 자물쇠를 채우자 우리나라 식료품 가격이 줄줄이 뛰었다.

우리나라 70년대처럼 중국도 이농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놀리는 논이 크게 늘어만 가고 있다고 한다. 휴경지가 늘어나면서 중국의 곡물 생산량도 크게 줄어 자기나라 국민이 먹을 식량도 매년 5000만t 이상 모자란다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가 고 성장을 이뤄 제대로 먹기 시작하면 지구촌의 식량을 다 끌어 모아도 모자랄 판이라는 것이다. 그 위력을 우리는 이미 원자재 파동에서 경험한 바 있다. 중국이 공업화를 빠르게 진행시키면서 공장을 짓고 가동하는데 필요한 자재를 닥치는 대로 빨아들였다. 그 흡인력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경제에 미친 충격은 엄청나게 컸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경제 성장의 발판으로 중국과 인도의 20억이 넘는 사람들의 입맛이 변했다는 것이다. 삶이 나아지면서 그들의 밥상은 잡곡에서 쌀밥과 피자·육류로 바뀌었다. 이 추세라면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곡류와 육류·어류까지 싹쓸이 할 날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세계의 식품을 빨아들이는 그날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 할 것이라는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 여파는 지금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일본인의 식탁에서 참치가 사라지고 각국의 작은 피자 가게들이 치즈 가격 상승으로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공업국들의 육류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것도 문제다. 중국은 85년 1인당 20㎏의 육류를 소비 했으나 2000년에는 30㎏, 2006년 50㎏으로 늘어났다. 쇠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 8㎏의 곡물 사료가 들어간다고 한다. 앞으로 쇠고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대형 목장은 끝없이 들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이 먹어야 할 곡물을 소와 돼지를 키우는데 써야 하니 사람은 굶을 수밖에 없다.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 designtimesp=23709>이란 자신의 저서에서 지구상에는 인간의 밥상용으로 12억마리의 소를 사육하고 있다. 그 소를 키우기 위해 전세계 토지의 24%가 초지로 이용되고 있다. 그 소들이 먹어치우는 곡물은 미국 곡물 생산량의 70%, 세계 곡물 생산량의 ⅓에 달한다. 이것은 굶주림에 있는 수억명을 먹여 살릴 만한 곡식이다. 한마디로 소가 인간을 집어 삼키는 꼴이라는 것이다.
리프킨은 이 책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먹을 소를 키우기 위해 나머지 사람들을 굶기는 문명의 모순을 지적하고 무분별한 육류소비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

2006년 옥수수·밀·콩 등 곡물 가격이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해도 우리는 올라 봤자 얼마나 오르겠느냐며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사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경쟁력 없는 산업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농업을 두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식량문제는 어느새 발등의 불로 옮겨 붙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림의 떡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농업을 소홀히 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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