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칼럼] 잘못된 역사용어 바로 잡자

  • 입력 2016.08.22 12:36
  • 수정 2016.08.29 14:59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수필가 / 칼럼니스트
▲ 수필가 /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됐는가’하는 논쟁이 올해 8월 폭염을 더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2016년은 건국 68주년’이라고 언급한 박대통령의 축사로 점화된 건국일 논란은 정치공방을 넘어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으로 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이라고 주장하는 쪽은, 대한민국이 3·1운동의 자주독립 정신을 계승해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가 그 법통을 계승했지만, 그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일제 강점기하의 임시정부였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국민투표에 의해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되고, 남한 단독의 공식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합법적으로 공인된 건국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반해 1919년 4월 11일을 건국일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제헌헌법의 전문에도 분명히 나와 있는 것처럼, 1919년 기미독립선언 그 자체가 바로 건국선언이라는 것이다. 즉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립되고, 제헌헌법으로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한다’라는 제헌헌법의 전문이 건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1948년은 단지 정부가 수립된 해 일 뿐이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헌법이 제정된 1919년 4월 11일이 건국절이라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사실 36년간의 일제강점이 낳은 후유증의 일부분이며, 질곡의 우리역사 중 아직 아물지 않은 한조각 파편일 뿐이다. 우리 민족은 유사 이래 주변 열강들의 무수한 침략과 혹독한 강점으로 인해 잃어버린 과거사의 망령을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왜곡된 역사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한사군(漢四郡), 발해사(渤海史),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設) 등의 고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불과 100년 안팍의 근대사마저 진실공방에 국론까지 분열되고 있다.

 왜곡 날조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문제는 학계나 정치지도자들의 지혜와 국민적 총의를 모아야 할 부분이다. 건국절 논란도 정치쟁점화 할 사안이 아니라 ‘왜곡된 역사와 민족혼 바로세우기’ 맥락에서 풀어 나가야 할 담론이다. 그리고 차제에 그동안 사관(史觀)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사용해 온 역사용어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함께 바르게 표현하는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겠다.

 출연금 10억 엔을 놓고 또 다른 쟁점으로 비화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慰安婦)’문제도, 용어부터 ‘성노예(性奴隸)’로 바로 고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언제 그들을 위로하고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나섰던가. 성욕을 채워주기 위해 강제로 끌려간 성노예였지 않은가. 늦었지만 국제사회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용어 ‘sex slave’ 즉 성노예로 당연히 고쳐 불러야 한다. 위안부라는 용어에는 그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이 교묘히 감춰져 있다.

 ‘한일합방(韓日合邦)’도 당연히 ‘한일병탄(韓日倂呑)’이나,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바로잡아야 한다. 일제가 우리의 국권을 침탈한 후 자신들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용어 ‘한일합방’을 우리가 영혼 없이 그냥 따라 불러서는 안 될 말이다.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라는 단어도 낱말 하나하나 새겨보면 울화통이 치민다. 언제 우리가 그들에게 보호해 달라고 했단 말인가. 당연히 강제성을 부각한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고쳐야 함은 마땅한 일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아직까지 치욕의 트라우마로 고통주고 있는 ‘을미사변(乙未事變)’도 ‘명성황후시해사건(明成皇后弑害事件)’이라는 용어로 통일해서 사용해야 한다. 을미사변이라는 점잖은 용어에는 일국의 황후를 유린한 광란의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근대사의 대표적 불평등 국제조약인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도 ‘사이좋게 지낸다’는 ‘수호(修好)’라는 용어가 가당치 않은 만큼 ‘강화도 조약’이라는 용어로 단일화해야 하며, ‘수호조약’이라는 일본식 용어를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교육해야 한다.

 역사적 사건의 의미와 평가가 세월이 지나면서 바뀜에 따라, ‘동학난’은 ‘동학농민혁명’으로, ‘갑오경장’은 ‘갑오개혁’으로, ’6·25사변‘은 ’한국전쟁’으로 용어가 바로 잡아졌다. ‘광주민주화항쟁’도 한때 ‘광주사태’로 불러졌으나,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광주민주화항쟁’으로 명칭이 바로 서게 된 것은 매우 지당한 일이다. 문제는 아무 생각 없이 잘못된 역사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생각 같아서는 일제가 만든 어러한 ‘을미사변’이나 ‘위안부’, 또는 ‘을사보호조약’ 같은 용어를 그냥 습관적으로 되뇌는 사람, 특히 기성세대들에게 범칙금이라도 좀 물렸으면 싶다. 청소년들 보다 오히려 일제치하에서 고통받았던 기성세대들이 더 이러한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미국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을 정도로 말의 효력은 확실히 크고 강력하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사실의 역사성이 달라진다. 그것은 사회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파급성과 흡수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가 만든 역사용어는 그들이 저지른 만행의 의미를 교활한 언어적 모호성으로 축소하거나 희석시켜 최면에 빠지게 만든다.

 왜곡된 역사용어로 인해 우리가 생각마저 지배당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말이다. 2016년 8월을 뜨겁게 달군 건국절 논란이 올바른 역사용어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