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소리] 농촌마을회관 절도사건의 단면

  • 입력 2016.11.09 15:53
  • 기자명 /윤동웅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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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중부경찰서 형사과 윤동웅 경감
▲ 김해중부경찰서 형사과 윤동웅 경감

 필자는 김해중부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이다.

 우리 경찰서 관할은 낙동강을 접하고 있는데, 강 아래는 부산경찰이 위쪽은 우리 경찰서에서 담당하고 있다. 특히, 낙동강에 접해있는 지역이 대동면이란 곳인데, 이곳은 토지가 비옥해 대단위 비닐하우스가 밀집해 있는 전형적인 농촌 시골지역이다.

 따라서, 이곳은 도시에 비해 인구가 적고 치안수요도 적어 범죄발생률도 매우 낮은데, 올 초 각 동네 마을회관에 밤손님(?)이 찾아와 냉장고에 들어있는 음식도 먹고 가고, 벽에 걸어둔 옷가지도 없어지는 일들이 다수 발생해 마을이장단 회의에서 의제로 다뤄지는 등 조용한 농촌지역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경찰서에 제보가 들어왔고, 수사에 착수하게 됐는데 필자도 오랜 기간 수사를 해오면서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에서 가정폭력, 절도 와 같은 생활 범죄에 이르기 까지 많은 사건을 다뤄 왔지만 이러한 사건은 처음 접해보는 특이한 사건이여서, 마을회관에 들어가 음식을 훔쳐 먹는 사람이 마을 사람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등 과연 누가 어떠한 이유로 마을회관을 상대로 도둑질을 하는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몇 일간의 잠복 끝에 범인을 검거하게 됐는데, 잡고 보니 신체 건강한 40대 후반의 남자였다. 행색은 남루했고 낯빛은 어두웠으나 허우대 멀쩡한 신체 건강한 남자임에는 분명했다.

 그는 낮에는 비닐하우스와 농막 등에 들어가 딸기, 오이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밤이 되면 마을 회관에 들어가 잠을 잤고, 나오면서 벽에 걸린 옷과 신발을 신고 나오는 식으로 의식주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렇게 대동면 일대에서 35일간 생활한 전형적인 농촌 노숙자였다.

 우리는 흔히 노숙자라고 하면 서울역과 지하철을 떠올린다. 그들은 갖가지 사연이 있겠지만, 도시생활에 실패한 사람들, 경제적 활동을 포기한 사람들, 신용불량자 등의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경제적 활동을 포기한 노숙자, 신체 건강한 40대 남자, 농촌 시골마을에도 신체 건강한 노숙자가 전전하고 있다는 것이 팍팍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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