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데스크]여덟 섬 너 말의 젖먹인 어머니

  • 입력 2006.05.08 00:00
  • 기자명 장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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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효도를 하고 싶어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하라는 이 짧은 한 마디지만 가슴이 찡하다. 각박한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열심히 밭만 갈다가 어느 날 잠시 고개를 드니 부모는 떠나고 없다. 그때서야 내가 잘못했다. 아버지 어머니를 힘차게 부르며 땅을 쳐 보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후였다. 이처럼 주위에는 불효의 죄책감으로 평생을 후회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어버이 날인 오늘 나는 부모님께 소홀함이 없는지 부모님의 노고와 그 은혜를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겨야 한다.

자식이 병이 나면 그 어머니도 병이 났다. 단 것은 뱉어서 자식에게 먹이고 쓴 것은 삼켜 찡그리지 않는다. 마른자리는 자식을 누이고 젖은 자리는 자신이 눕는다. 집 떠나는 자식을 붙잡고 차 조심 사람 조심 지겨운 당부다. 떨어져 사는 자식이 못미더워 바람소리에도 놀라 잠을 설친다. 백 살이 넘어도 여든 살의 자식을 걱정하니 간절한 그 애정 끝이 없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을 적마다 서 말 서 되의 피를 흘리고 아이가 자랄 때까지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였다. 그 큰 노고 때문에 백골이 된 뒤에도 남자의 뼈는 희고 무거운 반면에 어머니의 뼈는 검고 가볍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모들은 자식 뒷바라지에 뼈가 닳고 허리가 휘어졌지만 자식들은 늘 혼자 자란 듯이 부모의 은혜를 망각하기 일쑤다. 천하의 효자라도 부모의 높은 은혜에 비하면 그 효행은 한 낱의 티끌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병든 부모를 버렸다. 노인 학대 가해자의 절반이 아들이다. 부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일 년 내내 얼굴 한번 안내 미는 자식도 수두룩하다는 뉴스에 아버지의 눈만 부릅떠도 쩔쩔맸던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말세라고 부들부들 떨다가 매정한 세상 탓이라며 위안을 삼는다. 자식들이 뿔뿔이 떠난 노부부의 집에는 사람들 발길마저 끊겨 적막하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전화는 끝내 울리지 않는다. 사람이 그리워 날만 새면 대문 앞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을 세는 것도 지쳤다.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자식에 대한 배신감과, 이웃집 아이들을 불러 세우고 말동무를 삼다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그렇게 밀려오는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다가 백발보고 웃지 마라 나도 한때 이팔청춘 있었다. 눈 한번 붙이고 나니 인간 칠십 고래희라 남은 것은 병든 몸뿐이다. 덩실한 아들 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이생을 마칠 것을 생각하니 두렵고도 서럽다. 몇 마디 중얼 거리다가 인생의 허망함에 눈물을 찔끔거린다.

그래도 내 자식이 어미 버린 놈이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까봐 또래의 할머니에게는 매달 생활비 듬뿍 준다고 내키지 않은 자랑이다. 이러한 현실은 그리 낯설지 않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는 달라질 것이 없다. 우리사회가 패륜아로 자주 들끓고 있는 것도 지금처럼 학교나 가정 모두가 이겨야 한다는 입시 위주의 교육의 영향이 크다. 거기에는 남을 끌어내려야 산다는 이기심만 키울 뿐 사회가 유지하는데 필수인 건전한 윤리의식이 뿌리 내릴 토양이 없기 때문이다.

핵가족화와 가족해체 현상으로 노인 부양은 더 이상 전통적인 효 사상에만 기댈 수 없게 됐다. 이제는 노인들도 적극적으로 삶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젊은 시절보다 노년의 시절을 더 오래 보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살아가는 시간이 긴만큼 활동해야 할 시간도 늘어났다. 이는 60대 창업 붐이 잘 말해주고 있다. 힘 있을 때까지 일해서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생활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나 본인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인생 65는 경로당이나 찾아가는 끝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 늙고 병든다. 그 길은 곧 내가 가야할 길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보호를 받고 커서는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 이자 세대 간 무언의 약속 이다. 이 무언의 약속을 우리세대에 단절시켜서는 안 된다.
다만 현대 사회의 특성상 개인에게 전적으로 지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약속을 잘 지키도록 일정부분을 사회가 나눠져야 한다. 첨단시대에 맞는 새로운 효의 모델이 필요하다

장병길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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