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7주년] ‘동족상잔의 비극’ 6·25 발발 67주년

  • 입력 2017.06.22 20:52
  • 수정 2017.06.23 20:59
  • 기자명 /이오용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도병들의 정신적 지주(支柱) 박영수 참전유공자
6·25 전쟁으로 다시는 고향땅 밟지 못해…

 

▲ 박영수 6·25 참전유공자 경남 지부장
▲ 박영수 6·25 참전유공자 경남 지부장

 고향 김천 아포국민(초등)학교 교사이던 박영수 지부장은 1950년 6월, 남침한 북괴 만행에 치를 떨며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스무 살 약관(弱冠) 나이로 그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었던 것은 학도병 지원 뿐 이었다. 결심을 앞세운 그는 1950년 7월3일, 대구 학도병훈련소에 입소해 3~4일 간 속성 훈련을 마치고 포항 인근 부대에 배치됐다.


 당시 군 관계자는 교사출신 학도병 박영수에게 커다란 임무를 맡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학도병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키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정신적으로 피폐(疲弊)해진 어린학도병들을 위해 용기를 주고 전쟁에서 자신감을 불어 넣어줬다.


 학도병들의 정신적 지주로 정신교육을 담당하던 그는 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지켜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52년 11월 12일, 그는 당시 우리나라 제1훈련소이던 제주훈련소에 입소, 53년 3월 광주 육군보병학교 교육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돼 다시 제주훈련소로 돌아가 훈련병들에게 정신교육 임무를 수행했다. 


 1955년 12월 31일, 제주훈련소가 해체되면서 그는 27사단(금화 부동) 부중대장을 역임했다. 휴전 이후 전쟁이 멎었지만 그는 전장을 잊지 못하고 1966년 10월 2일 월남전에 참전, 1967년 12월 24일 귀국 후 백마부대 30년대 1중대장으로 군 생활을 마감했다.


 박 지부장은 참전용사들을 두고 “6·25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학도병들 평균나이는 현재 87세다. 17~18세 어린나이에 학도병으로 자진 입대해 낙동강전투에서 압록강전투까지 몇 수 천리산간 길을 오르내리며 총검을 들고 육박전을 치른 전쟁중에 살아남은 호국영웅들”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이어 “우리 젊은 세대들은 6·25를 잘 모른다. 그렇다 보니 안보의식에 무관심 한 것 같다”며 “최근 북한 김정은은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연일 발사해 국제적 문제로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젊은이들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철저한 안보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