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호 칼럼] 우리들의 준법 정신

  • 입력 2018.11.11 18:26
  • 기자명 /배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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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사회는 사립유치원의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오고, 노인요양원의 불법사례, 공공기관의 채용비리가 솔솔 드러나면서 온 사회가 진흙탕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같은 각종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것이다.

 전 정부, 아니 전 전 정부 때부터 언론과 각종 교육기관에서 수차례 지적해 왔으나, 정작 행동으로 옮겨야 할 사정기관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회초리를 제대로 들지 못한 것이 이같이 치유하기 힘든 사태를 초래했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수차례 거론한, 우리사회는 도로교통법·환경보전법·묘지법 등 지켜야 할 법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가면 속도위반, 서면 주차위반’이란 용어가 유행어처럼 나돌고 있는 도로교통법, 요즘 고속도로에서 100㎞ 이상 달리면 속도위반이란 도로교통법을 누가 정당한 법이라고 하겠는가?

 쉬운 말로 소형차인 티코도 120㎞쯤은 우습게 달리는 세상인데, 아직도 대부분의 고속도로가 수십 년 간 최고속도 100㎞를 고수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이 같은 최고속도는 국도나 지방도로도 마찬가지다.

 4차선 국도의 시속 80㎞(굴곡도가 심한 도로는 70㎞), 2차선 지방도 60㎞ 등은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수긍이 가나 현실적으로는 여름철에 감기 예방한다고 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또 자동차 사고 사망률 세계 1위, 산업재해사망률·해상사고율·낮은 범죄신고율 등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현재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으나 준법정신은 최하위로 법이란 법과 규정이란 규정은 전반적으로 손질이 필요할 것 같다.

 결국 사람이 함께 모여 살면서 서로 지켜야 할 행위규칙이 파괴돼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해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법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대부분의 차량이 속도위반을 하고 있으나, 어찌 잘못해 자신이 속도위반 스티커를 발급 받았을 경우 반성보다는 “오늘 재수가 더럽게 없다”며 투덜거리는 것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일 것이다.

 법에 앞서 도덕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 때 서로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서 이익과 손해 권리와 의무를 공평하게 배분하고 그에 합당한 행위규칙을 지키며 살겠다는 약속이자 관습이다.

 현사회가 부딪힌 가장 큰 문제가 이런 행위규칙으로서의 도덕이 지켜지지 않는데 있다.

 고로 우리는 사소한듯 하지만 사회적으로 꼭 지켜야 할 법과 규범을 너무 소홀히 여기는 것이 아닌가 자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정특명반까지 가동시켜 부패공직자를 숙청해야 하는 오늘의 시대상황은 성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간음한 여인을 광장에 끌어내 단죄하는 장면은 예수가 삶의 문제를 풀어가면서 겪어야 하는 갈등상황이었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자는 돌멩이로 쳐 죽여라’고 돼 있으나, 예수는 모든 죄인에게 사랑으로 용서하도록 계명을 선포했다.

 하지만 모세의 율법에 따라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하면 ‘사랑’이란 그의 계명에 어긋나고, 돌로 치지 말라고 하면 ‘율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예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한참을 생각한 예수는 “여기 모인 사람가운데 죄 없는 자가 있으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고 말했으나, 예수의 십계명을 보고는 모두가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떠난 모든 사람에게서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양심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들은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준법정신과 도덕 및 양심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한번 쯤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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