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학과 장소

  • 입력 2018.11.21 18:30
  • 기자명 /한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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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력있는 책은 단순히 책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있다. 독자들은 책 속에 중요하게 소개된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 경우도 있고, 책 속에 등장한 미술품을 찾아보고 책속에 등장한 음식을 먹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책 속에 등장한 그 장소가 그 자체로 관광명소가 되기도한다.

 문학 관광지들이 인기가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사람들이 공부해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작가에 대해서 공부하고 시대에 대해서 공부하고, 책에 나온 의미를 공부하고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귀찮은 듯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 작가의 생애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면 안될 것 같고 작가의 모든 작품을 술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 책 속에 등장한 장소에서는 그런 압박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어, 이거 그 책에서 봤던건데”, “그 책에 나오는 장소래”, “등장인물이 여기 살았다더라”는 등 그정도 감상이면 충분한 것이다.

 영국의 경우 소설 셜록홈즈의 주인공인 홈즈와 왓슨의 거처인 베이커가 221b가 있다. 사실 소설이 연재될 당시에 베이커가 221번지는 존재하지 않는 주소였다. 행정개편을 거치며 베이커가 221번지가 생겼으나 여전히 셜록홈즈와는 상관없는 장소였고 셜록홈즈 박물관은 239번지였다.

 그러나 셜록홈즈의 열렬한 팬들, 셜로키언들은 셜록홈즈 박물관 보다 책에서 등장한 221번지로 팬레터를 보냈고 마침내 1990년 웨스트민스터 자치구에서 셜록홈즈 박물관인 239번지를 221번지로 변경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셜록홈즈의 집 처럼 꾸며놓고 셜록홈즈처럼 꾸민 사람들이 반겨주는데 몹시 좁고 구경할 것이 많이 없음에도 셜로키언들이 끊이지 않는다. 

 바로 책 속에 등장한 바로 그 장소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실제 셜록홈즈가 존재하는 것 처럼 느끼고 자신이 베이커 스티릿 이레귤러스가 된 것처럼 느낀다.

 하동의 최참판댁도 마찬가지다. 그 장소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책 속에 등장한 바로 그 장소라는 것이다. 실제로 박경리 작가는 평사리 들판에서 영감을 얻었을 뿐 최참판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며 당연히 진짜 최참판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의 팬들에게는 그건 아주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은 가짜 최참판댁을 기꺼이 진짜 최참판댁으로 여길 준비가 돼 있다. 

 최참판댁에 가서 마치 진짜 서희가 있는 것처럼 느끼고, 그 장소를 묘사한 책의 한 부분을 떠올리며 최치수를 욕하기도 하고 서희나 별당아씨를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이렇게 문학의 장소가 매력적인 이유는 관광객 자신의 이야기를 녹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감정을 그 장소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고 혹은 등장인물의 열렬한 팬으로 서희가 놀았을 법한 마당에서 서희와 함께 노는듯한 환상을 보기도 한다.

 이렇듯 마치 책 속에 들어가 그 인물이 된 듯 느낄 수 있는 창작품과 문학 관광지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며 이를 위해 각 시·군에서 문학에 등장한 장소 발굴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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