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갑 칼럼]당당한 선생님이 그립다

  • 입력 2006.05.15 00:00
  • 기자명 하종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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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을 기억해 보면 ‘호랑이 선생님’이 먼저 떠 오른다. 뒷짐을 쥔 손에는 항상 회초리를 들고 다니시던 호랑이 선생님. 학생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없이 회초리를 들었던 그 선생님은 정말 당당하셨다.

학생 시절 필자도 많이 나부대는 편이었다. 덩달아 매도 많이 맞았다. 억센 손으로 양볼을 잡아 당기는 체벌은 가벼운 것이었고 엉덩이가 얼얼 하도록 맞기도했다. 그런날 집에 가면 어머니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그렇게 밖에 안때려? 더 맞아도 싸지”하시면서 덩달아 호통을 치셨다.
어느 날 급우 한 명이 쉬는 시간에 만화책을 몰래 보다가 들켜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맞았다. 그는 유지급 아들로 학교에 기부도 많이 했던 듯 다른 선생님은 웬만하면 봐 주는 속칭 잘나가는 아이였는데 그 다음날 난리가 났다.

그의 부친이 학교를 찾아와 선생님을 몰아 세웠던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당당하셨다. “학교에 아이를 맡길 때는 사람 만들어 달라는 게 목적이 아니었느냐. 나는 그 의무를 다했을 뿐이지 아이가 미워서 그랬던 것은 절대 아니다”며 굽히지 않으셨다. 결국 그 아이의 아버지는 죄송하다며 돌아갔다.

호랑이 선생님은 학생의 일이라면 교장선생님과 언성을 높이며 대응했다. 그 당시 월 235원이던 월사금이 몇달치 밀려 서무실에서 벌을 선 일이 있었다. 출석을 부르다 그런 사실을 안 그 선생님은 서무실 문이 부서져라 열고 들어와 나이 많은 서무주임에게 따졌다. “이게 무슨 교육입니까.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하고싶은 공부마저 못하게 한다면 당장 학교문을 닫아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고 교실로 데리고 갔다.

교실로 돌아가는 골마루에서 그 선생님은 머리를 툭 툭 치면서 “임마 기죽지 마. 더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지금의 수모를 복수하라구. 그만한 오기도 없으면 공부 때려 치우고 공장으로 돈벌러 가든가”라며 늘 근엄하던 얼굴에 미소까지 보여 주셨다. 호랑이같은 성격이지만 토끼같이 여린 마음을 함께 지니고 계셨던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또 한번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560원의 경비가 없어 포기해야 했다. 그 돈이면 두 달치 월사금인데 집안 사정을 뻔히 알면서 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여행을 가기 전날 저녘 때쯤 그 선생님은 집으로 찾아 오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자신이 돈을 대 줄테니 같이 수학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마 선생님의 돈으로 여행을 갈 수 없어 기어이 포기하고 말았다. 수학여행을 다녀 온 선생님이 손에 쥐어 주던 기념품은 눈물이 나도록 정이 듬뿍 묻어 있었다.

사회의 첫발을 언론사에서 시작할 때 그 선생님을 찾아 뵌 적이 있다. 축하 한다며 장래를 축원해 주시며 권하는대로 소주잔을 비우시고 대취해 껄껄 웃으시던 그 선생님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스승의 날이 되면 그립다.

스승의 날이다. 세상이 달라진 것인지 사람이 용렬스러워 진 것인지 선생님이 스스로를 부끄러워 해야 하는 스승의 날이 되고 말았다. 당당한 모습은 찾을데 없고 나약한 직장인으로 전락한 것이 몹시 안타깝다.

어릴 때 선생님이 화장실에 가는 모습을 보고 실망했던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지저분하게 뒷일을 보신다는 게 충격적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선생님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권위가 있었고 세상이 그렇게 느끼도록 선생님을 우대했다.

그런 선생님들이 어쩌다 촌지라는 굴레를 쓰고 스승의날 휴교를 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당당하게 촌지에 맞서면서 자신있게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스승의 날 학생들이 달아주는 카네이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런 스승의 날이 다시는 안 오는 것일까.

속인처럼 물욕에 오염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당당해야 한다. 영국 여왕이 모든 사람에게 장갑을 끼고 악수를 해도 선생님께는 장갑을 벗을 정도로 대접받는 선생님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은 선생님 스스로가 할 일이다. 당당한 선생님이 그립다.

하종갑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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