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나무 숲길을 걷다

  • 입력 2019.01.24 18:28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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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봉산은 상림과 더불어 함양군민의 정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중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부담 없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천사화로구이 식당과 늘봄식당 사이길, 원교마을 뒤 상수도 배수탱크 가는 길, 상림 상수도 정수장 입구, 한남군 묘소 쪽 등 여러 갈래의 길이 있어 사방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문필봉 이라고도 하는 필봉산은 높이가 233m로 나지막하면서 면적도 그다지 넓지 않지만, 소나무와 참나무 등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한 숲이다.

 함양 군민들이 오랜 세월 이용하면서, 산책로가 된 길들이 모두 반질반질 하다. 문화예술회관 바로 뒤쪽 필봉산 허리께까지는 언제 부터인지 울창한 대나무로 인해 속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이번에 새로 만든 대나 무 숲길은 비로 이곳에서 필봉산을 오르도록 한 길인데, 지난해 말 시작 한 공사가 거의 2개월 만에 마무리 됐다. 경사진 곳만 나무계단을 만들고 나머지는 흙길 그대로이다.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공간만큼 평탄 작업을 했는데,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길을 내는 만큼은 자연을 훼손하게 돼 미안한 생각도 든다.

 곧은 대나무들이 촘촘하게 서있는 사이로 채에 걸러지듯 잔잔한 햇빛 도 들어오고, 정화되듯 걸러져 들어온 바람은 자못 상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나무 숲이라지만 수령이 제법 될 듯한 참나무 몇 그루 소나 무 몇 그루도 만날 수 있는데, 추측컨대 원래는 일반 나무들이 있는 숲 이었는데, 대나무 녀석들의 특성인 뿌리번식으로 은밀하게 숲을 침범해 들어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우선 밟는 흙의 감촉이 신선하다. 대나무숲길을 들어서는 순간 오랜 세월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곳이라, 신비로운 기운마저 가득하다. 대닢, 새똥, 눈비가 켜켜이 쌓여 양분 가득한 퇴비가 되었으니 땅은 얼마나튼실할까?, 한발 한발 디디는 발끝부터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어떤 이발사가 얼마나 말하고 싶었던지 참다 참다, 더 이상 참지 못하 고 해버린 그 말, 아무도 모르게 말 해버리고 묻어둔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법도 싶은 대나무 숲이다. 그래서 혼자 이곳에 오면 사각사각 대닢 부비는 바람결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비밀스런 목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는 하나하나 따로가 아니라 무리지어 움직인다. 마치 파도가 일어 바다가 일렁이듯, 바람에 온몸을 맡긴 채 마치 산이 움직이듯 한다. 하지만 산을 옮겨갈 듯 대닢 부딪치는 바람소리 휘청 휘청 요란해도 숲속은 요지부동이다. 그래서 바람 부는 날에도 걷기에 참 좋은 길이다. 

 점심을 일찍 먹고 대나무숲길을 찾았다. 겨우 한 발자국 들어서자마자 대나무 특유의 상큼한 향이 온몸에 스며온다. 참새가 떼거리로 몰려다니 다 부산해 지는가 싶더니, 쓸 물처럼 휘리릭 날아가 버리고 나면 숲은 다시 고요해진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을 들이지 않았을까. 사람손이 타기 시작했으니 이제 머지않아 이곳도 오염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이 기우이기를 바란다.

 대나무는 곧게 자라고 잘 부러지지 않는 특성으로 지조 있는 사람에 비유한다. 어릴적 우리동네에는 대나무를 이용해서 바구니 등 각종 생활 도구를 만드는 죽세공이 두 분 계셨는데, 대나무가 돈이 되니 그야말로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사군자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델이 되거나, 풍악 놀이 깃발용으로 쓰일 때이다.

 그리고, 감홍시를 따거나 높은 곳에 사람의 팔을 대신해서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사람들은 톱이랑 연장을 들고 서슬 푸르게 대나무 숲 어귀에 나타나기도 한다. 아직은 대나무가 쓰임새가 있다는 이야기인가. 선조들은 대나무를 치면서 늘 푸르고 곧은 심지를 세웠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욕심을 경계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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